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모든 생물체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능(Instinct)’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학습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생물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 충동 혹은 생각” 그런데 이러한 본능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만들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타락을 하자 그 모든 좋은 것이 다 나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능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좋았지만, 타락 후에는 나쁘게 변질에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유전 법칙으로 인해 안 좋은 본능이 생물계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타락 전에는 맹자의 성선설이 맞습니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순자의 성악설이 맞습니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본능은 타락한 본능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타락한 성품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타락한 본능대로 행하고 살면 결국은 멸망입니다.
고로 우리는 타락한 본능을 다스리고 관리해야합니다. 어떻게 타락한 본능을 다스리고 관리할까요? 세상적으로 보면 학교에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본능을 통제하고 관리하라고 지도합니다. 그리고 학자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타락한 본능을 다스리는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요즘 새로 나온 책 중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이란 통계학자이며 의사가 지은 ‘팩트 풀리스(Fact Fullness)’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잘못된 편견 10가지를 본능이란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편견을 갖게 하는 본능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간극 본능 :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분법을 좋아한다. 흑백논리, 선과 악, 부자와 가난한 자, 야당과 여당,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등등. 이로 인해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적인 간극본능은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빛의 세계에 들어옴으로 더욱 심화된다.
2. 부정 본능 :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을 한다. 뉴스를 보더라도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가 더 많이 나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쁜 뉴스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 본능으로 인해 세상은 자꾸 암울해져간다.
3. 직선 본능 :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예측을 본능적으로 한다. 즉 직선을 보면 계속 직선을 상상하는 본능이 있다. 이로 인해 과거라는 감옥에 머무르며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지 못한다.
4. 공포 본능 : 두려운 마음이 본능적으로 작동하여 스스로 평안을 잃고 불안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딤후1:7)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서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신다.
5. 크기 본능 : 실제보다 사실을 부풀려 왜곡하려는 본능이 있다. 특히 자기의 유익이나 영향력을 크게 하기 위해 과장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 고로 그러한 과장과 거짓말을 통한 사실의 왜곡을 주의해야 한다.
6. 일반화 본능 : 예를 들면 혈액형을 나누면서 A형 여자는 이렇고, B형 남자는 저렇고, O형 남자는 이렇고, AB형 여자는 이렇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일반화 시키려고 한다. 일종의 고정관념을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7. 운명 본능 : 타고난 특성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는 본능이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흑인을 보면 “저 사람은 가난하게 살 것이다.”라는 편견이다. 그러나 사람은 각종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
8. 단일 관점 본능 :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생각에 쉽게 이끌린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관점이 아닌 오직 한 가지 관점만 고집하게 되고, 결국 고집이 세고 강퍅한 사람이 된다.
9. 비난 본능 :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일단 이에 대해 남을 비난하는 말과 행동이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갈등과 미움과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10. 다급함 본능 : 뭔가를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충동구매와 사재기가 일어난다. 그러나 속도 보다 방향이 중요할 때가 많다.
이상 10가지 본능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타락한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출시될 때부터 시스템이 잘못돼 계속해서 오류가 발생하는 겁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출고 때부터 중대 결함이 있는 겁니다. 이럴 경우 모든 차량을 리콜해서 무상으로 수리해줘야 합니다.
인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본능이 크게 망가졌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totally corrupted 되었습니다. 즉 전적으로 타락되었습니다. 고로 모두가 절망입니다. 가능성 제로입니다. 어느 하나 일부 부속을 갈아서 고쳐질 정도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예 통째로 갈아엎어야 됩니다. 이를 성경적인 용어로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born again)’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즉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인간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이 좀 어려운 말 같은데... 예를 들면 꿈틀꿈틀 땅에 기어가는 애벌레가 전혀 다른 형태의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애벌레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하늘을 날지 못합니다. 그러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에서 나비로 다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봅시다. 10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1:10)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이 사람들’은 앞 문장에서 언급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첫째, 출애급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둘째,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이성 없는 짐승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본능으로 아는 것으로 행하므로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겁니다. 그 옛날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툭- 하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불신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능입니다.
결국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빼고 출애급한 모든 성인 남성들이 다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타락한 천사들도 본능으로 행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각자에게 아름다운 지위를 주고 업무를 맡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더 높은 지위를 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위까지 넘보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키다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나서 주동자 천사장은 사단이 되었고, 그를 따르는 천사들은 귀신들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6절의 말씀입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여러분, 타락한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자꾸 높아지려고 합니다. 이렇게 실력도 되지 않은 사람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자꾸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입니다. 이런 교만의 본능대로 행하면 결국 쫓김을 당하고 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도 본능으로 행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본능이 작동했나요? 이에 대해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7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인간의 3대 본능이 있습니다. 식욕, 수면욕, 성욕입니다. 먹을 때 절제하지 못하고 식욕의 본능대로 마구마구 먹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비만이 되고 건강을 잃기 쉽습니다. 그리고 잠도 적당히 자야지 본능대로 너무 많이 자면 게으름뱅이가 되고, 반면 불면증이 와서 너무 적게 자면 이 또한 건강을 해치기 쉽습니다.
