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목적 바른 수단

날짜: 
2005/08/14
설교: 

막10:35-45 바른 목적 바른 수단
옛날 가난한 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덕군자였고 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을 읽어 둔갑술도 대단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한 의원이 찾아와 개 천 마리를 먹으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효자는 한밤중에 도술을 부려 호랑이로 둔갑했습니다. 그리고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 도둑질을 했습니다.
개 9백99마리를 잡아와 어머니에게 드리니 병도 거의 나았습니다. 이제 한 마리만 먹으면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남편의 행적을 이상하게 여겼던 아내가 도술 책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로 둔갑했던 그 효자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어, 거친 호랑이로 날뛰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도 죽고, 그의 아내도 죽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불의한 도둑질을 하다가 가족 전체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고 좋다고 해도, 그 목적을 성취하는 그 수단이 그릇되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즉 "성경을 읽는다는 구실로 남의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서양 격언도 바로 이런 것을 깨우치고자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을 살 때 목적도 옳아야 되고 수단과 방법도 옳아야만 합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신앙 서적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새들백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신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 원어로는 ‘40 days of purpose'라는 책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유학생들을 비롯해 성인 ’말씀 나눔반‘에서도 이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라는 서론의 질문과 함께 다섯 가지 목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다. 다섯째,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즉 인생의 바른 목적을 통하여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적을 갖는 다는 것, 다른 말로 말하면 꿈과 비전을 갖고 목표를 세우며 나아가는 것은 마치 항해하는 배가 나침반을 갖고 항해하는 것과 같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침반이 없으면 아무리 호화스런 배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항구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죽음의 유령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 목적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삶의 목적이 있나요? 없나요? 있다면 어떤 목적이 있나요?”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라면 이 질문에 이렇게들 많이 대답할 것입니다. “예, 저는 좋은 대학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들에게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이제는 무슨 목적이 있나요?“ 하고 물으면 ”예, 좋은 직장에 취직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요, 그 다음은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목적이요, 그 다음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벌거나 진급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대답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대학을 가는 것이나, 돈을 버는 일이나, 아니면 출세하여 명예를 얻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바른 삶이라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즉 대학을 가더라도 바른 목적이 있어야 되고, 결혼을 하더라도 바른 목적이 있어야 하고,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해도 바른 목적이 있어야 하고, 유학을 와도 바른 목적이 있어야 하고, 이민을 와도 바른 목적이 있어야 진정한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시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시계는 자기 혼자 뱅글뱅글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시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시계가 이러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자기 마
음대로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목적인 줄 알고 신나게 돌고 또 도는 일에만 열심을 낸다면 그 시계는 갖다 버려야 되는 폐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도 먹고, 자고, 일하고, 자녀 낳고 바쁘게 사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닙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목적에서 어긋날 때, 혹은 이 목적을 깨닫지 못할 때 아무리 명예와 재산을 다 소유했다고 해도 참 만족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바른 인생의 목적을 두는 사람은 참된 인생의 보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확인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원 즉 교회의 목적은 관광지로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교회의 목적이라면 그 교회는 전시관처럼 꾸미고 단장하는 데에만 신경을 써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원의 목적은 앞서 말한 한 방문객의 질문처럼 “이 사원이 구원의 방주로서 역할을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너무나도 많은 전시관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들 들면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 목수로서 작업하는 곳에 세워진 ‘성 요셉 교회’,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예수님을 수태한 ‘수태 교회’, 예수님이 로마의 군인들에게 채찍에 맞으신 곳에 세워진 ‘채찍 교회’, 예수님을 장사한 자리에 세워진 ‘성분묘 교회‘, 세례요한을 잉태한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방문한 곳에 세워진 ‘방문 교회’ 등 많은 교회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들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라 단지 구경꾼들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관에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교회로서의 올바른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목적을 상실한다는 것은 허상을 좇아가는 것이요, 진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아직까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인생의 바른 목적을 정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우리는 그 동안 방황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이 외국 땅에서 바른 목적을 찾으십시오. 바른 목적을 깨달으십시오. 바른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십자가의 방법, 섬김의 방법, 희생의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자들은 종종 목적을 상실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제자들은 서로 다투며 주님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10:37) 즉 그들의 목적은 출세였습니다. 그리고 출세의 방법은 시기와 다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른 목적과 함께 바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하면서 공산주의 확장을 위해서는 살인, 전쟁, 거짓말,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자행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을지라도 악한 방법을 써서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마귀의 방법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령 천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백해무익한 수전노 한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 같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선한 목적, 바른 목적을 위해서라도 악한 방법, 틀린 방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쁜 방법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쁜 방법을 쓰면 결국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누가 너의 오른 뼘을 치거든 왼 뼘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폭력과 비방의 방법을 쓰지 말고, 인내와 희생과 사랑의 방법을 쓰라는 것입니다. 혹시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을 고수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바른 목적이었습니다. 바른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끝까지 바른 목적을 위하여 바른 방법을 사용하시다가 이 땅에서의 인생을 마치셨습니다. 이렇게 바른 목적과 바른 방법을 사용하시다가 죽으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 분을 메시야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바른 목적입니까? 틀린 목적입니까? 바른 방법입니까? 틀린 방법입니까?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이 끝나는 날 그 목적과 방법에 대한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처럼 바른 목적과 바른 방법을 위하여 살다가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