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장애물 경주

날짜: 
2007/01/21
설교: 

히12:1-2 마라톤 장애물 경주
인생을 종종 마라톤 경주로 비유를 합니다. 사람마다 인생의 수명이 다르므로 어떤 사람은 100년을 달려야 하고, 어떤 사람은 70년을, 또 어떤 사람은 40년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짧은 인생의 경주를 하지만, 하여간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경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장거리 경주 중 가장 긴 코스가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경주입니다.
저의 경우 장거리 경주를 해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체력장 검사 때였습니다. 그 당시 장거리 경주는 1000m 달리기였습니다. 물론 마라톤 경주에 비하면 아주 짧은 단거리 경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100m 경주에 비하면 1000m 경주는 훈련이 안된 학생들에게 장거리 경주였습니다. 저는 당시 반에서 5등 안에 들어갈 정도로 달리기에 제법 소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0m를 달리다 보면 목에서 피가 넘어올 것 같은 큰 고통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어 본 저로서는 42.195m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들이 겪는 고통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가 한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연습을 하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달리는 차 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고 싶은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인생의 경주가 너무 힘이 들어 경주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죽고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중간 중간에 장애물도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마라톤 경주를 하면서 힘이 들어 죽겠는데 중간에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경우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야만 합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는 중에 어디선가 악어가 나타나서 나를 삼키려고 합니다. 생명을 건 사투를 하면서 가까스로 악어를 물리치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천 길 낭떠러지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옆으로 돌아갈 길도 없습니다. 이제는 주위의 나무를 모아서 다리를 만들어 건너야 합니다. 갈 길도 멀고, 빨리 가야하는데 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인생은 단지 마라톤 경주만이 아닌 마라톤에 장애물까지 첨가된 힘든 마라톤 장애물 경주입니다. 그러기에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은 마라톤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경주가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중도에 포기하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패배자요 낙오자요 실패자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외국 땅까지 와서 실패자 패배자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경주를 잘 마치므로 성공자 승리자가 되고 싶습니다.
더구나 인생의 장거리 경주 중 일년이란 구간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2007년도의 구간을 잘 달리고 잘 극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경주도 잘 마치고 그 분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소원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義)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내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여러분,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인생의 장거리 장애물 경주를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그 분 앞에서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철저한 준비와 함께 좋은 방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1. 경주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술꾼은 항상 술집만 바라봅니다. 노름꾼은 노름하는 것만 바라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책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맨날 컴퓨터 게임이나 채팅이나 야한 사이트만 바라봅니다. 우리는 누구를 바라봐야 합니까? 본문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경주자가 정신이 딴 데 가거나 한 눈을 팔면 경주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어떤 한 젊은이가 어려운 과거시험에 응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시험공부를 하기 전에 먼저 매우 지혜 있고 덕망이 높다는 한 노인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과거시험에 합격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좋은 비결이나 방도가 없습니까? 있다면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을 받은 노인은 엉뚱하고 이상한 지시를 하였습니다. "자네, 여기 바가지에 가득 물을 담고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 올수 있겠나?" “물론이죠.” “그럼 한번 다녀오도록 해 보게나!”
물이 잔뜩 든 바가지를 손에 든 청년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한 방울의 물이라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는 노인의 말을 생각하고 온 정성을 다하여 동네를 한바퀴 돌고 노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젊은이, 자네가 동네를 한바퀴 도는 동안 어여쁜 여자를 보았는가?“ “아니요!” “술집을 보았는가?” “아니요!” “길거리에 사람은 많이 나와 있던가?” “아니요! 저는 전혀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오로지 이 물 컵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그걸세. 자네가 물었던 과거시험 합격하는 비결과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일세. 오직 자네가 목표한 과거 시험의 관문을 통과하기까지는 그 시험 외에 그 어떠한 것을 바라보거나 마음을 주거나 한 눈 팔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일세.” 그 말뜻을 알아들은 그 청년은 오직 과거 시험을 치루는 동안 한눈팔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함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2. 경주자는 무거운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1절 중반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등에 무거운 것을 지거나 긴 옷을 입고 뛰지 않습니다. 경주자는 자기 몸에서 짐이 되는 것은 모두 벗어버리고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뜁니다. 수영선수들은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 버린 선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제대로 달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세상의 집착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가로막는 마귀의 유혹을 담대히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이 당신을 제대로 달리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입니까? 안목의 정욕입니까? 세상의 자랑입니까? 세상적인 근심입니까? 미움과 원망입니까?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답답게 하는 것을 지고서는 제대로 경주를 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스위스 알프스 산간 마을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사랑이 많고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동생은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 덮인 알프스 산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누군가 사람들을 구조하러 가야하는데 그 눈 덮인 험한 산을 오르기가 너무나 위험해 사람들이 구조에 나서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형제가 그 사고지점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형과 동생의 목적이 서로 달랐습니다.