그리고 성욕의 본능은 진짜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앞서 말한 식욕이나 수면욕은 그 영향이 자기에게만 국한됩니다. 그러나 성욕은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고로 성욕이 생긴다고 아무나 붙잡고 그 성욕을 풀다간 음행의 큰 죄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심판을 당하고 맙니다.
더구나 그 성욕의 본성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반대로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즉 남성이 남성을 상대로 성욕이 일어나고, 여성이 여성을 상대로 성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절제하고 다스려야지, 동성애 본능이 일어난다고 그 본능대로 행하면 안 됩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동성애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게 큰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동성애를 합리화하기 위해 “동성애는 선천적인 본능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비정상적인 유전적 결함이 태어날 때부터 생길 수 있습니다. 즉 비정상적인 동성애 성욕이 본능적으로 작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동성애는 유전적인 본능이기 때문에 동성애를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은 심히 곤란합니다.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게 이르기까지 동성애가 만연했습니다. 그들 중에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인 본능으로 생겨났던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생겨났든지 간에 그 본능과 욕구를 절제하고 다스려야지, 그 성욕을 함부로 사용하면 그건 큰 죄가 됩니다.
결국 그들은 잘못된 동성애 성욕의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여 하나님께 큰 죄를 짓고 화산폭발로 인해 순식간에 도시가 완전히 화산재에 뭍이고,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절대 잊지 마십시오.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면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큰 수치요, 심판이요, 멸망입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같이 목사 안수를 받은 동기들이 다함께 조용기 목사님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그때 조용기 목사님이 저희들에게 이런 권면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회하면서 3가지를 항상 조심해라. 첫째, 돈 조심해라. 둘째, 명예 조심해라. 셋째, 여자(이성) 조심해라.” 즉 본능을 다스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돈 싫어하는 사람 있습니까? 가끔 보면 성도님들 중에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도 돈을 좋아하세요?” 그때 제가 어떻게 대답할까요? “예- 저 엄청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면 그 성도님이 무안하고 혹시 시험에 들까봐 “알아맞혀보세요.” 하고 그냥 웃고 맙니다.
아- 제발 저에게 그런 요상한 질문 하지 마십시오. 돈 좋아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 명예를 좋아하는 것도 본능이고요. 성적 욕구를 푸는 것도 본능입니다. 그러나 그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파멸입니다. 심판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여러분, 가인은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만 사랑하고 자기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동생보다 형인 내가 더 잘돼야 하는데... 도리어 동생이 나보다 더 잘되었습니다. 아- 그것은 내 속에 있는 타락한 본능과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 질투는 타락한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그 질투하는 마음이 많이 있든지 적게 있든지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하자 결국 형이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남이 나보다 잘될 때, 특히 내 옆에 사람이 나보다 잘될 때, 타락한 본능을 따라서 내 안에 질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다스려야 합니다. 질투가 변해서 미움이 생기고, 미움이 쌓여서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 본능을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발람이란 사람도 보십시오. 갑자기 떼돈을 벌 일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모압 왕이 떼돈을 준다고 합니다. 아- 드디어 부자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지 말라고 해서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아- 아깝습니다. 떼돈이 눈앞에서 날아갔습니다.
결국 그는 돈이 탐이 나서 나중에 모압 왕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에 빠지는 방법을 슬며시 알려주었습니다. 다름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을 꾀어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에 빠트리게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하고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결국 모압 왕은 발람의 꾀대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발람은 모압 왕으로부터 큰돈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중에 발람을 칼에 죽게 만드셨습니다. 그 많은 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 역시 돈의 욕구, 돈을 탐하고자 하는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므로 결국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돈에 대한 욕구는 너무나도 강력한 본능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잘 지켰던 사람들도 나중에 돈의 본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큰 죄를 짓고 패가망신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남성들은 성욕의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여 섹시한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저지르다가 하루에 2만 4천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고라라는 사람도 자기도 모세와 아론처럼 높아지려고 본능적으로 행하다보니 결국 반역을 저지르게 되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높여주지 않는데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앞에 높은 자리, 낮은 자리가 있거든 일단 낮은 자리에 앉으라. 그리고 실력을 갖추고 때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들이 너를 인정하여 올라와 앉으라고 하면 그대에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좋다.”(눅14:7-10) 아멘!
결론입니다. 짐승은 본능으로 행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그래도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그 차이입니다. 본능을 다스리면 인간이고, 본능을 따라가면 짐승입니다. 그러나 본능을 다스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죽을 때까지 본능이 나를 충동하고, 나를 죄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이때 그 본능의 죄악을 이기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맨 마지막에 ‘절제(self-control)‘가 있습니다. 무엇을 절제합니까? 예- 본능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성령 충만하여 말씀과 기도로 본능을 잘 다스리므로 끝이 더욱 아름다워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말세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을 따라 살다가 크게 죄를 짓고 멸망 길로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한 본능대로 살지 않게 하시옵소서. 끝까지 저희들에게 본능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므로 육체의 욕심, 육체의 본능을 이기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