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은 후

날짜: 
2012/04/22
설교: 

막1:9-13 성령을 받은 후
이번 주간에 개인적으로 몇몇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국 탤런트 중에 온누리 교회 다닌다는 000 씨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친구가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부러워서 하나님께 방언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다가 방언 기도를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방언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늘의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를 파괴하는 귀신과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성도님들 중에 성경은 많이 아는데 기도가 약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현장이 너무 바쁘다보니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에 집중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쉽게 피곤이 오고 졸리기만 합니다.
이럴 때에 방언 기도는 너무나 유익합니다. 방언은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영과 혀를 주관하시어서 기도하는 것이기에 피곤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한 시간 이상을 거뜬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후에는 더욱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성경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14:39)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전14:5)고 했습니다.
여러분, 순복음 교회는 방언을 금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혹 방언을 못하시거나 남의 방언을 듣기 거북하시는 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했으니 좀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언을 하시는 분들은 더욱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고 질서를 좇아야 합니다. 성령이 주신 귀한 방언의 은사가 상대방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언을 하시는 분들은 방언 통역의 은사도 함께 구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고전14:13) 특히 방언과 동시에 바로 통역이 되는 동시통역의 은사를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통역의 은사가 오면 영과 함께 마음도 같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방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14:14)
즉 방언을 하므로 영은 열매를 맺는데 인격은 열매를 못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방언을 하고 성령의 은사가 꽤 있으신 분들 중에 인격이 따르지 않아 귀한 성령의 은사가 비난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로 성령의 은사 플러스 성령의 열매가 따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즉 모든 성령의 은사는 사랑이라는 인격과 열매가 결합될 때에 비로소 은사의 목적인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가끔 교회에서 보면 방언을 비롯해 예언이나 영 분별의 은사를 받으시고 신령하시다는 분들이 인격의 결합이 되지 않아 귀한 성령의 은사를 받고도 교회의 질서를 깨고 화평을 깨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로 성령의 은사가 임하면 반드시 열매가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에 좀 오래된 것이지만 기쁜 소식 교회에 다닌다는 탤런트 000 씨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모태신앙인으로 살다가 몇 년 전에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남의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신앙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마음에 닿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던 그녀가 안타깝지만 2007년 띠동갑인 000 씨와 결혼을 했는데 5개월 후에 협의이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저도 오늘의 설교 말씀에 000 씨의 간증을 논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좀 고심했습니다. 그렇잖아요.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남의 체험을 하고 방송에 나와서 간증까지 했는데 이혼을 하다니...
그러나 여러분, 복음은 우리의 현실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칫 시험에 들 소지가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1:3) 여러분,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입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합작해서 아들을 낳았다니... 이거 머- 콩가루 집안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 중에 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마1:5) 여러분, 여기서 나오는 라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생 라합입니다. 요즘 말로 창녀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창녀가 들어가다니... 참 메시아의 족보치고는 너무나 부끄럽지 않습니까?
또 예수님의 족보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1:6) 여러분,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 중에 다윗이라고 하는 유명한 이스라엘 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대단히 칭찬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혼한 여자와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여자의 남편이요, 자기의 충신인우리아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빼앗아 솔로몬이라는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니, 이런 때려죽일 녀석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왕이 남의 여인과 간음을 하고, 그 남편을 죽이고.. 세상에...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조상이라니 참 안 믿는 사람한테조차 부끄럽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하나님, 우리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런 수치스러운 것들은 좀 빼고 기록하시지... 뭐하려고 이런 것들을 기록하셔서 스스로 창피를 자초합니까? 기왕이면 좋은 것들을 보다 멋있게 꾸며서 기록하시면 복음전파에 더 좋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의 족보에 그렇게 좋은 것만 삽입하고, 좋지 않는 것은 다 빼버리면 그것은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않습니다. 거짓과 곡해가 가득한 역사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도 예수님의 족보에 집어넣으므로 우리에게도 희망을 주시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런 콩가루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쓰시니 나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당하고 겪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식에 임하는 신랑신부가 적어도 결혼식 날만큼은 이혼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이혼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혼을 안 합니까? 좀 덜하겠지만 역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는 사람은 이혼을 안 합니까? 좀 덜하겠지만 역시 당하고 겪는 현실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서 도리어 이런 수치스러운 사람들이 수치스러운 일들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든 것들 조차도 합력하여 선하게 운영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좋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에 그런 수치스런 사람들, 그런 수치스런 이야기들이 들어 있으므로 복음이 더욱 복음다워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복음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현실을 도피하며 산에 처박혀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기독교인들은 현실의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상황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진흙탕과 같은 현실에서 나를 지키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도 지켜주려고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진흙탕과 같은 현실, 냉혹한 현실로 인해 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다시 일어납니다. 특히 성령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는 데에 더욱 빠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한 군인이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누가 부축해줍니다. 의무병입니다.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고, 진통제를 주며, 용기를 줍니다. 그 군인 살아납니다. 그러나 큰 부상을 당했는데 옆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군인 죽기 쉽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분명 유익합니다. 하나님이 유익하지 않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특히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으로서 이 세상에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선물을 받았어도 현실은 여전히 냉혹합니다. 아니 오히려 마귀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더욱 노립니다. 그냥 놔두면 나중에 마귀에게 큰 거침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에게 돈 다발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아닙니다. 명예와 출세가 다가왔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1:12)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한 후 성령은 예수님을 호화로운 궁궐로 초대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쫄딱 굶겼습니다. 얼마동안 예수님을 굶기셨을까요? 40일 동안 굶기셨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40일 동안 먹지 않으시니 배가 심히 고팠습니다. 때마침 마귀가 다가왔습니다. "배고프지? 돌멩이를 떡으로 만들어 먹어? 너는 그런 능력 있잖아?"
여러분, 성령이 임하면 마귀도 더욱 세게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마귀나 나타나지도 않더니 이제는 나타납니다. 유혹합니다. 배가 고플 때에 밥 먹는 것이 뭐가 죄입니까? 그런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을 훔쳐 먹으면 죄입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 죽을지라도 회사 돈을 횡령하면 죄입니다. 마귀는 그렇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죄를 저지르라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한 후에는 삶이 달라집니다. 특히 기도 못하는 사람이 기도하게 됩니다. 성경이 깨달아지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전도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마귀도 더욱 세게 시험합니다. 성령이 임한 후 그때부터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 동안 숨어있던 가난과 저주 귀신도 안 나가려고 발악합니다. 붙었던 질병의 귀신도 안 나가려고 달려듭니다. 더욱 세게 마귀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때 물러서면 안 됩니다. 마귀가 최후의 요동을 하는 것인 줄 알고 더욱 기도해야 하고, 더욱 인내하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님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는데 시험이 다가왔습니까? 성령을 받았는데 시험이 다가왔습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당연합니다. 그 시험을 잘 통과하십시오. 더욱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수종을 들어줍니다.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힘쓰면서 마침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후 은사도 따랐습니다. 그 은사가 질서를 좇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쓰여야 합니다. 인격과 열매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한 후 시험도 따랐습니다. 그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넘어져도 쓰러져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또 다시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저와 여러분의 앞에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