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얼마 전 새벽예배 기도 시간에 단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다름 아닌 ‘사명’이란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사명 때문에 산다.(죽는다)” 어때요? 여러분, 이 제목이 마음에 좀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날 새벽예배 때에 떠오르는 이 생각과 함께 영감이 와서 오늘의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일단 성경에서 ‘사명’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성경에 ‘사명’이란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올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사명’이란 단어는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성경에 적어도 10개 이상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라- 딱 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성경에 한국어로 ‘사명’이란 단어가 한 개 밖에 나오지 않아서 “아- ‘사명’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그 시대에 따라서 자주 사용되고 유행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성경’이 100년 전 쯤에 번역이 될 때는 ‘사명’이란 단어가 잘 사용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개역 성경에 ‘사명’이란 단어가 한 번만 있는 것이지, 실지 ‘사명’이란 단어와 같거나 비슷한 단어가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비전, 미션, 목적(Purpose), 목표(Goal, Aim), 소명(Calling), 사역(Ministry), 임무(Task), 가치(Value) 등과 같은 단어가 사명으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가 새벽예배 기도시간에 제 입에서 계속 ‘사명(×3)’이란 단어가 나와서 도대체 “사명이 뭐야?“ 하며 찾아보았습니다. ‘사명’이란 한자어로 ‘심부름 사’와 ‘목숨 명’입니다. 즉 ‘심부름을 시키려고 세상에 보낸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이 땅에 보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을 우리 피조물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 걸고 하나님의 심부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이 심부름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완수해야 하는 겁니다. 아- 이렇게 뜻을 자세히 알고 보니 ‘사명’이란 단어가 더욱 성경적이고,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의 경우 ‘사명’ 하면 일단 이런 문장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이 문장이 어디에서 나온 문장인지 잘 알겁니다. 예- ‘국민교육헌장’의 가장 첫 머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 때에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을 당시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달달 외우도록 했습니다.
이거 못 외우면 체벌을 당하기도 하고, 외울 때까지 집에 못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35년이 지난 후 2003년도 김영삼 정부 때에 국민교육헌장이 폐지가 되었습니다. 폐지의 공식적인 이유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교육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생겨나는 갭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뒤쪽에 이런 문장이 보입니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2)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아하- 이게 실질적인 폐지 이유일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는 국시가 ‘반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자가 계속 한국에 침투하고, 한때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을 우리의 적으로 보지 않고, 같이 통일을 이루어야 할 파트너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철한 반공 사상이 애국 애족의 길이며, 우리의 삶의 길이라.”고 명시된 국민교육헌장을 폐지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문민정부가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 바로 박정희 군사정부와 전두환 군사정부였기 때문에 이들의 잔재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서 가끔 이렇게 한국의 역사를 설명해주는데, 이게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작용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 젊은 분들은 별로 듣기도 싫고, 관심도 없는 꼰대의 말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면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에 누군가의 실수와 성공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겪은 실수와 성공을 통해 지혜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더욱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 논문을 쓸 때에도 항상 이전에 남이 쓴 논문들을 먼저 들여다봅니다. 왜요? 아- 그들의 과거 연구를 들여다보므로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자기가 쓰려고 하는 논문의 방향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시대에 따라, 민족에 따라, 나라에 따라, 정부에 따라, 그룹에 따라, 개인에 따라, 그 사명이 조금씩 혹은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인류 보편적인 너와 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보면, 특히 하늘의 새와, 바다와 강의 물고기들과, 땅의 각종 짐승들과, 인간들과 같은 생명체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3,28)
즉 생명체들에게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사명은 일단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지구라는 별을 특별히 만드시고 관리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생명체는 박테리아처럼 아무리 작은 생명체라도 살 수 있도록 제 각기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힘을 주셨고, 초식동물들은 풀만 뜯어먹어도 모든 영양분을 만들어내고 살 수 있는 신체구조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양이나 가축의 경우는 혼자 야생에서 못살기 때문에 그들을 보살피는 인간을 목자로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나 동물들이 갓난아기로 태어나면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살 수 없기에 그들 부모에게 모성애와 부성애를 주시어 자신의 자녀들을 보살피도록 하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는 모든 동물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땅과 바다와 하늘의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며 관리하는 능력도 주셨습니다.(창1:28)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이 지구에서 자신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까지 다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사명을 주신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생명체가 살기에 좋은 지구에 죄가 들어오고, 사단이 죄를 무기로 삼고 아담과 하와를 비롯해 우리 인간들을 노예로 삼자 이제는 지구라는 별이 생명체가 살기가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서로 죽여야 하고, 먼저 잡아먹어야 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합니다. 도둑질, 강도질, 사기질, 살인도 해야 합니다. 아- 이거 완전히 평화가 깨졌습니다.
