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평가, 하나님의 평가

날짜: 
2022/02/03
말씀: 
요7:12-13
말씀구절: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설교: 

“나중에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사람을 혹은 그 사건을 정확하고 바르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혹은 그 사건을 평가하기에는 지금 당장 살아있는 권력이 너무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 살아있는 권력자가 죽은 후에, 아무런 외부 영향력이 없어질 때 좀 더 바르게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평가는 항상 틀리고 나중의 평가만이 항상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일 경우, 즉 현재의 평가가 보다 정확하고 나중의 평가가 올바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사람 혹은 그 사건을 평가하느냐는 것입니다. 즉 타락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고로 사람의 평가는 정확하지 못합니다. 마치 장님들이 각각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진 후 그 코끼리의 모습을 평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정의롭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평가만이 절대적으로 정확합니다. 고로 우리는 사람의 평가보다는 하나님의 평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사건을 선악 간에 정확히 평가하시고 최종 판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상과 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그만 노이로제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입니다. 더구나 책임감 없고 무자비한 인터넷 악성 댓글들의 평가를 보면서 거기에 심히 낙심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 저러면 안 되는데...”라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하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라는 말이 40번이나 나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보고 평가하는 관점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을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반면 그 아들 므낫세 왕은 ”보시기에 악했더라.“고 평가했습니다.

하루는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을 새로 뽑으려고 이새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그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장남 엘리압을 보자마자 “아- 여기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있도다.” 하고 너무나 좋게 평가했습니다. 그를 즉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사무엘아,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몇몇 사람들을 평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라는 유대의 분봉왕을 ‘저 여우’(눅13:32)라고 평가했습니다. 즉 그는 간교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잘 나가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독사의 자식들’(마12:34)이라고 혹독하게 평가했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꽤 부요하고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당시 사람들의 평가와 전혀 달랐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좋게 평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12 제자 중 하나인 바돌로메(나다나엘)을 보면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하고 아주 좋게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12:44) 또한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없도다.”(마11:11) 하고 평가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을 평가하신다면 과연 뭐라고 평가하실까요? 하나님이 머리를 끄떡이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평가하실까요? 아니면 머리를 가로 저으며 ”쯧쯧쯧, 재는 아니다.“라고 평가하실까요?

물론 예수님을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을 하나님이 나쁘게 평가하시지는 않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기 자식이 아무리 나빠도 좋게 평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는 정확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은 평가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것, 정의로운 것, 진실된 것을 좋게 평가합니다. 고로 나도 정직하고 진실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날의 심판 날에 각 사람들을 정확히 평가해서 양과 염소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알곡과 쭉정이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악인과 의인을 나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가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느니라.”(고전4:5)고 했습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는 자니라.”(고후10:18)고 했습니다. 고로 괜히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좋은 평가를 얻으려고 위선을 베풀려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마6:11) 그리고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눅6:26)고 했습니다.

즉 선과 악의 싸움에서, 혹은 진실과 거짓의 싸움에서, 혹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에서 이쪽과 저쪽에도 욕을 안 얻어먹으려고 이쪽 갔다 저쪽 갔다 양다리 걸치며, 잔꾀를 굴리며 살면 끝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옳다고 평가하는 것을 끝까지 좇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부터 최종 칭찬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예수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합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No. 그는 무리를 미혹케 하는 사람이다.” 혹 어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하여 “저가 귀신이 들렸다.”(요7:20)고 평가합니다. 혹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마11:19) 하고 조롱하며 평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조차 예수님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예수님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남동생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아- 형님! 그렇게 잘났으면 나사렛 시골에 숨어있지 말고 대도시 예루살렘에 가서 한번 자신을 마음껏 뽐내보시지 그러셔.” 하고 비꼬고 조롱했습니다.

저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을 보면 참 가소롭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옵니다. 아니, 누가 감히 하나님을 평가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평가할 실력이나 있습니까?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보면 아-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빌라도를 심판하실 분이 예수님이시고,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빌라도인데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그 놈의 세상 명예, 지위, 돈 때문에 예수님을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고 사형을 때림으로 그 죗값을 받게 되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평가하느냐?” “예, 더러는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한 분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즉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그렇게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이런 깨달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큰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입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마십시오. 그 날에 최종적으로 나를, 너를 평가하실 분이 있습니다. 그때 그 분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으로부터 그 날에 좋은 평가를 받으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보람과 행복 속에 영원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