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열심, 하나님의 열심, 마귀의 열심

날짜: 
2022/04/10
말씀: 
고후11:2-3
말씀구절: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설교: 

한국의 코미디언 이경규 씨가 2006년에 말한 너무나도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이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즉 미치도록 열심을 내긴 내는데 그 열심이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어떻든가요? 좀 무섭습니까? 아니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옵니까? 어느 목사님이 이웃 교회의 제직 임명식에 가서 ‘권면의 말씀’ 순서를 맡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이런 권면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집사 됐다고, 권사 됐다고, 장로 됐다고 괜히 나대지 마십시오. 갑자기 뭐를 하겠다고 열심내지 마세요. 그런 분들 보면 담임 목사님이 불안합니다.”

즉 인간적인 열심을 내다가 괜히 나중에 남들 시험 들게 하고, 자기도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조신하게, 가만히, 조용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렇게 인간적인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말합니다. “제발 가만히만 있어줘.”

성경에 보면 이런 인간적인 잘못된 열심에 대하여 나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중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였고”(빌3:6) 그는 이전에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과 교회를 아주 열심히 핍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대단히 좋은 일을 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는 데에도 앞장섰습니다. 이렇게 열심 있는 이 사람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다른 나라로 피신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얼마나 열심인지 다른 나라까지 가서도 신자들을 잡아서 끌어오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잘못된 열심에 대하여 이렇게 한탄하셨습니다. “주의 집에 대한 열심이 나를 삼켰나이다.”(요2:17)

즉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잘못된 열심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10:2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특히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이단들 중에 열심 없는 이단이 없습니다. 그들이 바로 잘못된 지식에 입각한 잘못된 열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바른 열심히 있습니다. 진리에 입각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한때 잘못된 열심으로 교회를 심히 핍박한 사도 바울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아름다운 예수님의 신부로 잘 단장하여 신랑 되신 예수님께로 데려가려고 아주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열심’에 대하여 나옵니다. 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의 군대장관 랍사게를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저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결코 화살을 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이르지도 못하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렇게 확증합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왕하19:31) 즉 하나님도 열심을 다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여인들과 행음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우상 바알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24,000명이나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이 온통 비통함에 빠졌습니다. 여기 캐나다는 COVID-19으로 지금까지 38,000명가량 죽었습니다. 캐나다 인구의 1/1000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당시 대략 250만 명의 출애급 인구로 보면 1/100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족장 한 사람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눈치도 안보고 그 여인과 텐트에서 음행을 저지릅니다. 이때 비느하스라는 사람이 그 텐트로 들어가 음행을 저지르는 두 남녀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 진영에 퍼진 전염병 재앙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요,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그들 가운데서 나를 위해 열심을 내어 내 진노를 돌이켜서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떠나게 하고 내가 그 질투 중에 그들을 소멸시키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화평의 언약을 주나니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주노라.”(민25:11)

즉 바른 열심을 낸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면 마귀의 열심히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예배에 나온다.” 여러분, 왜 마귀가 매일같이 교회에 출근하고 예배에 나올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을 쓰러트리고 교회를 파괴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님들에게 불평의 마음을 갖게 하고, 서로를 이간시켜 싸우게 하려고 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해 갈라디아서 4:17에 말씀합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이려 함이라.” 본문 3절에도 말씀합니다.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서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여러분, 마귀는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를 괴롭히는데 아주 열심입니다. 매우 끈질깁니다. 그리고 그의 졸개들인 많은 귀신들도 자기들의 대장인 마귀를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 소망, 사랑, 기쁨, 건강, 행복을 파괴하려고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열심을 냅니다. 아- 참! 지긋지긋한 녀석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히 쫒아내야 합니다.

오늘의 설교를 좀 정리해 봅시다. 첫째 인간적인 열심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열심이 있습니다. 셋째, 마귀의 열심이 있습니다. 다 같이 열심은 열심인데 전혀 다른 열심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여러분, 우리는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열심, 마귀의 열심은 안 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와 진리에 입각한 하나님의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심이 식어지면 안 됩니다. 비록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여러 모로 힘든 상황이고, 말세라는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들은 끝까지, 이 생명 다하기까지 열심을 내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열심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복된 영광의 그날을 가장 행복하게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