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날짜: 
2022/08/07
말씀: 
행26:24-29
말씀구절: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설교: 

사도 바울이 여러 고관대작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던 신비한 체험을 간증합니다. 그러자 베스도 총독이 말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그렇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면 예수님을 아주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뭔가 이성을 잃은 사람들처럼 보일 겁니다. 혹은 광신자처럼 보이거나 무식하고 덜 고상하게 보일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되고, 부흥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지금 저는 은퇴를 앞두고 우리 교회의 부흥을 드라이브 하려고 마지막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의 설교 제목이 딱 들어맞습니다. 즉 우리들도 예수님께 미쳐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 신자들은 도리어 예수님께 미칠까봐 겁을 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적당히 미지근하게 믿으려고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미지근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여러분, 뭔가에 미쳐본 경험이 있습니까? 세상에는 도박에 미친 사람이 있습니다. 아- 그거 못 말립니다. 결국 거지가 되고 맙니다. 혹은 성적 타락에 미친 사람도 있습니다. 나중에 어찌 되려고 하는지 쯧쯧쯧... 혹은 술에 미친 사람도 있고, 마약에 미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좋게 미친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에 미친 경우입니다.

한때 저도 여기 캐나다에 오기 전에 영어에 미친 적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틈만 나면 영어 책을 읽었습니다. 영어 학원도 수년간 다녔습니다. 거의 개근상을 탈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호주 원주민 선생님이 저를 보고 이제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학원에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보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영어 사전도 닳고 또 닳았습니다. 그렇게 거의 5년 이상을 미친 듯이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아하- 하나님이 나를 캐나다 선교사로 보내려는 계획이 있었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미치도록 영어 공부를 하게 했구나!”

진짜 이곳 캘거리에 와서 보니 당장 영어가 쓰였습니다. 저를 처음 만났던 교민 분이 저에게 말합니다. “목사님, 영어 잘 하시네요.” “아- 예, 제가 영문과 출신입니다.” “에이, 영문과라고 다 영어 잘하나요. 영문과 나와도 실지 영어회화는 그러지 못한 분이 많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까지도 영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시 교회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이렇게나마 영어를 못했더라면 교회가 세워지기 참 힘들었을 겁니다. 즉 한 때의 영어에 미쳐본 것이 오늘의 캐나다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때 노는데 미친 적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은 대리출석을 하거나 대충 때우고 친구들과 열심히 놀러 다녔습니다. 아니- 열심 정도가 지나쳐 아예 노는데 미쳤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주위의 친구들도 대부분 공부는 뒷전이고 같이 노는데 미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중 한 친구는 춤 선생이었습니다. 한쪽 강의실에서 녹음테이프를 틀어놓고 우리들에게 사교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실습한다고 서울의 여러 사교 클럽에 같이 쏘다녔습니다. 그렇게 놀다 보니 돈이 부족해 포커 게임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앞 에 파친코가 있었는데 그곳에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또 친구들 중에는 시골에서 올라와 공부를 하는데 그 부모님이 학자금을 매달 보내줍니다. 그러면 노는 친구들이 서로 신속히 연락을 취합니다. “야- 모여라. 모여. 친구 아무개 집에서 장학금 왔다.” 아- 노는데 미쳤습니다. 애새끼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렇게 놀기만 하니 졸업해서 뭐가 되겠습니까?

다행히 저는 하나님이 군대를 제대한 후에 회개를 시키셨습니다. 그 길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노는 친구들이 다 끊어졌습니다. 개들이 서로 말합니다. “야- 김원효가 목사가 됐데” “정말? 야- 어떻게 개가 그렇게 변하냐?“ 그렇게 제가 180도 변한 후 제 인생을 돌아보니 아- 너무도 분합니다.

그 동안 마귀가 좋아하는 일만 미치도록 열심히 했습니다. 아까운 내 청춘 그렇게 다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내 청춘을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도에 열심을 냈습니다. 아니, 전도에 미쳤습니다. 청년 때에 수백 명을 전도했습니다. 당연히 전도상을 많이 탔습니다.

