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능력입니다.

날짜: 
2020/10/18
말씀: 
고전4:19-20
말씀구절: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설교: 

며칠 전 제가 꿈을 꾸었습니다. 귀신들이 공중 권세를 잡고 한 마을을 통째로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 안에는 제법 큰 교회도 있었고 그 안에 성도님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중 권세를 잡은 귀신들이 너무 힘이 세고 많아서 그 마을 전체가 뭔가 힘이 들어 보이고 분위기가 눌려 있었습니다.

이때 이들을 돕기 위해 한 천사가 그 마을에 내려오려고 하는데 그 동네의 귀신들이 워낙 많고 하늘에서부터 완강하게 저항을 하여 천사가 감히 그 마을에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 다른 험악한 귀신들이 나타나더니 그 마을의 성도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려고 그 마을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제가 그 귀신들을 대적하여 싸웠습니다. “예수의 피! 물러가라.” 그런데 그 귀신들이 잘 물러가지 않습니다. “아- 이 녀석들! 왜 이렇게 안 물러가는 거야?” 하며 애를 먹다가 꿈이 깼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주여, 예수의 피를 외쳐도 귀신들이 잘 안 물러갑니다. 어찌합니까?”

이때 즉시 깨달음이 옵니다. “아- 내가 능력이 떨어졌구나!” 그래서 그 해답을 찾으면서 오늘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세상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천들을 비꼬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쟁이들 말은 잘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 행동이나 열매는 아니라는 겁니다. 즉 많은 크리스천들이 올바르게 살고는 싶지만, 또 그렇게 말은 하지만 능력이 딸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능력이 문제입니다. 학생들, 공부 잘하고 싶습니다. 나도 우등생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들이 능력이 딸립니다.

운동선수들 해트트릭을 하고 싶고, 홈런 치고 싶고, 우승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능력이 부족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합니다. 외국 땅에까지 왔으니 기왕이면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딸립니다.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능력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 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웅변과 지혜와 지식을 통하여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과 파를 만들어 교회가 만날 시끌시끌했습니다. 교회가 파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라.”(고전4:19)

즉 능력은 없으면서 말만 하고 열매가 좋지 못한 사람들을 책망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딤후3:5) 그러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것은 가짜요, 사이비 신자입니다.

저도 매주 말씀을 잘 전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능력을 주지 못하고 그저 모양만 갖추게 하고, 귀만 크게 만드는 교만한 신자가 되게 하지 않는가 하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함에 대하여 자신 있게 고백합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살전1: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여러분, 부탁합니다. 능력이 함께 따르는 성도가 됩시다. 그런데 그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급 사건은 애급 신들의 능력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대결이었습니다.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바로 왕은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바로야, 좋게 말할 때 내 백성을 내보내라.”고 하지만 바로 왕은 계속 강퍅하여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애급에 드디어 10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이때 애급의 술객들과 모세간의 능력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먼저 모세가 하수가의 물들을 지팡이로 치니까 그 물이 ① 피로 변합니다.

그러자 애급의 술객들도 똑같이 물을 피로 변하게 합니다. 이번에는 모세가 수많은 ② 개구리를 물들에서 올라오게 합니다. 그러자 애급의 술객들도 똑같은 능력을 행합니다. 이번에는 모세가 땅의 티끌을 ③ 이로 변하게 합니다. 그러자 애급의 술객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똑같이 해보려고 하지만 능력이 딸려서 하지 못하고 바로 왕에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출8:19)

그래도 바로 왕이 계속 강퍅하니까 ④ 파리 떼가 일어나고, 가축들에게 ⑤ 악질이 일어나고, ⑥ 독종이 발하여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바로 왕이 강퍅합니다. “아니, 이 녀석! 왜 이렇게 강퍅한 거야?” 그런데 바로가 이렇게 강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라.”(출9:16)

그리고 하나님이 이어서 ⑦ 우박을 내리고, ⑧ 메뚜기 재앙을 일으키고, ⑨ 흑암 재앙이 3일간 일어나고, 마지막으로 애급의 ⑩ 장자들을 모두 죽이는 재앙이 일어납니다. 이런 10가지 재앙을 겪게 되자 애급의 바로 왕이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애급을 떠나자 또 다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홍해수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모두 죽고 맙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하나님이 성경에다 자세히 기록해 놓은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능력의 하나님을 전파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일 능력도 있고, 살릴 능력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기도 하시고, 높은 자를 끌어내려 낮추는 능력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을 멸하기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세계 모든 만민들은 능력의 하나님 앞에 잠잠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며 권능을 그에게 돌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대상16:11) 어떻게 그 능력을 구하느냐고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느니라.”(대하16:9)

같이 따라해 봅시다. “전심으로” 여러분, 인간과 신의 차이점은 불완전과 완전의 차이입니다. 신의 세계는 항상 100% 완벽을 추구합니다. 고로 신중의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 우리는 신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표현이 바로 ‘전심으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자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마22:32)입니다.

가끔 무당들이 자기의 신과 접속하기 위하여 몇 시간 씩 정성을 다하여 춤을 추고 예식을 행하다가 신이 임하지 않으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에이, 부정 탔다.” 즉 신이 임하기 위한 완벽함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응답이 필요한데 아직 나타나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스스로 한번 체크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과연 전심으로 했는가? 아니면 적당히 혹은 부족하게 했는가? 만약 부정이 탔다면 그 부정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 부족했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하루에 한 번씩 6일간을 돌고, 7일째 되는 날에는 7번을 돌아야 합니다.

총 13번을 빠짐없이 돌아야 합니다. 여기서 한번이라고 빠지면 여리고 성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고침 받을 때에도 요단강에 7번 들어가야 합니다. 6번째까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전심으로 그 수와 양과 질을 채울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고로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을 얻기 위해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까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같이 따라 해봅시다. “전심으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물리치니까 당시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합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자에게 말합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

그러자 귀신이 대답합니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19:15)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을 쥐어 팹니다. 결국 그들은 발가벗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갑니다. 즉 마음속에 능력의 주인인 예수님 없이 말로만 입으로만 외쳐서는 능력이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즉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 밖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나는 너는 우리는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고로 예수님을 떠나면 우리는 망하는 겁니다. 능력의 예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해야 비로소 거기에 성공도 있고, 행복도 있고, 기쁨과 보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능력의 예수님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스스로 예수님을 싫다고 차버리거나 대놓고 무시하면 예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라 섭섭해 합니다. 아니, 전심으로 능력의 예수님을 구해야 할 인생이 전심으로 예수님을 떠나면 어쩌자는 겁니까? 결국 능력이 딸려서 마귀에게 이리저리 얻어터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인생이 힘들고 피곤해지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인생이 힘들고 피곤한 분은 능력의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여 그 분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느니라.”(사40:28-29)

여러분, 우리 모두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도 능력이 있으니까 착한 일을 하실 수 있으셨고, 능력이 있으니까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올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 즉 우리는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비참해집니다. 그런데 능력은 나에게 없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우리는 약합니다. 고로 능력의 하나님을 더욱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약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더욱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결론입니다. 문제는 능력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능력을 내 육체와 생활과 마음에 끌어들이십시오. 그 분의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가십시오.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분의 능력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십시오.(골1:29)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