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속버스 터미널에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와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가 나란히 서있었습니다. 두 운전수가 나란히 탔습니다. 손님들은 모두 피곤한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한참을 자고 있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기사가 말했습니다. “광주에 다 왔습니다.”
손님들은 기절할 뻔했습니다. “우리는 부산가는 버스를 탔는데요.” 광주까지 간 기사도 자고 있는 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부산까지 다 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사가 서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아서 이런 사고가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속 교훈집인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마차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다리가 아파서 태워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마부는 기꺼이 타라고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나그네가 감사의 인사를 하며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여기에서 얼마나 되나요?” 마부가 말했습니다. “이 정도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리지요.”
나그네는 매우 피곤하여 조금 자고 일어나 보니 30분 정도 지난 것 같아서 물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다 왔지요?” 마부가 대답합니다. “여기서는 한 시간 거리지요.” “아니 아까 30분 걸린다고 하셨는데 지금 30분 정도 오지 않았나요?” 마부가 말했습니다. “이 마차는 반대로 가는 마차요.” 아- 이 역시 방향이 잘못되어 거꾸로 가는 나그네 이야기입니다.
컴퓨터 제왕이라고 하는 빌 게이츠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대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입니다.” 즉 속도에서 밀리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속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방향입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목표에서 더 멀어지고 맙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쓴 독일의 문호 괴테가 한 말 중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Life is not speed but direction.)"
20년 전 유행어 중에 “여기가 아닌가 벼∼”라는 말이 있습니다. 밤새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아침에 위치를 확인하고 한 말입니다. “여기가 아닌가 벼∼” 사람들이 모두 힘이 빠지고 허탈해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다른 산에 죽어라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주위를 살펴보고 다시 의심스럽게 말합니다. “여기도 아니가 벼∼” “그럼 어디야?” “어제 거기가 맞은가 벼∼” 즉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나아가면 목표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죽어라고 고생만 한다는 교훈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이런 꿈을 몇 번 꾸었습니다. 제가 마라톤 선수가 되어서 다른 선수들과 열심히 코스를 달리고 있는데 옆에서 이상한 벌레들이 나타나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그 벌레들을 잡느라고 좇아가다 보니 그만 마라톤 코스에서 한참 멀어지고 웬 낮선 길에 있었습니다. 아- 난감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중요한 인생의 마라톤 경주를 하다가 하찮은 벌레 같은 문제들이 다가올지라도, 그것이 너를 괴롭게 할지라도, 그것 그리 큰 상관하지 말고, 그 벌레 때문에 마라톤 코스를 벗어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주의 일을 하다가 힘든 일이 생겨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방향이 중요한다는 교훈이나 속담을 찾아보았습니다. “산에 가야 꿩을 잡고 바다에 가야 물고기를 잡는다.” 즉 방향을 바로 잡아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속담입니다. “잘 나가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 한국의 남쪽 지방에서 진주 쪽으로 가야되는데 길을 잘못 들어 그만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다는 데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즉 처음에는 방향을 바르게 가다가 도중에 엉뚱한 방향,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목적을 상실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또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바다로 가야 할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이 뜻도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러분, 집념과 강박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방향이 바르면 집념이고, 방향이 틀리면 강박입니다. 사랑과 스토킹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향이 바르면 사랑이고, 방향이 틀리면 스토킹입니다. 로맨스와 불륜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향이 바르면 로맨스고, 방향이 틀리면 불륜입니다.
이단과 정통의 차이, 진리와 거짓의 차이도 성경과 그 방향이 같으면 정통이고 진리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방향이 다르면 이단과 거짓이 되고 맙니다. 또한 어떤 성도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느냐 못하느냐를 측정하려면 성경이 말씀한 방향대로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가 못하고 있는가를 체크해보면 압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해석해주고 바르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 교회의 목사님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목사님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부모의 말도 잘 안 듣는데 목사의 말을 안 듣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는지 모릅니다. 특히 교회 좀 오래 다니면 머리가 좀 컸다고 더욱 이런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한참동안 엉뚱한 방향으로 가다가 나중에 인생길이 좀 이상해지고 쓸데없이 고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들까지 모두 고생을 시키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방향을 잘못 잡고도 계속 자기 고집을 부리고 나아가는 강퍅한 자에게는 행복을 약속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고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신속히 그 방향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래에 희망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는 아주 귀한 도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나침반입니다. 나침반은 항상 북극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아시는가 모르겠어요. 북극에도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북(True North)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북(Magnetic North)입니다.
진북은 북극성이 있는 방향이고, 자북은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입니다. 진북과 자북의 거리 차이가 자그마치 1000km나 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큰 선박이나 비행기의 경우 보다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자석 나침반이 아닌 회전 나침반(gyrocompass)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인공위성을 통한 GPS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보다 정확한 방향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동차나 선박이나 비행기의 방향을 잡는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입니다. 특히 군사용 크루즈 미사일의 경우는 가다가 스스로 방향을 조정하면서 목표물을 타격합니다. 인생의 경우도 사람들이 태어나자마자 처음부터 자기의 인생길의 방향을 정확히 잡고 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는 “너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누가 물으면 “대통령이요. 장군이요. 의사요. 선생님이요. 변호사요.” 뭐 이렇게 대답들을 합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자기의 적성과 실력과 환경에 따라서 계속 그 방향이 수정되곤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이 먹어서도 제대로 인생의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방황하면 나중에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내비게이션의 경우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이를 즉시 수정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 때도 우리가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방향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잘못된 방향을 바르게 수정해 주는 분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같이 인생을 살면서 “애야, 지금 그 방향은 잘못됐다. 방향을 좀 수정해라.” 하고 방향을 수정해주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즉 아브라함이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갈 때 하나님이 중요한 순간에 친히 아브라함의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를 믿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보면 어느 낮선 지방으로 여행을 하더라도 일단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그 가는 방향을 처음부터 다 몰라도 내비게이션을 믿고 스타팅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스타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사도 바울은 주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즉 방향을 바르게 하고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갈 수도 있습니다. 좀 쉬다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틀리면 안 됩니다. 방향이 틀리게 가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타락이라고 하고,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오래 가는 것을 가리켜 한참 타락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방향이 틀려서 한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몇 번을 하다 보면 그만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고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주님의 인도를 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서 주님의 말씀으로 항해하는 선박들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는 등대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고로 주님의 몸인 교회로 마음과 몸이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국 땅에 포로로 잡혀가 힘이 들 때 늘 성소를 향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주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성소를 향하여 드리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생의 방향을 늘 인도해주셨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의 방향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바르게 잡아주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천국에 도달해 더 큰 행복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