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9:20-27 부모를 공경하라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홍수 뒤에 노아가 세 아들과 함께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 농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노아에게 무슨 세상 친구가 있겠습니까? 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먹는 것, 마시는 것 이외에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포도주를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너무 많이 마셔버렸습니다. 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하체를 부끄럽게 내놓고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작은 아들인 함이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얼른 이불로 아버지의 하체를 가려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흔들어 깨워서라도 아버지를 도와서 옷을 입혀 드렸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서 쫓아 나와 자기 형제들에게 그 허물을 들쳐 내며 흉을 보았습니다. 소문을 내었습니다. 우리가 그 내용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아버지가 노망하신 것 같아. 아버지가 요즘에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어. 정말 주책이셔. 지금 술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부끄럽게 그 모습을 다 드러내고서 주무시고 계셔!"
아마도 함은 다른 두 형제가 자기의 생각에 동조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얼른 옷을 준비했습니다. 누가 볼세라 빨리 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갈 때에 바르게 가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아니하려고 눈을 가리고 뒷걸음질쳐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서 자기의 세 아들이 자기에게 한 행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들들이 보여준 효성에 따라서 그들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킨 함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중요한 원리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부모님도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신이 아닌 인간입니다. 약한 존재입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홍수로 심판 받았을 때,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6:9의 말씀을 보십시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여러분,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에게도 실수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토록 훌륭한 노아였지만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부모님에겐들 실수가 없겠습니까? 이 세상에 자녀 앞에서 완벽할 수 있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얼마든지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 눈앞에서 무엇인가 잘못을 범할 때라도 "아니, 그럴 수가?"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앞서서, "그래,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해하도록 애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부모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으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인 권사님이 연세가 많이 드셔서 치매증세가 있으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그 여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권사님, 근황이 좀 어떠세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저희 어머님 치매가 너무 심하세요. 평소에 그렇게나 얌전하셨던 분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시는지, 문을 걸어놓아도 부수고서라도 뛰쳐나가려고 하세요. 대소변을 못 가리시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몰라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머니가 가지셨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었을까?'라는 회의가 들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 여집사님은 솔직한 심정을 목사님에게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집사님, 한경직 목사님 잘 아시지요? 그 분도 90세가 넘으셔서 치매증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정신이 아니시니까 잘 아시는 분이 찾아오셔도 몰라본 대요. 심지어는 쌍소리를 하면서 욕을 하실 때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점점 기억이 사라져 어릴 때 기억만 남고, 그 이후에 있었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 누가 어릴 때 친구들과 싸우면서 욕하지 않고, 쌍소리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경직 목사님도 그러셨다는데, 어머님도 으레 그러려니 하시면서 이해하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잘 보살펴 드리세요. 그러면 집사님에게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보상해 드리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여집사님은 힘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성자이신 한경직 목사님도 치매에 걸리니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시는데 우리 어머니 권사님인들 왜 이런 행동을 못하실까?" 그리고 그렇게 어머니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과실을 이해하니까 어머니 돌보기가 한층 수월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와 같이 의로웠던 사람, 하나님 앞에서 완전했던 사람,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했던 사람도 얼마든지 허물이 있었지 않습니까? 하물며 왜 우리의 부모님에겐들 허물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님에게 허물이 있다고 부모님을 탓하면서 원망하는 것은 자녀로서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혹 부모님의 큰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자녀로서 마땅히 용서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원망 속에 사는 것이 사실은 용서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듭니다. 즉 용서하는 것이 원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서 속에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 속에는 참된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도 신이 아닙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고로 우리가 자녀로서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부모님을 이해해 드리고, 비록 부모님이 내게 큰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자녀로서 마땅히 부모님의 허물을 용서해 드리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부모님에게 어떠한 허물이 보일 때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그것을 적극적으로 덮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흉을 보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여러분, 모든 인류가 홍수로 다 심판 당할 때 함이 누구 때문에 살았습니까? 아버지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일백 이십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이 다 살아남았습니다.
훌륭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가 살아남았다면, 비록 아버지에게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덮어주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어내어서야 되겠습니까? 함은 그런 면에서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친구도 없이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혼자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내가 이제부터라도 내 아버지의 말상대가 되어 드려야지." 이런 마음을 가졌어야 자식 된 도리일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자신을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셈과 야벳의 모습으로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함처럼 살았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더 이상 함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고 셈과 야벳처럼 부모님을 이해해 드리고,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릴 수 있는 참된 자녀의 도리를 다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릴 때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르셨습니까? 부모님은 우리를 덮어주시면서 길러 주셨습니다. 옷으로 우리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잠을 잘 때 이불을 발로 차고 잠을 자기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사랑으로 이불을 덮어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부모님의 속을 얼마나 많이 썩여드렸습니까?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장성했으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덮어드릴 차례입니다.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을 덮어드리면서 삽시다. 실수도 덮어드리고, 잘못도 덮어드리고, 허물도 덮어드리면서 삽시다. 그것이 자식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3. 내가 내 부모님께 효도한 그대로 내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가 술에서 깨어났습니다. 세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행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자기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함에게는 화를 내렸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가나안은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함은 자기의 잘못 때문에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잘 덮어드렸던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즉 셈에게는 영적인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야벳에게는 창대하게 되는 번영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러분, 우리 모두도 함과 같이 되지 말고, 셈과 야벳처럼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해서 부모님에게 어떤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감싸주며 덮어줄 줄 아는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서 셈과 야벳에게 주신 그 놀라운
축복을 다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옛날 이조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습니다. 임금님이 개성에 온다니까 곳곳마다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듣고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아들아, 내가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도 임금님의 얼굴을 뵙지를 못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얼굴을 멀리서라도 좀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그러자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십리 먼 길을 어머니를 업고 임금님이 행차하시는 길가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어머니에게 자리를 마련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그때에 그 어머니를 업고 있던 그 효자에게 금 백 냥과 쌀 한가마니를 상으로 주어라.“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다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또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습니다. 왕은 역시 그 사람을 불러들여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이 사람에게 금 백 냥과 쌀 한가마니를 상으로 주어라."
그러자 신하들이 대답합니다. "임금님, 그놈을 불효자랍니다. 진짜 효도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임금님에게 큰 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이런 명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그에게 상을 주어라." 결국 그 사람은 그 뒤에 자기의 불효를 뉘우치고 진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괜찮은 겁니다. 우리 중에 태어날 때부터
효도를 마스터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효도는 배워야 합니다. 흉내 내야 합니다. 트라이(try)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행함 있는 효도로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이 이 외국 땅에서도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날짜:
200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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