그런데 여기 캐나다 캘거리 땅에 와서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전도에 미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만나는 한인들이 한국에 비하면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이 외국 땅에서 다들 바쁘게 사는데,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고, 교회에 다니라고 전도를 하려니 괜히 그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고, 그들을 괜히 번거롭고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전도 못하는 핑계를 대자면 너무 많습니다. 한 마디로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덜 미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COVID-19으로 인해 요즘은 합법적인 핑계까지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에,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님들의 숫자가 줄었습니다. 아- 이걸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시 예수님께 미쳐야 합니다. 전도에 미쳐야 합니다. 다 같이 미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다시 전도에 미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모든 분들이 같이 전도에 미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1,000년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군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1위는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낸 에디슨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집안도 대단한 것도 아니고, 99% 노력으로 1%의 천재성을 뛰어넘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그는 발명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미치지 않고서는 어떻게 평생 3,500여 종의 발명품과 1,000여 종의 특허품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 빼고 다 순교했습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데 자기 목숨을 내놓았을 정도로 미쳤습니다.

오늘의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이 말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이 말에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이 들어가야 합니다. “원효야, 네가 미쳤도다.” 여기 캐나다 캘거리 한인 사회에서도 그렇게 소문이 나야 합니다.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성도님들이 요즘 전도에 미쳤대!” 만날 전도 한대! 매주 새신자가 온대.“ 할렐루야!

그렇게 전도에 미치다 보면 때가 되면 부흥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여러분, 이제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가 이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부흥이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바로 내가 있었다고 우리들의 후대에게 간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미친 사람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합니다. 미친 사람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릅니다.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예수님을 전하는데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그들에게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나와서 좋은 소식을 듣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주저주저 해야 합니까?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이 부끄럽습니까? 너도 교회에 나오라는 말이 잘못된 말입니까?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말이 무식한 말입니까? 주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아버지의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6)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왜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못합니까? 다름 아닌 담대함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려고 해도 예수님이 아닌 자꾸 나의 연약함과 나의 부족함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에이- 나처럼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에이- 나처럼 직업도 변변치 못한 사람이, 에이- 나처럼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에이- 나처럼 외모가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에이- 나처럼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에이- 나처럼 과거가 좋지 못한 사람이 무슨 전도를 하냐?”

이때 옆에서 사단이 말합니다. “그래. 맞다. 너 주제 파악을 참 잘하는구나! 너 참 마음에 든다. 솔직히 네가 전도한다고 그 사람이 너 따라서 교회에 나올 것 같으냐? 도리어 속으로 너를 비웃을 걸!” 아- 여러분, 비웃어도 괜찮아요. 욕먹어도 괜찮아요. 수치를 당하면 어때요. 예수님은 너와 나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발가벗겨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는데 내가 좀 수치를 당하면 어때요?

그렇게 전도하다가 무안함과 수치를 당하면 주님은 그 옆에서 그 장면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수치대신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줍니다. 그리고 결국 나를 수치스럽게 한 사람을 나중에 내 옆에서 무릎 꿇게 만듭니다. 도리어 그 사람이 나중에 예수님을 나보다 더 잘 믿고, 예수님을 전도하기 위해 더 큰 수치를 무릅쓰고 생명을 바칠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한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였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많이 옥에 가두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리어 오늘 예수님을 전도하며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 미쳐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데 미쳐야 합니다. 그들을 교회에 데리고 오는데 미쳐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잘 믿게 하기 위해 미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신속히 하나님을 만나고 확실히 천국에 가야 합니다. 본문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행26:29) 즉 다 같이 예수님께 미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말세는 적당히 믿으면 안 됩니다.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적당히 믿으면 결국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적당히 믿으려고 하는 기회주의자 신자입니다. 부탁합니다. 같이 예수님께 미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께 미쳤다는 소리를 너도 나도 들어봅시다. 이곳 캐나다 캘거리 땅에서도 들어봅시다.

같이 따라해 보십시오. “내가 보니 당신 예수님께 미치셨군요.” 옆에 분에게 인사합시다. “당신도 예수님께 미쳤군요.” 여러분, 예수님께 미친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무식한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 주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함이라.”(빌3:8)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후5:13)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나와 같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나이다.”(행26:29)

기도합시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예수님께 몰두해야 하고, 예수님을 더욱 자랑해야 하고, 어디서나 예수님을 더욱 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부끄러워했던 마음을 제거해 주시고, 예수님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께 평생 미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