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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호르몬이 있습니다. 옛날 이상구 박사님이 늘 말했던 ‘엔돌핀’이라는 것입니다. 엔돌핀은 아편에서 추출한 모르핀보다 100배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엔돌핀보다 4000배나 더 강한 호르몬도 있습니다. 일명 감동 호르몬이라고 하는 ‘다이돌핀’입니다. 그리고 행복의 호르몬도 있습니다. ‘도파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혹은 슬프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의사가 도파민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파민을 조절하는 약을 먹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다면 이미 그 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용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한 약들이 행복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지만 한편으로 부작용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 중 어떤 약은 환청이 들리고 환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약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다가 한편으로는 더 기분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 약이 자살로 몰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먹은 약이 도리어 불행으로 몰아가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약을 살 때 그 약에 관한 주의 사항을 반드시 봅니다. 그리고 약 성분도 보고, 더 나아가 그 약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세심히 살펴봅니다.
예를 들면 진통제를 먹을 때 흔히 ‘타이레놀’과 ‘에드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약을 더 선호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진통제가 듣느냐는 각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타이레놀은 간에서 대사가 되고, 에드빌은 위에서 대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위장이 나쁜 사람은 타이레놀을 먹고, 간이 나쁜 사람은 에드빌을 먹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에드빌은 소염 작용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염증이 동반된 통증에는 의사들이 에드빌을 먹으라고 권할 것입니다. 그런데 에드빌의 약 성분은 '아이부프로펜'(Ibuprophen)이고, 타이레놀의 약 성분은 '아세타미노펜'(Acetaminophen)입니다. 제약회사에 따라서 약국에서 파는 약의 명칭은 다르지만 약 성분은 같고 함량도 똑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가격을 비교해서 굳이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없고 싼 것을 사면 좋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회에서 있을 때 한 총각을 전도를 했습니다. 나이가 25살 정도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벙어리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벙어리가 되었냐고 하니까 3년 전부터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자기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몸보신 하라고 한약을 지어왔는데 그 약을 복용을 하고 곧 바로 벙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약의 부작용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먹은 약이 도리어 건강을 망쳤습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만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있던 돈도 모두 까먹고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행복하다고 해서 결혼을 했는데 도리어 불행해진 경우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혼을 해서 다시 원상태로 돌려보지만 괜히 이혼녀 이혼남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칭만 생기고 말았습니다. 삶이 이전보다 더 위축되고 맙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혼남 이혼녀라고 안 하고 ‘돌싱녀’ ‘돌싱남’이라고 합니다. ‘이름하여 ’돌아온 싱글 여자‘ ’돌아온 싱글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혼녀나 이혼남이란 단어보다는 더 떳떳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혼을 하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데 유리할는지도 모릅니다.
서론은 이정도 하고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자기 자녀를 향한 부모의 소원은 내 자녀가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에게 맛있는 것도 먹여 주고, 장차 아이가 커서 행복을 얻기 위한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해 공부도 시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너무나도 극성입니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편하고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도 괜찮습니다. 이름하여 기러기 가족입니다.
남편은 아이가 유학을 가면 장차 내 아이가 행복해진다고 하니까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 놓고 혼자 방 한 칸에서 라면을 끊여 먹고 외롭고 처량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급을 받아 매달 돈을 부쳐주는 것을 사명과 행복으로 삼고 지내고 있습니다. 기러기 엄마도 대단하지만 기러기 아빠도 더 대단합니다. 아무튼 부모에게는 자기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려고 하는 모성애, 부성애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은 나의 영혼을 낳아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육의 부모도 있고, 영의 부모인 하나님도 있습니다. 육의 부모가 자기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듯이 영의 부모인 하나님도 자기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를 불행으로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니 사망도 왔고, 질병도 왔고, 저주도 왔습니다. 행복의 에덴동산도 깨지고 불행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났습니다. 즉 인간에게는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이전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아담의 자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고로 스스로 죄의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즉 스스로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실력부족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의 실력만으로는 근본적인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물질이 남보다 많이 있어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리고 자신은 건강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리고 자신은 남들보다 인물도 좋고, 학벌도 좋고, 가문도 좋고, 명예도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뿐이요, 조금 후에 죽음이 찾아오면 그 행복하다고 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맙니다.
고로 진짜 행복을 얻으려면 죽음을 초월한 행복이 필요합니다. 죽음까지도 정복하는 행복이 있어야 진짜 행복한 것이고 영원히 행복한 것입니다. 즉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이 있어야 영원히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도 그냥 또 다시 불완전한 죄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부활이 아니라, 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영화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썩지 않고 다시는 죽지 않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부활을 하셨고, 장차 우리에게도 이러한 부활을 주시어 우리를 영원한 행복한 존재로 만드실 것입니다. 고로 장차 우리는 영원한 행복, 완전한 행복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 장래의 행복을 지금 당장 누리고 살면 안 되나요? 아- 왜 안 됩니까?
우리 하나님은 장래에도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고, 오늘도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국에서도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고, 여기 캐나다 땅에서도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행복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자녀가 행복해지면 부모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반면 자녀가 불행하면 부모도 불행해지고 맙니다.
내가 불행하면 나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육의 부모님도 불행해지게 하는 것이고, 내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의 육의 부모님과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을 위해서도 반드시 행복해야만 합니다. 이 땅에서 당신의 사명은 반드시 절대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You must be happy!
오늘의 본문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긴 마지막 설교입니다. 29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적으로 보면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0년 광야생활에 지쳐 있었습니다. 당장 좋은 집도 있는 것도 아니고, 목축업을 하기에 좋은 땅도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편리하고 좋은 시설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비록 요단강을 건너기만 하면 가나안 땅이지만 아직 그곳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면 그곳의 강대한 민족들과 치열한 전쟁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행복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즉 단지 돈이 많아서, 세상 부귀영화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의 이유를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전히 축복하고 있기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낍니다. 고로 스위스의 철학자 ‘카를 힐티’는 “인생의 최대 행복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오늘날 당신의 행복은 영주권이 있느냐, 시민권이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지역, 어느 환경, 어느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무한한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영원할 것입니다.
고로 반드시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행복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당신도 우리도 모두가 “너는(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는 고백이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영원히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