형은 사람을 구하려는 목적이었고, 동생은 비행기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재물이 탐이 나서 올라간 것입니다. 형제가 어렵게 그 곳에 도착하여 눈 속에 파묻힌 비행기를 찾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미 다 죽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죽지 않은 한 사람이 발견된 것입니다. 형은 그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비행기 문으로 썰매를 만들며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사람들의 지갑을 뒤지고 카메라를 모으고 재물을 모으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형은 임시로 만든 눈썰매에 부상당한 사람을 태우고 마을로 내려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출발할 생각을 하지도 않고 계속 죽은 사람들의 시체 속에서 귀중품을 모으기에 바쁩니다. 형이 할 수 없이 먼저 출발을 하자 동생도 뒤에서 허겁지겁 뒤따라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아주 깊은 계곡이 그들의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형이 조심해서 건너고 있었는데 헐레벌떡 스키를 타고 뒤따라오던 동생은 그만 계곡과 계곡 사이를 살짝 덮었던 눈 위를 지날 때에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결국 수십 밑에 계곡 사이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당신을 무겁게 하므로 경주는커녕 당신을 깊은 파멸의 계곡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속히 벗어버리십시오. 세상 욕심과 쾌락과 미움과 원망의 죄를 지고서는 도저히 무거워서 경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벗어버릴 것은 빨리 벗어버리고, 풀어버릴 것을 빨리 풀어버려야 합니다. 2007년도 새해를 뛰어가면서 상쾌한 출발을 해야지 무거운 출발을 하면 중도에 힘이 모자라 탈락하기 쉽습니다.
3. 경주자는 장애물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여기 캐나다 텔레비전에 보면 가끔 개들이 나와서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개는 빨리 달려가느라고 신경을 쓰느라고 주어진 장애물을 통과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개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개에게 다시 돌아와서 장애물을 통과하라고 사인을 보냅니다. 그렇게 장애물을 통과하지 않은 개는 나중에 보면 기록이 저조하게 됩니다.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남들보다 빨리만 달려가느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물을 통과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면 아무리 일등으로 골인을 해도 나중에 실격이 되고 맙니다. 고로 경주자인 우리는 무심코 라도 장애물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야합니다. 물론 경주자에게 있어서 누구나 장애물이 귀찮지요. 그러나 장애물 경주에서 장애물이 귀찮다고 그냥 지나치면 안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의 경주에 있어 골인지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장애물 경주인만큼 장애물이 올 때에 그것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2007년도의 구간에도 저와 여러분 앞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애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애물 경주에 장애물이 없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입니다. 어차피 통과해야 할 장애물이라면 반드시 통과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경주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본문 1절 후반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경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전도사님이 외국인 선교사님의 추천을 받아야 해외에 선교사님으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외국 선교사님을 만나서 추천을 부탁하기 위하여 전화를 걸어 선교사님을 찾아뵙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외국인 선교사님이 전도사님을 만나자고 한 시간은 새벽 4시였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에 선교사님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문은 잠겨 있었고 무려 다섯 시간을 기다려서 아홉 시가 되어서야 외국인 선교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질문하기를 “일 더하기 일은 몇입니까? 사람의 팔은 몇 개입니까?” 등등 아주 뻔한 문제가 적힌 시험지를 내놓고 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전도사님은 성실히 다 기록하고 제출하자 이제 시험이 끝났으니 돌아가도 좋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선교사님은 집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이런 답장이 적힌 편지가 왔습니다. “당신을 선교사로 추천합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시간관념이 뚜렷하고 기다리는 인내심과 무시당함을 참는 인내심에 합격했기에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라톤 선수에게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라톤 코스를 선수들이 달리다 보면 대략 세 번의 고비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고비는 11∼15km를 달릴 때 제일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30km 가까워지면 또 다시 두 번째 고비가 온다고 합니다. 그때에는 온 전신에 피로가 몰려오고 그냥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30km의 두 번째 고비를 넘기면 또 다시 세 번째 고비가 오는데 그 세 번째 고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육신의 힘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이를 악물고 인내하며 뛰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 경주장에는 예기치 않는 고난과 시련이 부딪혀 오기도 하며, 눈물과 슬픔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중국의 어느 집에 9식구가 한집에서 아주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옆집 사람이 화목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주인이 광으로 이웃을 안내했습니다. 그 광에는 항아리가 하나 놓여져 있었는데 그 항아리 안에 보니 ‘참을 인(忍)’으로 쓰인 종이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즉 그 식구 가족들은 마음이 상할 때마다 먹물로 ‘참을 인(忍)’ 자를 쓰면서 참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하고, 하고 싶은 행동도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당장은 마음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것이 나의 믿음을 보존하고, 이웃간의 평화를 만들며 사랑을 유지하는 비결인 것을 알게 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참지 못해서 싸움이 나고, 참지 못해서 갈등이 생기고, 참지 못하여 헤어지고, 참지 못하여 온갖 비극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올해에도 우리는 경주를 잘 마치기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로부터 배반을 당해도 참으셨고, 고통의 십자가를 참으셨고, 조롱을 참으셨고, 뼘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해도 참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참아야 합니다. 때때로 모욕을 당해도 참아야 합니다. 억울해도 참아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참아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마라톤 장애물 경주는 참는 것입니다. 누가 끝까지 잘 참느냐에 따라 경주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아무쪼록 잘 참고 견디므로 신앙의 경주를 잘 마치고 그날에 주님 앞에서 면류관을 받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