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아야 한다.

날짜: 
2023/01/28
말씀: 
롬13:8
말씀구절: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설교: 

경제 용어 중에 “자본주의는 빚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돈을 꾸어주고, 시중은행은 개인이나 기업에 돈을 꾸어줍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은행으로부터 자기 집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꾸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매월 돈을 갚아 나가겠지요.

어때요? 요즘도 은행 빚 잘 갚고 있습니까?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 ‘영끌족’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한때 아파트 값이 너무나 오르니까 집이 없는 분들이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은행 빚을 포함해 영혼까지 돈을 끌어 모아 아파트를 한 채 샀습니다. 이름하여 ‘영끌족’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파트 값이 폭락을 하고 있습니다. 은행 금리도 가파르게 올라서 이제는 이자만 갚는데도 자기 월급이 거의 다 나갈 지경입니다. 무리하게 빚을 내고 그것을 갚지 못하니까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이런 가계 빛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깨지고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한민국 가계부채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2022년 1/4분기 가계 빚은 1,859조입니다. 국민 일인당 3,600만원씩 빚을 진겁니다. 세계의 주요 40개국 중에서 한국이 가계 부채 단연 1위입니다. 2위인 홍콩과, 3위인 영국과, 4위인 미국하고 비교해도 매우 높은 비율로 한국이 1등입니다.

여러분, 남의 돈을 꾸면 갚아야 합니다. 맞지요? “에이, 목사님! 그거 돈 없으면 안 갚아도 되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으면 뭔가 한참 잘못된 겁니다. 양심불량입니다. 혹 어떤 분은 더 나아가 “아- 돈 없는 걸 어떡합니까? 배 째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 상대방 잘못 걸리면 진짜 배가 갈라지고, 자기 간이나 콩팥이나 장기들이 적출당할 수 있습니다. 빚은 갚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마인드입니다. 성경도 빚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37:21)

보십시오. 빚을 지고도 갚지 않는 사람에 대해 성경은 그를 악인이라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을 믿기 전에 남에게 빚을 지고, 그 돈을 띠어먹고 여기 캐나다로 피신해 오신 분은 없겠지요? 뭐- 일부러 빚을 갚지 않으려고 하겠어요? 어쩌다 보니 사업도 망하고, 일이 꼬이다보니 그런 경우가 되었겠지요.

하여간 지금은 돈이 없어서 빚을 못 갚아도 나중에 돈이 생기면 반드시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믿는 사람으로 양심에 거리끼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로마의 권력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동죄가 적용이 되고, 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성 모독죄도 적용이 되어 사약을 받고 죽음에 처해졌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자기 제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아스클리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꼭 그 빚을 갚아주게.” 즉 빚을 갚아야만 양심에 거리낌 없이 편안히 죽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빚은 갚아야 합니다. 빚은 갚아도 좋고 갚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의무사항입니다.

더구나 믿는 사람이 돈을 띠어 먹어서 예수님을 욕 먹이고, 교회를 욕 먹이면 안 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시다가 ‘삭개오’라 이름하는 세리장이를 만나서 그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눅19:8)

그러자 예수님이 그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보십시오. 내가 남의 것 손해 입혔거나, 빚 진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갚겠다고 하니까 주님이 이 사람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남의 것 속여서 빼앗고, 빚 진 것을 갚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그 동안 돈을 벌어서 옛날에 빚진 것을 갚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혹은 어디에 사는지 잘 모릅니다. 그 자녀들이나 가족들에게 대신 빚을 갚아주려고 해도 도저히 연락이 안 됩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아- 그거 잘됐다. 할렐루야!” 하고 그냥 슬쩍 넘어가는 겁니까?

제가 이것에 대해 어떤 목사님에게 물어보니 이때는 하나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나님께 그 돈을 갚으면 된다고 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금과 은은 다 하나님 것이니 하나님께 그 물질을 헌금으로 드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양심의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게 좋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늘 찝찝한 것보다 낫잖아요?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13:8) 아- 물론 이 말씀대로 빚을 안지고 살면 참 좋습니다. 자칫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채권자에게 빚 독촉을 당하게 되고 진짜 죽을 맛입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너는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까지 빼앗기리라.”(잠22:26)

특히 각자가 죽을 때가 되어서는 반드시 빚을 청산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남겨진 식구들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일이 복잡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꼭 돈만 빚이 아니고 남에게 받는 친절과 사랑과 은혜도 빚입니다. 물론 그 빚을 안 갚는다고 감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빚도 갚아야 보다 성숙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자기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라고 합니다. 왜 그럽니까?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많이 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 어떤 자녀는 “아- 누가 나를 낳으라고 했나? 괜히 나를 낳아가지고 효도를 받으려고 하네.“ 하고 못마땅해 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거 누가 돌봐야 삽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죽고 맙니다. 부모님은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 자녀만큼은 잘되라고 사랑을 쏟고 희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에게 사랑의 빚을 갚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부모님을 욕하고 때리면 하나님이 “이 놈-!”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예수님께 진 큰 빚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죄로 말미암아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하고, 내가 심판을 당하여 지옥에 가야 하는데, 주님이 내 대신 죽음으로서 그 빚을 갚아주셨습니다. 고로 나는 살았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 이 큰 은혜! 이 큰 사랑! 어떻게 갚아야만 할까요?

“주여-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드립니다. 이 작은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다해 주님만을 위하여서 살기 원하오니 주여 잡아주소서. 주여 나를 잡으소서. 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아-아- 불같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주님만 위해 살게 하소서.”(찬송가 316장)

그렇습니다. 이제는 사랑의 빚진 자로서 그 분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왜 전도를 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왜 봉사를 합니까? 다름 아닌 사랑의 빚을 많이 졌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를 많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로 나도 그 사랑을 나누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뵐 면목도 서고, 크리스천으로서 마음이 편해집니다.

혹 어떤 분이 내가 이 외국 땅에서도 열심히 전도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충성하는 것을 보고 이런 인사를 합니다. “아- 참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이렇게 겸손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그저 빚을 조금 갚았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의 빚을 갚아야지요.”

하루는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릴 털로 씻고, 그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과연 선지자라면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저 여자가 얼마나 행실이 나쁘고 부정한 여인인지 알았을 텐데...” 수군수군...

그러자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넌지시 묻습니다. “시몬아, 내가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예- 선생님, 말씀하세요.”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눅7:41-42)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예-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을 받은 자니이다.” “네 판단이 옳도다.” 여러분, 보십시오. 빚을 많이 졌지만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주님을 많이 사랑합니까? 주님으로부터 빚을 많이 지고 많이 탕감 받은 사람입니다.

즉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주님을 많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많이 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교회 한번 오는 것도 힘들고 어렵겠지요?

결론입니다. 세상 빚도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받는 은혜가 있다면 그것도 갚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도 갚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가장 큰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도 기꺼이 자원함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신자입니다. 그래야 인격자입니다. 아무쪼록 사랑의 빚을 잘 갚는 중에 좋은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