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타임머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인간은 상상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희한한 재주를 가졌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 말을 하고 싶으니까 전화를 만들었고,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사진기와 비디오도 만들었고, 극장이나 운동장 같은 현장에 안가도 안방에서 현장을 보고 싶으니까 TV도 만들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하니까 비행기를 만들었고, 물속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니까 잠수함을 만들었고, 달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까 우주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타임머신은 아직 인간으로서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맞지요? 그러나 신(하나님)은 가능하겠지요? 귀신들도 미래에 대한 점을 치고, 과거의 죽은 사람의 모습을 알고, 죽은 사람의 목소리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보면 그들도 어느 정도 과거와 미래를 아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앞으로 세상의 될 일을 자세히 기록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에게는 타임머신이 없어도 타임머신과 같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일들을 아시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좀 더 유식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가고 싶습니까? 이 자리에 미혼인 분들은 아마 나의 결혼식 날, 결혼식장에 가서 과연 누가 나의 배우자인지 미리 보고 싶지는 않습니까? 보고는 싶지만 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는 않을까요? 왜냐고요? 보면 충격 받지 않을까요?
어- 이 사람이 내 배우자 될 사람이야? 어떤 분은 좋아할 사람도 있겠고, 어떤 분은 낙심할 사람도 있겠고, 어떤 분은 슬퍼할 사람도 있겠고, 어떤 분은 기뻐서 웃을 사람도 있겠고... 이미 결혼한 분은 이런 꿈도 꾸지 마십시오. 한 번의 생각, 한 번의 기회로 족합니다. 두 번 세 번 하면 팔자 사나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미혼인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 실망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
제가 중학교 때부터 남몰래 최면술을 배워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최면술을 배우려는 동기가 있었는데 중학교 때에 한 선생님이 최면술을 아주 잘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공부하다가 지루하면 우리가 그 선생님에게 졸랐습니다. "선생님, 최면술 좀 보여주세요." 그때 선생님은 항상 이리저리 빼고, 또 이런 저런 조건을 달면서 잘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선생님을 코너로 몰아댑니다. “선생님, 다른 반에서는 보여주시고 왜 우리한테는 안보여 주시는 거예요? 왜 사람 차별하느냐고요?” 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선생님도 할 수 없이 최면술을 보여줍니다. 먼저 조용히 무드를 잡습니다. 주의 사항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최면술은 머리가 좋은 학생이 걸리고 멍청한 학생은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숫자를 세는 동안 여러분은 잠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목소리를 내려 깔면서 “하나, 둘 셋... 서른넷 서른다섯....” 하고 숫자를 한참동안 셉니다. 이미 선생님이 말했듯이 멍청한 학생은 최면술에 잘 걸리지 않고 똑똑한 학생이 최면술에 잘 걸린다고 했으니까 학생들이 일부러 숫자가 열 도 안 세었는데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시늉을 합니다. 어떤 학생은 일부러 코고는 소리를 냅니다.
그러면 옆에 학생이 킥킥대면서 웃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잠을 잡니다. 스스로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잠을 자는 시늉을 하는 겁니다. 쿨쿨쿨 드르렁 드르렁 ... 그런데 아- 진짜 최면에 걸려서 자는 쪼다 같은 친구 녀석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진짜 최면에 걸린 아이들을 대여섯 명 뽑아서 앞으로 걸어 나오게 합니다. 일단 최면에 걸렸으니 혼자서는 걸어서 잘 못나오기 때문에 선생님이 부축을 해서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진짜 최면에 깊이 걸린 아이를 두 명 추려냅니다. 누군가 보았더니 진짜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순진한 녀석들입니다. 그들을 향해 선생님이 좀 더 구체적인 최면을 겁니다. “자- 지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어서 우산을 하나씩 줄 테니까 우산을 받으세요.” 그러고는 그들에게 우산이 아닌 볼펜을 하나씩 줍니다. 그러나 최면에 걸린 애들은 그것이 우산인 줄 압니다.
선생님이 다급하게 외칩니다. “아- 지금 빗줄기가 세게 내리고 있어요. 빨리 가지고 있는 우산을 펴세요.” 그러자 그들이 볼펜을 우산으로 알고 우산을 펴는 시늉을 합니다. 보는 우리들은 “아- 되게 신기하다!” 하고 쳐다봅니다. 선생님은 계속 최면을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배가 매우 고픕니다. 아침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어요. 선생님이 먹을 것을 줄 테니까 받아먹으세요.” 하면서 그들에게 지우개를 건네줍니다. 그들은 배가 고프다고 그 지우개가 음식인 줄 알고 먹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최면이 계속 댑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문방구에 왔어요. 공책을 살려고 해요. 아- 그런데 돈이 없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돈을 꾸어 줄게요.” 하면서 가짜 종이돈을 건네줍니다. “자- 200백 원을 꾸어줬으니까 나중에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에게 갚으세요. 알았지요. 알았으면 고개를 두 번 끄덕여 봐요.” “끄떡 끄떡”
그런데 그렇게 최면에 걸린 아이가 나중에 최면이 깨고 난 후에 진짜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에 말합니다. “선생님, 꾼 돈 200원 가지고 왔어요.” 아- 참 돈 벌기 쉽습니다. 이게 바로 최면술 사기라는 겁니다. 혹 최면술 사기꾼이 이런 최면도 합니다. “당신의 장래 배우자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한번 눈을 감아보세요. 1분 동안 절대 눈 뜨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돈 훔쳐가는 겁니다.
