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신비

날짜: 
2006/04/16
설교: 

고전15:35-49 부활의 신비
메뚜기와 하루살이가 하루 종일 논에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날이 저물자 메뚜기는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이젠 저녁이 다 되었어.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또 놀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습니다. "메뚜기야, 내일이 뭐니? 어떻게 내일 또 놀자고 하니?.” 메뚜기는 잠시 후면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모든 동물이 다 잠을 자게 되는데 잠자는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메뚜기는 개구리와 온 여름을 함께 놀았습니다. 가을이 오고 날씨가 차가워지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메뚜기야, 내년에 만나 다시 놀자". 메뚜기는 내년이 뭐냐고 개구리에게 물었습니다. 개구리는 흰눈이 천지를 뒤덮고 얼음이 얼고 몹시 추워서 모든 개구리가 땅 속에 들어가서 오래 오래 겨울잠을 자고 나면 다시 따뜻한 봄이 오는데 그 때가 내년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시즌 밖에 살지 못하는 메뚜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내일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세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세가 없는 것이 아니요.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천국이 없는 것이 아니요. 지옥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지옥이 없는 것이 아니요.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부활에 대하여 아주 자주 이야기 하고 있으나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들은 부활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부활의 신비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 목사님,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시체들을 물고기가 뜯어먹었어요. 그리고 그 물고기를 어부가 잡아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배설물이 되어서 비료로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죽은 사람이 부활을 합니까?”
“목사님, 또 생각해 보세요? 어떤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첫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재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또 재혼하였는데 세 번째 남편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활 때에는 도대체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서로가 내 아내라고 하면 하나님도 골치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목사님, 그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면 도대체 그 사람들이 모두 어디서 살고 뭘 먹고삽니까? 그리고 주택난, 식량난, 교통난, 쓰레기 문제는 어떻게 하구요? 그리고 옛날 사람과 현재 사람과의 문화적 사상적 차이는 어떻게 극복합니까? 그리고 지지리 속 썩였던 그 원수 같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어디 인생 살맛이 나겠습니까? 목사님, 부활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부활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좀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렵고 신비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이 부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부활을 단지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활은 별로 신비한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통해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과학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죽은 사람의 세포만 가지고도 그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장면을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의 시체 앞에서 “하나님이여 이 아이의 혼을 돌아오게 하소서!”(왕상17:21) 하고 기도하니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의 제자인 엘리사 선지자도 수넴 여인의 아들의 시체 위에 올라타고 그 위에 엎드리니 아이가 살아서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났습니다.(왕하4:35) 그리고 죽은 자들의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그들도 살아났습니다.(왕하13:21)
그리고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요11:43)고 말씀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의 관을 붙잡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4)고 하자 죽은 청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야이로의 죽은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막5:41)고 하니 죽은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도 욥바에 다비다라고 하는 과부의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행9:40)고 하자 죽은 시체가 살아나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부활과 또한 성경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이들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활의 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주 신비한 몸이요, 그 어떤 공상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모습을 살펴봄으로 부활의 신비를 좀더 자세히 관찰하기 원합니다.
1. 현재 우리의 몸과 같은 몸으로 부활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7-3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니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느니라.”
즉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우리가 죽을 때 장사된 그 몸대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51절에 보면
“형제들아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이나 장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우리가 변화될 부활의 몸은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의 형체, 하늘의 몸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몸은 단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어준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하늘의 형체를 의미합니다.
2. 영만이 아니라 살과 뼈가 있는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고 했습니다. 즉 부활의 몸은 유령과 같이 실체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러나 그 살과 뼈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얼마 지나면 썩게 되는 그런 살과 뼈가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형상을 지닌 살과 뼈입니다. 특히 여성들 중에는 피부미용을 굉장히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부활의 날에는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운 피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3. 썩지 않는 불멸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름다울지라도 결국 노쇠하고, 병들고, 죽고, 썩게 되고 맙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여 영원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도 늙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병들거나 노쇠하지 않고, 죽거나 썩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영원한 몸이요, 완벽한 몸입니다.
4. 하늘에 속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은 흙으로 만들어져서, 흙에서 나는 것을 먹다가, 흙으로 돌아갈 땅에 속한 몸이지만, 부활의 몸은 전혀 하늘에 속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땅에 속한 인간의 몸은 땅을 벗어나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땅에 속한 인간의 몸은 영하 100도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영상 100도의 뜨거움도 견디지 못합니다. 또한 땅에 속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즉 하늘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는 왕래할 수가 있습니다.
5. 천사들과 같이 결혼하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0절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목사님, 저는 부활의 몸을 입기 싫습니다. 저는 정말로 장가가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아들 딸 많이 낳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은 분을 부활의 몸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하, 부활의 몸은 별로 재미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결혼하지 않는 부활의 몸은 결혼하는 부활의 몸보다 더욱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남녀가 결합하는 얻는 몸은 부활의 몸에 비하면 원시인과 같이 덜 발달된 몸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의 286, 386컴퓨터가 결혼하는 몸이라면, 부활의 몸은 장차 개발되는 꿈의 컴퓨터라고 생각하면 상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태양과 같이 빛을 발하는 눈부신 몸을 갖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43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그리고 다니엘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단12:3)
하루는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변화가 되셨는데 마치 얼굴이 해처럼 빛을 발하였습니다. 장차 우리의 부활의 몸도 바로 예수님처럼 해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7. 서로 알아 볼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너무 좋게 변화된다고 하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니, 그렇게 변화가 되면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이산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걱정하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염려는 안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변해도 인격적인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또 그때는 지금보다 아이큐가 훨씬 더 좋아지기 때문에 거뜬히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체도 맨 처음에 제자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잘 알아보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변화산 위에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만난 적도 없는 모세나 엘리야까지 알아보기도 했지 않았습니까?
8.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우리가 한 평생 살다 보면 우리의 몸은 상처도 입고, 일그러지고 맙니다. 수술 자국도 생기고... 그래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처난 몸이 부끄러워 대중목욕탕에도 수영장에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활의 몸은 장차 누구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는 ‘몸짱’ ‘얼짱’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몸매가 아주 좋고, 얼굴이 아주 잘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최고의 몸짱 얼짱이라도 장차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에 비하면 세발의 피입니다.
9. 부활의 몸은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41-42절에 보면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다같이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은 받지마는 하늘에서 누리는 영광은 세상에서 행한 일과 공적에 따라 부활한 몸의 영광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구의 촉수가 30촉, 60촉, 100촉, 1000촉 각각 다르게 빛을 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 땅에 있는 동안 주를 위하여 착하게 겸손히 성실히 헌신하므로 부활의 날에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영광의 몸을 입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저는 이 정도로 부활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하지만 실지 부활의 신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땅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여 그 부활의 신비를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예수님은 첫 번째 부활하셨고, 예수님이 오실 때에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그 날은 우리 일생일대의 가장 큰 영광의 날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희망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