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날짜: 
2016/01/01
말씀: 
막10:51-52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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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 바디메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것처럼 2015년 새해 벽두부터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때 바디메오가 분명하게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대답한 것처럼 우리도 분명히 우리의 소원을 대답하여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므로 바디메오가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므로 기적은 일어납니다.
올해, 지금 소원이 무엇입니까? : 남편, 아내, 자녀, 가족, 친척, 이웃, 친구, 교우,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배를 열심히 드리자 하루는 하나님이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너는 구하라.” 이때 솔로몬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잘 다스릴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가 내 마음에 꼭 든다.”고 말씀하시고 구하지도 않은 이것저것을 모두 다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면 생기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눈에 안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없어도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었습니다. 고로 지금은 없어도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솔로몬처럼 자신의 임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 바르게 구하면 이것저것 모두 다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기도제목이 응답 받는 한 해, “하나님이 대사를 행하셨으니 나는 기쁘도다!” 하고 활짝 웃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사) “올해는 활짝 웃는 한해가 됩시다.”
주님께 좋은 것 얻기 위해서는 마음의 소원, 바라봄, 꿈, 환상, 비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치 돋보기 초점이 맞아야 불이 붙는 것처럼 목표가 바르고 뚜렷해서 하나님께 계속 매어 달려 기도하고 행하면 반드시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꿈과 비전, 바라보는 강렬한 소원을 주십니다. 기리고 기도하게 합니다. 빌립보서 2:13에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창세기 13:14-15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네게 주노라.” 그러므로 우리도 희망을 갖고 눈을 들어 아브라함처럼 바라보아야 합니다. 2016년도도 뉴스미디어는 세계가 여전히 힘이 든다고 합니다. 캐나다도 경제가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도리어 위기가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입니다. 특히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가능케 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올해를 각자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계기로 삼아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꿈이 있었기에 모진 역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한때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또한 강간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외국 땅에서 수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낙심과 절망을 하며 자살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찬란한 꿈이 있었기에 역경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급과 그 모든 지역을 극한 기근에서 건지고,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들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외국으로 도망 와서 외삼촌의 양떼를 쳤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약속을 깨고 자기에게 약속한 월급을 계속 주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양떼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러나 짐승들이 수태할 때 그는 나무껍질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자기도 바라보고 짐승들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짐승들도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 새끼가 태어날 때 보니까 아롱지고 얼룩덜룩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짐승이 바로 외삼촌과 약속한대로 자신의 보수요, 자신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결국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 역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새처럼 날아보았으면!” 하고 꿈을 꾸니까 결국 비행기를 발명하고 인간도 새처럼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달나라에 가보았으면 좋겠다!“ 하고 꿈을 꾸니까 인간은 결국 로켓을 만들어 달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자고로 인간이 바라보는 것은 마침내 성취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바라보면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네게 이르노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33:2-3)
예수님 당시 이방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주여 내 딸이 귀신이 들려 너무 괴롭습니다. 그로 인해 가정이 힘이 듭니다. 내 딸을 고쳐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이 그녀의 믿음을 시험해보려고 말씀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아니, 주지 않으려면 그냥 주기 싫다고 하시지, 왜 남을 개라고 모욕을 줍니까? 그것도 예수님이! 그것도 여자에게! 이거 인권 유린이 아닙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모욕을 당하면 “에이, 기분 나빠! 야 니나 개xx이다!” 하고 예수님께 쏘아대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쉽게 토라지지도, 쉽게 시험 들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주님이 저를 개라고 부르시니 개 같은 저에게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부스러기가 없으면 국물이라도 주시라니까요.“
아-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크게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칭찬한 후 그녀의 딸을 고쳐주었습니다. 여러분! 자고로 예수님께 간절히 바라보고 매어 달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응답이 주어집니다. 고로 이 한해 뭔가 마음이 좋지 않아도 뒤로 물러서지 말고 주님께 계속 매달리십시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좋은 것을 주십니다.
나아만 장군을 보십시오. 그는 당시 강대국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명예가 있고 돈이 있고, 지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한 가지 큰 근심과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가 문둥병이 든 것입니다... 속으로는 살이 썩어갑니다. 그래서 그는 병을 고침 받으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종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당신 문둥병에 걸려 더럽고 부정하니 내 집안에 들어오지 말고 요단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으시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가 심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이놈! 두고 보자.” 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부하의 말을 들었습니다. “주인님! 선지자가 더 어려운 일을 시켜도 병 낫기 위해는 할 텐데 그것 뭐가 어렵습니까? 한 번 해 보시지요?”
그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돌이켜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갔습니다. 물론 여섯 번째 까지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가 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어린 아이의 살처럼 보들보들 거렸습니다. 아- 이게 꿈인지 생신지!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응답과 기적을 원하십니까? 포기하지 말고 일곱 번 매달리십시오. 끝까지 이룰 줄을 믿고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자고로 바라보는 것(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도리어 망하고 맙니다. 올해 망하느냐 흥하느냐, 성하느냐 쇠하느냐는 무엇을 바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고로 기도하며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외치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성령님이 오신 목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오순절 날 성령을 받기 전에 제자들은 앞이 캄캄했습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받으니 그들에게 희망이 보였습니다. 용기와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핍박과 환난 속에도 마침내 로마를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어려운 역경에서도 희망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외치고 그 희망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2016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올해 우리에게는 상당히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가슴 벅찬 감격이 미리부터 올라옵니다. 물론 과정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저는 올해 우리 교회 또 한 번의 부흥의 기적을 기대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은 여전히 안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뭔가 이루어지겠다는 징조를 미리부터 봅니다. 그 징조란 하나님이 저에게 기도 시간을 늘렸다는 겁니다. 새벽예배에 한 시간짜리 기도 테이프를 한 번 더 돌립니다. 즉 한 시간 기도를 하다가 두 시간을 기도하는 겁니다. “Play again!"
기도 하시는 분은 알고 있을 겁니다. 두 시간 기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일단 두 시간 기도를 마치면 얼굴이 펴집니다. 즉 울상, 죽을상이 펴집니다. 그리고 얼굴이 밝아집니다. 힘이 납니다. 이제 뭔가 된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 속에 주님은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이 하늘 아래, 이 땅 위에서 사는 목적은, 그리고 이곳 캐나다 땅에 온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더욱 많은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곳 캐나나 땅,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앨버타 주는 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이민 오시는 분들도 줄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악조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아니- 기적은 본래 악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우리는 각자 이런저런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자고로 때는 말세이니 하나님도 바빠지셨습니다. 신속히 자신의 백성을 하나라도 더 구원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습니다. 그리고 노력합니다. “주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시켜 주시옵소서. 저도 애를 쓰겠습니다.”
올해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한 번 더 기도하게 하소서. 한 번 더 감사하게 하소서. 한 번 더 인내하게 하소서. 한 번 더 쓰임 받게 하소서.” 여기서 ‘한 번 더’라고 하는 것은 ‘Play again' 즉 ‘계속해서‘라는 뜻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될 때 까지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침내 저와 여러분에게도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시고, 우리는 각자의 소원을 아뢰고, 주님은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하고 말씀하시도록 바라보고 매달리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쪼록 2016년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꿈꾸고, 그 꿈이 성취되는 좋은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