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공경과 노인 공경

날짜: 
2007/05/07
설교: 

엡6:1-3 부모 공경과 노인 공경
어제 토요일에는 우리 교회에서 캘거리 노인 분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잔치에서 우리 교회에서 준비한 선물과 함께 여선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통하여 노인 분들을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매년 노인잔치를 해드리는 것은 노인 분들을 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경로사상을 갖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시대는 부모님과 노인 분들을 공경하고 정성껏 모시기보다는 하나의 귀찮은 사람들이나 쓸모없는 사람들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나 노인 분들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모님과 노인 분들은 성격이 매우 까다로운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는 부모님과 노인 분들을 공경해야 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이 나를 기르면서 냄새나는 똥 기저귀 갈아준 적이 몇 번이며, 내가 아플 적에 잠 못 이루며 간호해 주며, 자식 잘되도록 쏟아 부은 부모님의 정성이 어떠합니까? 그런데 이러한 부모님을 귀찮게 여긴다면 그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배신행위요, 자기의 양심을 팔아먹는 몰염치한 행위가 아닙니까?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부모님을 멸시한다면 그것은 바른 신앙의 소유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를 낳아주고, 자기를 위해 그토록 수고한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모님인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신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땅에 계신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효도해야 되는 것이 성경의 철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에 세찬 반대에 부딪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서 만 명이나 순교를 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기독교는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으므로 불효를 조장하고 노인공경을 파괴하는 상놈의 종교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기독교를 살펴보면 이와는 전혀 반대로 노인 공경과 부모 공경을 하나님 공경으로 동일시 할 정도로 부모와 노인 공경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신27:16) ”아비를 조롱하고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그 눈을 까마귀와 독수리에게 쪼이리라.”(잠30:17) “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마15:4) 즉 부모나 노인 공경을 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저주를 받고 죽음에 처해진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의 본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잘되고 장수하리라”(엡6:2-3) “머리가 흰 노인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레19:32) 즉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잠23:22)에는 “너 낳은 아비를 청종하고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고, (딤전5:1-2)에도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비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성경에 보면 부모님과 노인 분들을 공경하므로 하나님께 크게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부모와 노인 분들을 공경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먼저 요셉을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게 되자 요셉은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애급으로 이민시키고 아버지와 가족들을 잘 모시고 공궤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요셉이 열한 번째 아들이지만 장자의 축복을 받아 가나안 땅 분배 시에 요셉 지파는 두
몫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너무나도 다급한 도망자의 신세가 됐는데도 그 와중에 부모님이 자기 때문에 혹시곤란을 당할까봐 부모님을 모압으로 피신시키며 부모님을 돌보는 효자였습니다.
그리고 룻이라는 여인을 보십시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천대 받는 이방 사람인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병들어 죽고, 자식도 없는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주어가며 가난한 시어머니를 공경한 효심이 깊은 며느리였습니다. 결국 이 룻이라는 여인의 효심이 베들레헴 마을에 소문이 나게 되고, 그녀는 보아스와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태어난 자녀가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인 오벳이요,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즉 룻이라는 여인은 효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눅2:51)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잘 받드셨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도 요한이라는 제자에게 홀로된 자신의 어머니를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요19:26)
반면 성경에서는 부모나 노인을 공경하지 않아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르우벤입니다. 그는 야곱의 장자였지만 아버지의 첩과 간음을 저지르므로 아버지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한 불효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장자의 몫인 두 몫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왕하2:23-24)에 보면 젊은애들이 나이 먹은 엘리사에게 ‘ 대머리야! 너도 올라가라’ 하면서 놀려대니까 수풀에서 곰 두 마리가 나와 어린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또한 노아가 술을 먹고 취하여 벌거벗고 자는 것을 보고 ‘함’이라는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주책이네. 망령이 났나봐!”하고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말하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저주를 받아 다른 형제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창9장)
여러분, 한국에 가면 효자동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이 효자동의 유래를 혹시 아십니까? 어느 마을에 시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다가 그만 잘못해서 옆에 누운 어린 손자를 깔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때 며느리는 이 사실을 시아버지가 아시면 마음이 심히 상하실 까봐 그 죽은 아이를 시아버지 모르게 들쳐 업고 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그 남편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의 죽은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불효자식이라고 그 죽은 아이의 뼘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만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은 그 동네를 일컬어 효자동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많은 효자, 효녀가 나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도 참으로 효도하는 성도님들이 많아져서 우리 교회가 효자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부모와 노인 분들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저주요, 이를 잘 지키면 큰 축복을 받아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곳 캐나다에 이민을 오면서 한국에서 보다 더욱 축복을 받고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팽개치고 이곳에 왔다면 자신의 축복과 행복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님을 버리고 나서 축복을 받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면 노인과 부모님들은 젊은이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까요? 먼저 모범된 생활을 보여야 됩니다. 부모님이나 노인 분들이 술과 담배를 하고, 노름에 빠지고, 욕을 해대고, 세상 열락에 빠져 살면 안됩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근면하며, 좋은 말과 행동, 그리고 착한 일을 하므로 젊은이에게 존경을 받아야 됩니다.
또한 나이가 먹을수록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인생은 순식간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요, 그림자요, 그 넓이는 손바닥 넓이요, 그 아름다움은 꽃이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지고, 풀이 마르는 것처럼 마른다고 합니다.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썩어질 육신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추구하다가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래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이 땅에서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예수님의 일을 하다가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천국에 가는 것이요, 내 자손들이 예수님 잘 믿다가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삶이 나이 먹은 사람들의 모범적인 삶이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본받아야 할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도 중요하고, 자녀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노인 분들이 없었다면 남편과 아내의 존재도 없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역시 조금 있으면 또 다시 나이가 먹어 노인이 됩니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도 결국 노인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가정의 달에 먼저 연로하신 우리의 부모님들과 노인 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므로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고 행복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