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을 품지 말라.

날짜: 
2020/07/19
말씀: 
시119:113
말씀구절: 

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설교: 

사람의 신체 중에 두 개가 있는 것이 있고 하나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손과 팔은 각각 두 개요, 다리와 발도 각각 두 개요, 귀도 두 개요, 눈도 두 개입니다. 만약 이들 중에 하나가 없으면 굉장히 불편할 겁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이들을 두 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코는 하나지만 자세히 보면 구멍은 두 개입니다. 혹시 콧구멍이 하나이신 분이 있습니까? 이는 한 구멍이 막히면 또 다른 구멍으로 숨을 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은 하나입니다. 혹시 입이 두 개가 되어 두 개의 입으로 먹고, 두 개의 입으로 말하는 분은 없겠지요. 만약 두 개의 입으로 먹으면 체중도 두 배로 늘어납니까?

그리고 오늘은 이 말 했다, 내일은 저 말했다 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야- 한 입으로 두 말하기 없기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 안에 기관을 살펴봅시다. 요즘 유행하는 COVID-19 바이러스를 다른 말로 ‘우한폐렴’이라고 합니다. 즉 이 바이러스는 주로 우리의 폐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폐는 두 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혹시 한쪽이 망가져도 또 다른 한쪽으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장 즉 콩팥도 두 짝입니다. 콩과 팥 두 개잖아요? 신장의 모양이 콩과 비슷하게 생겨서 콩이라고 하고, 색깔은 팥의 색깔을 하고 있어서 팥이라고 합니다. 합쳐서 우리말로 콩팥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를 띠어서 남을 줘도 나머지 하나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이나 위도 하나지만 조금씩 띠어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심장은 몇 개입니까? 하나입니다. 그리고 심장을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heart’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영어로 뭐라고 할까요? ‘heart’라고 하기도 하고 ‘mind’라고 하기도 합니다. mind는 뇌의 마음, 이성적인 느낌에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open-mind, close-mind, narrow-mind입니다. 그리고 heart는 심장의 마음, 감성적인 느낌에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heartbreaking’(마음이 아픈)’ ‘He stole my heart.’(그가 내 마음을 빼앗았다.) 그리고 위치로도 mind 하면 머리를 가리키고, heart 하면 심장이 있는 가슴을 가리킵니다.

오늘은 마음에 대하여 같이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마음은 몇 개일까요? 일반적으로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두 마음’에 대하여 나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Purify your heart, you double-minded.)"(약4: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He is a double-minded man, unstable in all he does.)"(약1:8)

”저희가...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with a double heart do they speak)"(시12:2) “내가 두 마음 품은 자를 미워한다.(I hate double-minded men.)"(시119:113) 이 말씀을 토대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몇 개의 마음을 갖고 싶나요? 한 마음입니까? 두 마음입니까?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간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마음의 소유자를 가리켜 우리는 ‘충신’이라고 합니다. 저는 충신을 좋아하고 간신을 미워합니다. 충무공, 충청도, 충무로, 충주시, 충성... 다 좋습니다. 또 다른 질문을 할까요? 민들레는 몇 개의 마음을 가졌을까요? 힌트 : 가수 조용필의 노래를 생각해보세요.

“일편단심 민들레야...♫” 예- 민들레의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민들레는 일편단심을 가졌다고 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시간 관계상 가장 중요한 이유 한 가지를 이야기 해봅시다. 한국의 토종 민들레는 같은 토종 민들레의 꽃가루만 받아들이고 서양 민들레 꽃가루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즉 토종 민들레 신랑이 오지 않으면 급기야 그 민들레는 처녀임신을 합니다. 그래서 봄바람에 흩날리는 한국의 민들레 꽃가루는 발아가 되지 않은 무정란이기 때문에 민들레가 여기 캐나다처럼 많이 퍼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캐나다를 비롯해 서양 민들레는 이놈 저놈 아무나 찾아오는 꽃가루를 다 받아들여 씨를 맺습니다.

