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라 돕는 은혜

날짜: 
2014/08/30
말씀: 
히4:16
말씀구절: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설교: 

지난 주 에드먼턴 코스타 성회를 마치고 금요일 오후 2시쯤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차고 문을 열고 여행 후의 짐정리와 세차를 하고 있는데 집 앞에 큰 차가 하나 섰습니다. 보니까 소포 배달하는 차였습니다. 그 차를 보면서 제가 속으로 외쳤습니다. “햐- 정확히 도착했네!”

이게 뭐냐 하면 몇 주 전에 제 딸의 플롯이 고장이 나서 고치려고 밴쿠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 고친 후 다시 캘거리 저희 집으로 속달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워낙 비싸다보니까 너무 신경이 쓰였습니다. 한 번 보내는 보험비만도 500불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물건을 받는 사람이 정확히 받아야 하기에 반드시 수취인의 싸인이 요구되도록 보냈습니다.

만약 수취인이 집에 없으면 물건은 되돌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가 금요일 집에 도착한 후 몇 분 후에 아주 정확하게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하듯이 시간이 맞았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코스타 성회 때에 기도한 것들을 다 들어주었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금요일 집에 도착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배달 차량이 이미 왔다 간 경우입니다. 이때 속상합니다. 물건을 찾으려고 본점까지 가야 되니까 번거롭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불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앞의 경우는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좀더 성경적인 표현을 쓰자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임했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행복하겠습니까? 사실 우리들의 기도 제목은 거의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번 코스타 성회에서 좀 애를 먹었습니다. 에드먼턴까지 운전하는 세 시간이 이상하게 피곤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드먼턴에 도착하니까 눈이 충혈이 되고 급기야 눈을 뜨기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다가 운전도 못하면 큰일 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저희 집 사람이 가지고 간 안약 중에 Natural Tears를 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 이거 안 통하는구나!” 항생제를 써야겠구나!“ 생각을 했지만 아시다시피 여기는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항생제를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저녁 시간이 되어서 일반 병원 문은 모두 닫았고, 이제 의사의 처방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곤 종합병원 응급실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비도 오고 눈은 뜨기조차 힘이 드는데 가까스로 운전을 하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거기 도착해서 등록하고 기다리는데 와-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사람들의 수가 좀처럼 줄지가 않습니다.(뭐-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한 시간쯤 응급실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그리고 임시방편으로 24시간 여는 Safeway 약품 코너에서 또 다른 안약을 사서 눈에 넣었습니다. 역시 안 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의사를 만나서 항생제가 들어 있는 안약을 사서 눈에 넣으니까 “휴- 이제 좀 살 것 같다! 이제 눈을 뜰 수 있겠구나!”

그런데 아시다시피 항생제는 시간을 맞춰서 써야 되잖아요. 설명서에는 4시간 마다 쓰라고 하는데.... 낮에는 시간을 맞출 수 있는데 밤에는 잠을 자느라 시간을 맞추기가 힘이 들잖아요. 그런데 고마운 것은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이 떠지는 겁니다. 시계를 쳐다보니까 정확히 약을 쓰는 시간인 겁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이 떠지면 또 정확히 약을 쓰는 시간입니다. 옆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원효야! 일어나 약을 집어넣어라.” “야-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구나!” 무슨 은혜이지요?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만약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참- 난감해집니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이 살지 못합니다. 신명기 28:12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 중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특히 농사꾼의 경우 때를 따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해 농사는 망치는 겁니다. 목축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를 따라 비가 안 오면 동물들 양식인 풀이 자라지 못하고 망하고 맙니다. 여기 캐나다에 와서 보니까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비즈니스가 있습니다. 골프장도 그렇고, 스키장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Car Wash(세차장)입니다. 세차장 주인의 경우 기도제목이 이것일겁니다. “주여, 때를 따라 적당히 비를 내리시고, 때를 따라 적당히 눈을 내리시옵소서!” 만약 비가 매일 내리거나 폭설이 자주 온다면 세차장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레스토랑이나 음식업을 하시는 분들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학생 때, 공부할 때, 기억력이 좋을 때에는 공부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 때에 공부하는 은혜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은혜는 임하지 않고 만날 노는 은혜만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나중에 후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처녀 총각의 경우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적당한 때에 배필감이 생겨야 하고, 적당한 때에 결혼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많으니까 제가 성경 한 구절을 더 소개합니다. 잠언18:22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짧은 인생을 살 때에 좋은 배우자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 이렇게 때를 따라 좋은 배우자를 얻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내 자신이 좋은 배우자가 되도록 자신을 잘 가꾸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하나님이 결혼하라고 할 때 너무 눈을 높이다가 그 은혜를 놓치지 마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 캐나다에서 복을 얻은 것 중에 성전의 축복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몇 년 전 캘거리에 부동산 파동이 일어나 부동산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 전에 미리 성전을 구입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성전 구입이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물론 건물이나 빌딩이 교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는 남의 성전 건물을 렌트해서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재정적이나 관리적인 입장에서 따져보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때에 우리에게 아름다운 성전을 주셨습니다. 저는 성전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복이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성전 모기지도 거의 다 갚고 7만 불 정도만 남았습니다. 교회가 일단 자기 성전이 있다 보니까, 그리고 모기지 빚도 거의 갚다 보니까 교회 운영에 좀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코스타 성회 때 80명의 교인들이 참석하여 호텔에서 지내면서 편안히 은혜도 받고 쉴 수가 있었습니다. 주최 측에서도 저만 보면 저희 교인들이 많이 참석해줘서 연신 고맙다고 합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그리고 교회적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기업의 경우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금줄이 갑자기 막히는 겁니다. 즉 그때그때마다 위기를 넘어갈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노력으로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99% 자기 힘으로 살다가도 1% 정도는 남이 도와주어야만 살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돕지 못하고 하나님만이 도와줘야 살 때가 있습니다. 만약 때를 따라서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유능하고 잘나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끝장이 나고 맙니다. 고로 하나님께 매달려야 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께 잘 보이고, 하나님의 방법을 좇아 하나님 편에 서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매주 말씀을 전할 때에도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지 않으면 설교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마태복음 24:45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즉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도 때를 따라서 말씀을 전하라는 겁니다. 특히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의 징조에 대하여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하고 물으신 겁니다. 그리고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6)고 하셨습니다. 즉 목사는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명을 가진 분입니다. 물론 성도님들의 입장에서는 때를 따라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에게 오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고로 망설이지 마시고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를 우리들에게 계속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귀한 분을 소개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누구지요? 성령님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영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은 가셨으나 예수님 대신해서 오신 성령님이 나의 안에 오면 그 분이 나의 곁에서, 나의 옆에서, 나의 속에서 항상 나와 함께 하면서 때를 따라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힘이 듭니까? 마음이 상했습니까? 갈 길이 막막하고 앞이 안 보입니까? 인생사는 힘이 떨어졌습니까?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십시오. 그 분이 때마다 시마다 분마다 초마다 당신을 도울 겁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떠나도, 친구들은 우리를 떠나도, 이 외국 땅에서 나를 진정으로 도울 사람이 없어도, 그 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때를 따라서 우리를 도울 겁니다.

고로 우리는 안전합니다. 고로 우리는 평안합니다. 고로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가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여- 때를 따라서 돕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