너와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창조 시의 그 보편적인 상생의 사명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은 도리어 그들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마구마구 죽입니다. 아니에요. 그들을 죽이는 것이 사명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이유도 죽을 우리들을 살리려고 오신 것이지, 우리들을 죽이고 심판하고 지옥에 보내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케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요10:10)
고로 마귀 쫓아가면 죽고 멸망당하는 것이요, 예수님께 나아오면 사는 겁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6:48)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10:51)
예수님의 사명이 자신의 몸을 깨트리고, 자신의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들을 살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명도 생명을 바쳐서 그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아-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그들에게 필사적으로 소개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데, 이 복음을 생명 걸고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아니 그건 목사님들처럼 특별히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만 감당하는 사명이 아닙니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아닙니다. 이 사명은 우리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있기에 너와 내가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 때문에 살고, 이 사명 때문에 죽습니다.
허리우드 영화에 보면 ‘톰 크루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중에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란 영화가 시리즈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된 내용은 자신에게 맡겨준 그 고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큰 위험도 무릅쓰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사명을 완수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아- 그게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지옥 가야할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생명을 바치며 수고하는 것은 너와 내가 해야 할 가장 급박하고 가장 고귀한 사명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사명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이 사명을 보다 잘 감당하기 위해 교육도 받고, 훈련도 받고 있으며, 마침내 이 사명을 감당하다가, 이 사명이 끝나면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 “이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기 아니한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자신의 그 고백대로 사도 바울은 그 사명을 모두 마치고 로마에서 목이 잘려 장렬히 순교를 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라고 하는 리빙스턴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그가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사자의 공격을 받고 그만 정신을 잃고 기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깨어보니 몸에 사자의 발톱 자국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때 그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이 끝나기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즉 너와 내가 죽는 날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모두 끝내는 날입니다. 리빙스턴은 자신이 사자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아직까지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후 자신의 사명인 아프리카 선교를 열심히 하다가, 그 사명이 마치자 6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딤후4:17) 즉 사도 바울도 리빙스턴처럼 사자의 공격을 받았지만 살아났다는 겁니다. 왜요? 아- 아직까지 전도의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그리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신경 마비 증세로 인해 학교를 가다가도 길에서 그 증세가 나타나면 손가락 마디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꼼짝 못하고 길에 앉아 있다가 다시 증세가 풀리면 가까스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달 간 학교를 쉰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병이 공황장애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후 중학교 때 야구부에 들어가게 하시고, 몇 년 동안 기초체력을 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ROTC 장교로서 고된 훈련도 받게 하시므로 남들보다 체력이 좋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65세가 된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0년 전 쯤에 제가 ‘카이로프래틱(Chiropractic)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닥터가 최신 기계로 저를 검사하더니, 100명 중에 한 두 명 정도 있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고 건강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가 저에게 말합니다. “You have to give thanks to God."(당신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저를 건강하게 할까요? 아직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습니다. 왜요? 아직 사명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7개월 전쯤에 우리 교회 조인준 집사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혈액암으로 인해 의사가 곧 돌아가실 테니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겠다고 가까운 친척 분들이 병원에 다 찾아오셨습니다. 마지막 고별인사를 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의사가 어버버- 난감해졌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병동에서 두 번째라고 말을 합니다. 참으로 lucky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lucky한 일이 일어납니까? 이게 우연입니까? 아니요. 아직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인준 집사님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시기 7개월 전에 열심히 주일예배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 병원에 입원을 해서 예배에 못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제가 목사로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 하나님, 이렇게 열심히 주일예배에 나왔는데 그만 몸이 아프게 돼서 못나오게 되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이전처럼 주일예배에 나와서 늘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서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평생 죽을 때까지 예배를 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에서 27년째 사역을 하면서 몸이 아파서 예배에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COVID-19 때에도 거의 모든 분들이 한 번쯤은 COVID-19에 걸려서 예배에 빠졌지만 저는 그때에도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왜요? 아- COVID-19 중에도 예배를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곳 캐나다 땅에 온 이유도 바로 이겁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명 때문에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앨버타 캘거리에 온 이유도 여기가 내 사명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도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사람들을 복음으로 살리기 위한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명이란 억만금의 돈보다 중요합니다. 사명은 어떠한 명예보다 중요합니다. 심지어 사명은 나의 생명보다 중요합니다.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목숨, 자기의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중요한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겁니다. 아니 왜요?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게 바로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결론입니다. 자기의 사명을 모르고 사는 것은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너와 나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으로 그들을 살리라는 겁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 온전히 구원을 받게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제발 부탁합니다. 이곳 외국 땅에서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고 바빠도 주님이 주신 그 고귀한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 그 사명을 위해 힘차게 달려가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잘 달려가다가, 마침내 사명이 끝남과 함께 주님의 나라로 영광스럽게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명을 마치고 하늘나라에 올라온 저와 여러분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예비한 부활도 영생도 모두 허락하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사명을 잘 마치시고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영광의 그 날이 올 때까지 계속 건강하십시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십시오. 계속 용기를 내시고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곳 캐나다 캘거리 땅 끝까지 와서도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때로는 이 사명을 감당하면서 낙심이 될 때도 있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을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계속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