요즘은 최면술을 걸어서 환자의 과거로 여행하며 치료하는 최면술 요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과거나 미래에 대하여 점을 치는 행위(타임머신 여행 행위)에 대하여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런 일을 하는 무당들, 신접한 자들은 모두 죽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왜 그렇게 이것을 엄격하게 금지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은 다 주었지만 선악과만큼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과, 배, 복숭아, 수박 하나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영역이니까 이것은 인간이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악의 기준이 올바른 하나님과 다르면 늘 하나님과 마찰이 생기고 싸움이 납니다. 그러면 인간은 불행해지고 맙니다. 에덴동산이 파괴됩니다. 하나님과 같이 지낼 수가 없습니다. 고로 선악을 판단하는 영역은 인간이 침범하지 말고 하나님이 정한 선악의 판단을 따르라는 겁니다. 그래야 피조물이 행복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동성애는 나쁘다. 그것을 하면 인간에게 에이즈라는 불치병이 생긴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라고 선악의 기준을 정했는데, 인간이 ”동성애는 좋은 것이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하면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뻔합니다.
그리고 생명도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요즘은 생명 공학이 발달해서 인간이 생명을 만드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었지만, 인간은 유에서 유를 만듭니다. 하루는 하나님과 생명공학자인 인간이 누가 사람을 더 잘 만드는가 시합을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듭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하나님...”
생명공학자도 하나님을 따라서 시도합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합니다. “잠깐만, 자네 왜 내 흙을 가지고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가? 자네 흙으로 하게나.” 그러자 생명공학자가 멍- 찌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의 흙은 모두 하나님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복제를 하게 될 때 완벽한 인간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합니다. 그 중에 눈이 하나 없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한쪽 다리가 다른 쪽에 비해 짧은 사람도 나올 것이고... 하여간 수많은 실패작(괴물)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 이들을 죽여야 합니까? 살려야 합니까? 즉 인간의 존엄성이 스스로 파괴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면 인간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위험합니다. 재앙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께 허가 받지 않은 여행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무당들, 신접한 자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영역을 허가받지 않고 침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여행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일이 발생할 것 같습니까?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역사의 주관자가 되어 질서를 파괴시키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식장에 가보니 내 이상형이 아닙니다. 그러면 배우자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로또 번호를 알려고 발표 시간대는 장사진을 이루고 치열한 싸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즉 인간이 타임머신 행위를 하는 것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로 컴퓨터에 침범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파일들이 변형되고, 중요 정보가 사라지고, 컴퓨터가 느려 터지고 작동이 안 되고 맛이 갑니다. 이때 컴퓨터 주인은 백신 프로그램을 돌립니다. 왜냐고요? 그 바이러스 제거하여야 컴퓨터가 살기 때문입니다. 즉 허가 받지 않은 타임머신 행위, 신접한 행위를 하면 하나님이 제거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과학이나 귀신의 힘을 빌려 과거로 여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주관하신 과거의 역사의 현장을 가서 보거나 되돌리는 행위는 금지입니다. 옛날의 기록영화나 사진을 보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현장에 직접 가는 것을 금합니다. 더구나 과거의 일들을 바꾸려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합니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아직 과거로 갈 능력이 없고, 따라서 과거를 바꿀 능력도 없습니다. 아마 인간이 과거를 바꿀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을 안 믿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가 죽는 순간에 또 다시 과거로 여행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만 여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미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부분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지 않아도 우리는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장차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지식은 많아지고, 교통은 빨라지고, 과학은 발달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성이 타락해지므로 고통하는 시대가 됩니다. 아니, 목사님이 그것을 어떻게 자신합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보고 왔습니까?
아- 예,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차 이 세상은 노아의 홍수처럼 다시 한 번 불로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폭죽 터지듯이 핵폭탄이 터집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 지구의 지형이 바뀌게 됩니다. 아니, 그것도 성경에 쓰여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자신 있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의 50년 후, 100년 후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제가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할머니 할아버지 됩니다. 아- 다시 아기가 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때는 주름살도 생기고, 아름답고 멋있는 용모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죽음이란 것이 찾아와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아- 나는 늙기 싫어! 아- 나는 죽기 싫어!
그런데 장차 당신이 늙고 이 땅에서 죽어 없어지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목사님, 죽으면 그냥 연기처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또 뭐가 있습니까? 예, 이것도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즉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는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즉 당신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때문에 확실히 천국에 갑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혹 이에 대해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당신이 천국이나 지옥을 가 보았습니까? 왜 가 본 것처럼 이야기합니까?” 여러분, 꼭 가서 봐야만 압니까? 우리는 직접 가보지 않아도 압니다. 저는 영국에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아프리카도 가보지 않았습니다만 아프리카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가 봐야 알지!“ 하는 사람은 의심이 많은 겁니다. 이미 성경에는 타임머신 보다 더 정확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천국입니다. 영생입니다. 부활입니다. 나는 부족해도,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으니 나는 용서받고 반드시 천국 갑니다.
목사로서 가장 큰 기도 제목과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고로 오늘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가르쳐 드립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