당신의 행복지수는?

날짜: 
2005/08/07
설교: 

신33:29 당신의 행복지수는?
얼마 전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라는 기관이 자신의 행복 체감지수를 전달할 수 있는 ‘행복지수 자가 진단표’를 발표했습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캐럴 로스웰과 상담사 피크 코언이 제시한 행복공식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이 진단표는 개인적인 특성(인생관, 적응력, 탄력성), 생존조건(건강, 인간관계, 재정상태), 더 높은 수준의 조건(자존심, 기대, 야망) 등을 고려했습니다. 아래 질문에 대해 ‘전혀 아니다’는 0점, ‘확실히 그렇다’는 10점, 그 중간이면 정도에 따라 1∼9점으로 응답하면 됩니다.
1.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재미있고 내 생활은 활기차 있다. 환경 변화에 대해서도 별 거부감 없는 편이다.( ) 2. 나의 인생관은 긍정적이어서 실패하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내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란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조절을 잘하는 편이다.( )
3. 우리 가족은 서로를 인정해주고 사랑하며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 4. 나는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하루하루가 즐거운 편이다.( ) 5.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돈의 절대적인 액수에 상관없이 나는 부자라고 생각한다.( )
6. 좋아하는 취미나 여가활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 7. 나는 주변에 마음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나 동료들이 있다.( ) 8. 나 스스로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 9. 인생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희망이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10. 현재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 )
◇결과
10가지 행복의 조건들을 통해 측정한 행복지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91∼100점 : 행복이 철철 넘치는 삶이다. 그 행복을 이웃과 함께 나눠야 할 때이다. * 71∼90점 : 삶의 비밀을 이미 알고 누리고 있는 삶이다. 행복은 바로 자족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51∼70점 : 때로는 행복하다가 때로는 더 많은 행복을 원하는 삶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 31∼50점 :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당신은 행복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서 행복을 만들라. * 30 이하 : 바닥을 치는 그 시점이 바로 회복의 시간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행복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떼어보자.
지난 2003년에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가 전국의 20살 이상 된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평균 66.5점이었다고 합니다. 60점을 행복과 불행의 커트라인으로 본다면 간신히 불행을 면하고 사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나라 캐나다로 이민이나 유학 온 여러분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대답해 보세요. 99점입니까? 88점입니까? 77점입니까? 한국 사람들의 평균 점수인 66점입니까?
그리고 이 조사에서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약 70%가 건강을 꼽았습니다. 다음이 경제력이 약11%이고, 사랑이 6.5%, 신앙이 5.2%, 안정된 직장이 2.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01년도 국정홍보처에서 조사한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도 이런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건강 37%, 가족 간의 사랑 35%, 돈 14%, 일에서의 성공과 보람 7%, 정서적 안정, 3%, 종교적 믿음 3%, 기타가 1% 입니다.
여러분은 경우는 무엇이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여기십니까? 통계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보다 건강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의 꿈을 성취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행복의 조건들이 될 수가 있겠지요.
특히 성경이 예언하듯이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굉장히 사랑하고 돈으로 행복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행복지수를 계산하면 당신의 통장에서 돈이 줄어들 때마다 당신의 행복지수는 적어지고, 반대로 통장의 돈이 늘어날 때마다 행복지수는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배우자를 고를 때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무일푼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지수가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이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들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이런 서론의 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과 행복은 별개입니다. 1998년 영국 런던 정경대의 로버터 우스터 교수가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국민 행복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결과 놀랍게도 미국을 비롯해 일본, 캐나다, 독일 등 이른바 G7 국가 중 어느 나라도 40위 안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등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G7 국가인 미국과 일본, 캐나다, 독일 등이 행복해야 될 것인데 그렇지가 못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행복지수를 7로 계산할 때 갑부들의 행복지수가 5.8로 나타났습니다. 행복지수는 7등급으로 구분해서 숫자가 커질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린란드 동토의 이누이족이나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족의 행복지수도 세계 갑부들과 동일한 5.8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갑부의 행복지수가 5.8인데 세계적으로 생활이 어렵고 고난에 처한 민족들의 행복지수가 같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도 캘커타의 빈민들도 무려 4.6이라는 행복지수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물질이 풍부하다고 행복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즉 물질의 부요와 마음의 행복이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환경이 개선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 집이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기 집으로, 자기 집에서 더 많은 부동산의 소유자가 되면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집이 많고 땅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고,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행복지수를 남들과 비교하여 결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돈이 많이 있으면 그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계산법으로 행복지수를 결정한다면 1000만원 가진 사람은 1억원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불행을 느끼게 되고, 1억원 가진 사람은 10억원 가진 사람을 만나면 불행을 느끼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재능 있고 잘났으면 그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배우자나 애인이 자신의 배우자나 애인보다 잘났으면 그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매사에 남들과 비교하여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사람이 혹시 당신의 아내요, 당신의 남편이요, 당신의 가족이라면 그 가정의 행복은 남들에 의해 좌우되므로 결국 행복의 터전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므로 행복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욕망과 욕심을 억제하고 자족하는 비결을 배울 때 행복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 분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호화로운 궁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천하디 천한 마구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라나신 동네도 나사렛이란 촌동네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란 것을 알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며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돈도 없고, 백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예수님은 행복의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스스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오직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집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백이 없다고, 남들보다 잘살지 못했다고 예수님의 일생이 불행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일생을 사신 분이십니다. 어찌 보면 결혼도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크게 불행한 일생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실지 예수님은 굉장한 행복을 느끼며 사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늘의 부요와 하늘의 기쁨, 하늘의 행복을 누리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행복이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행복은 있다가 없어지고 맙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건강도 줄어들고 맙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는 돈도 자신을 떠나고 맙니다. 즉 이 세상의 행복의 조건은 잠시적이요 찰나적입니다. 이러한 세상 행복에 대하여 솔로몬 왕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인들은 “아무리 세상 행복이 헛되더라도 나도 솔로몬처럼 그런 것을 실컷 누려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상당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물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행복을 방해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세계도 하나님이 만드신 축복의 세계요, 우리를 행복하기 하기 위하여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물질이 단순히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운영되고, 하나님 없이 너와 내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살아도 그 행복은 결국 허상이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없는 행복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불 꺼진 화로요, 그 다음에 또 뭐지요? 여러분, 이곳 캐나다에서도 하나님 없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신기루를 좇아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의 본문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긴 마지막 설교입니다. 29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0년 광야생활에 지쳐 있었습니다. 비록 요단강을 건너기만 하면 가나안 땅이지만 아직 그곳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면 그곳의 강대한 민족들과 치열한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행복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즉 돈이 많거나 권세가 많아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의 이유를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전히 축복하고 있기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낍니다. 고로 철학자 카를 힐티는 “인생의 최대 행복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당신의 행복지수를 이 외국 땅에서 최대한 높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행복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당신도 우리도 모두가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는 오늘의 본문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