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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니 우리는 각자가 집을 짓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혜롭게 집을 짓는 자가 있고 미련하게 집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반석에다가 기초를 삼고 집을 지으면 지혜로운 건축자요, 모래 위에다가 집을 지으면 미련한 건축자입니다. 신앙적으로 무슨 뜻이냐?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집을 짓는 자는 신앙의 집을 잘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주님의 말씀에 입각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신앙의 집을 지으면 미련한 건축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집들은 보통 동굴과 장막, 그리고 가옥의 형태가 있습니다. 동굴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요, 장막(텐트)은 양이나 소와 같은 가축업을 하거나 주거가 일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같은 믿음의 족장들은 가축업자이다 보니 가축을 먹일 신선한 풀을 따라서 이동을 속히 해야 하므로 장막(텐트)이 주요 집이었습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텐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특히 돌이 많으므로 돌로 집과 건물을 건축합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보니 돌집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층수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미국 버펄로에도 가보니 귀한 대리석으로 건물들을 지었습니다. 견고하기는 한데 너무 무거운 돌을 사용하다보니 레노베이션 하기가 힘들어 건물들이 많이 낡았고 무겁고 음침한 중세의 분위기가 납니다. 토론토에도 가보니 빨간 벽돌집이 많습니다. 타운하우스도 온통 벽돌로 지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집을 짓는데 진흙 벽돌이나 자연 돌을 사용하고 돌 기초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집이란 개념은 하나님이 처음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을 때에는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지구가 마치 온실과 같아서 지구 자체가 완벽한 집입니다. 더구나 에덴동산은 먹기에 좋은 실과가 항상 있어서 실과를 저축할 창고도 따로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집 살 걱정, 집 팔 걱정, 집 지을 걱정, 집 렌트할 걱정, 집 레노베이션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자 환경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땅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고 과실이 항상 있지 않으므로 그들은 창고를 지어야 하고, 가시나 엉겅퀴 때문에 아무 데서나 누워 잠을 잘 수 없기에 안전하게 거할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을 지으려니까 아담은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인간은 집을 짓고 살아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노아 시대에는 인간의 죄악으로 홍수가 나므로 지구는 또 다시 환경의 변화를 크게 겪게 됩니다. 고로 추위나 더위 같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돌집도 지어야 하고, 나무집도 지어야 하고, 나무나 돌이 없는 에스키모 인들은 얼음으로 집을 지어야 하고, 땅이 적고 인구가 많은 데에는 고층 아파트도 지어야 합니다. 더구나 노아 홍수 후부터는 동물들도 육식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즉 동물들도 인간을 먹이로 삼고 물려고 덤빕니다. 고로 집은 필수적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집을 짓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성막(임시성전)을 지었습니다. 성막을 짓는데 주의 사항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신대로 똑같이 지어야합니다. 목수가 자기 멋대로 지으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신앙의 집을 지을 때 하나님 말씀에 입각하여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과 일치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성막을 짓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에도 설계도면대로 집을 짓지 않으면 준공검사에 합격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막을 짓고 나서 이런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39:43)
성막은 주로 텐트를 사용하여 지었습니다. 그러다 솔로몬 왕 시대 때에는 거의 순금으로 된 아주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습니다. 먼저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왕이 자기 궁궐만 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너는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성전을 짓지 말고 재료만 모아 놔라. 성전은 평화의 왕인 네 아들 솔로몬이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직업이 집을 짓는 목수였습니다. 예수님은 집을 몇 채나 지었을까?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마8:20)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보니까 집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집들도 모두가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큰 다락방이 필요하셨는데 그걸 어떻게 마련하셨을까?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을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라 ‘우리 선생님이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주인이 큰 다락방을 예비하리라.”(마22:10-12)
여러분, 이 세상 모든 집이 자기 집 같아도 하나님이 주신 재료를 가지고 집을 지었기에 실지 주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누구 집입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예수님은 우리가 거할 영원한 집을 지으시는 목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헌신과 충성의 좋은 자재를 올리면 그것으로 우리 집을 지어줍니다. 특히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56:7, 마21:13)고 하셨습니다. 성전, 교회는 특히 하나님이 구별하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거기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구약 성경 학개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부터 짓지 않고 자기 집만 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노해서 저주를 내리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 이상한 풍조가 있습니다. 자기는 자기가 살 집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과 교회는 짓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교회 짓는 것을 신앙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무형 교회도 있지만, 유형 교회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유형 교회를 세우지 않고, 무형 교회만 가지고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성전이 없으면 새벽예배도 수요예배도 드리기 힘들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여러 제약이 됩니다. 제가 감사한 것은 그래도 여기 캐나다에 와서 내 집부터 마련하지 않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부터 마련한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편 118:26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무형 교회뿐만 아니라 유형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23은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3:20-21에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특히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하나님의 성도를 채우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 일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복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파괴하면 하나님은 진노합니다. 세상에 누가 내 집 부수려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육신을 가리켜 성경은 흙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우리의 육체는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흙집이라고 합니다. 욥기 4:19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고린도후서 5:1에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흙집은 언제가 무너집니다. 보통 100년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집이 무너지면 그 육체 안에 사는 영혼은 이사를 가야합니다. 즉 영혼은 영원히 거할 천국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고로 전도서 12:5에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또한 잠언 12:7에도 말씀합니다. “의인의 집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한 집, 천국이 없으므로 결국 지옥에 가야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집을 잘 마련하기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다 쌓아 놓습니다. 우리가 거할 천국의 도시 이름은 예루살렘입니다. 물론 지금의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도 있지만 천국에도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으로 들어가는 12 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길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종 귀한 보화로 꾸며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마침내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으로 이사할 것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 영원한 집에서 신랑 되신 예수님과 사는 것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집에 대한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캐나다에 와보니 거할 집이 없으면 ‘홈리스’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하면 ‘거지’입니다. 거할 집이 없는 거지는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이 땅의 집에서 언제가 떠나야 합니다. 그 때에 내 영혼이 불쌍한 홈리스가 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옥에 떨어지면 그건 너무나 큰 비극입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인 우리는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할 맨션을 마련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거할 집을 이미 마련해놓고 우리가 와서 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주님이 우리들에게 렌트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모기지를 부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재산세 안내도 됩니다. 물론 유틸리티 빌(bill)도 나오지도 않습니다. 집을 수리하고 가꾸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녀인 우리들에게 거저 주시는 겁니다.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늘의 집에 비하면 낡은 하숙집과 같습니다. 너와 나는 하숙집에 잠시 머물다가 또 다시 거처를 옮겨야합니다. 며칠 전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라고 노래를 했던 가수 최희준 씨가 82세로 나그네 인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나그네 인생이 모두 마칠 때 영원한 홈리스가 되느냐, 하늘의 예비한 아름다운 집을 얻어 이사하느냐는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입주권이 있으면 그곳에 거하지만 입주권이 없으면 거절을 당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믿고 아름다운 하늘의 집에 소망을 두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