고로 서양 민들레는 100% 발아되는 유정란이므로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의문이 좀 풀립니다. 한국은 민들레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캐나다는 민들레가 너무나 많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즉 한국 민들레는 일편단심 한 마음을 가졌고, 캐나다 민들레는 두 마음, 세 마음, 네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민들레는 신랑이 하나고, 캐나다 민들레는 신랑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신랑이 많은 캐나다 민들레는 번식력이 좋고, 신랑이 하나뿐인 한국 민들레는 그 신랑이 끝내 오지 않으면 긴긴 밤을 홀로 보내다가 그냥 혼자 무정란 꽃가루만 흩날리고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말은 한국 토종 민들레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여기 캐나다 민들레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습은 분명 같은 민들레지만 한국 것은 한 마음의 소유자고 서양 민들레는 두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마음의 소유자가 있고, 두 마음의 소유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 가룟 유다는 두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안 그랬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다 보니 예수님이 자기에게 세상 부귀영화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좀 섭섭합니다. 그리고 그 섭섭한 마음에 마귀가 예수님을 팔 마음을 집어넣었습니다.(요13:2) 결국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즉 가룟 유다에게 또 다른 마음, 마귀의 마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발람 선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재물에 대한 욕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취할 수 없음을 알고 그는 번민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재물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물질도, 생명도, 명예도, 하나님도 모두 잃고 말았고 결국 멸망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합니다. 물론 말세가 되니 마귀가 하도 설쳐대고 부부를 이간시키다보니 한 평생 부부가 같이 산다는 것이 옛날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한 마음을 품으면 종종 원수 같은 남편, 원수 같은 아내일지라도 끝까지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이미 결혼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끝까지 한 마음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신앙의 세계도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신랑, 나의 임금, 나의 주인으로 모셨으니 끝까지 한 마음으로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그리고 계속 말씀합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고, 마음이 나누이지 말고, 마음을 굳세게 하고, 한 마음으로 영광을 돌리라.”(롬15:6) 여러분,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한 번 체크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체크 하냐고요?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눅12:34) 즉 내가 가진 돈을 현재 주님을 위해서 쓰고 있고, 앞으로도 여전히 끝까지 주님을 위해서 쓰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돈을 주님의 뜻대로 쓰지 못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한다면 마음이 나뉜 것이요, 두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의 은사를 받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 이유가 고린도전서 7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나니 나와 같이 그냥(혼자)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9)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고전7:32-33)

즉 바울은 장가가서 마음이 나누이고,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전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장가를 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에게 독신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보면 처녀들은 시집을 가서도 신앙생활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러나 총각들은 장가가면 신앙의 모습이 많이 바뀝니다.

총각 때에는 주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따라 간 사람도 결혼을 하니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내의 말씀, 아내의 명령, 아내의 기분, 을 따라갑니다. 다행히 아내가 믿음이 좋으면 남편의 신앙도 변질되지 않지만, 아내가 믿음이 좋지 못하면 남편의 믿음도 중심을 잃고 변질되기 쉽습니다. 마음이 나뉘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편단심 한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산다는 것은 요즘 같은 말세에는 참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세에는 고통 하는 때가 이르고 그 현상 중 하나가 배신 즉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배신하고, 친구 간에도 배신하고, 성도 간에도 배신하고, 직장 동료와 선후배 간에도 배신합니다. 정치인들의 배신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웃고, 입술로는 아첨과 좋은 말을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세상사는 것이 힘들어지고, 피곤해지고, 고달파지고, 고통스럽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덕목입니다. 한 마음으로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비록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되더라도 주님 바라보고 여전히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십시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자기의 마음을 지키십시오.(잠4:23) 세상 헛되고 헛된 부귀영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끝까지 하늘의 영광을 위해 한 마음으로 달려가십시오. 주님과 마음이 통하는 자,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자, 주님의 마음과 합한 자가 되도록 오늘도 자기 자신을 살피십시오. 아무쪼록 끝까지 한 마음으로 죽도록 충성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