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쾌락이냐? 영원한 즐거움이냐?

날짜: 
2006/06/11
설교: 

히11:24-26 순간의 쾌락이냐? 영원한 즐거움이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있는데 다름 아닌 교회에 나오거나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적인 쾌락이나 즐거움을 취하는데 심한 제약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골프 치는 것도 힘들고, 가족들끼리 멀리 여행가는 것도 힘이 듭니다. 더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일날 술 한 잔 하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주일 지키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교회에 나오기 힘들어하는 것은 저도 옛날에 많이 경험했습니다. 특히 제가 청년 때에는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권투 시합 중계를 하면 시합이 시작되기도 전에 텔레비전 앞에서 열광하곤 했습니다. 그때 저희 어머님이 “애야, 오늘 주일인데 교회가야지!”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스포츠 중계는 거의 주일을 끼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점이 신앙생활 하는 데에 아주 큰 갈등을 느끼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월드컵 축구가 이번 주에 시작이 됩니다. 한번 묻고 싶습니다. 혹시 월드컵 축구 시합을 보느라고 다음 주일 예배에 빠지실 분이 있습니까? 만약 이 물음에 “예스!” “당연하죠!” 혹은 “아멘!”이라고 힘차게 대답하는 분이 있다면 주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혹 다음 주일 이 시간 월드컵 축구 때문에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면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축구팀이 16강을 통과하고, 8강을 승리로 이끌고, 드디어 4강에 올라가고, 기적적으로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이 공교롭게도 주일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때 당신은 어디에 앉아 있겠습니까? 과연 그날에도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겠습니까? 아니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겠습니까?
이 물음에 당신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목사님, 그때 가봐야 압니다.” “목사님, 그때에는 예배를 일찍 드리고 다 함께 응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정도면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제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날 월드컵 결승전 시합을 보느라고 성도님들이 모두 예배에 빠져서 저만 이 자리에서 혼자 설교를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물론 그러지는 않겠지만 자못 염려가 됩니다. 그렇다고 “에이, 한국 선수들 다 져라. 그래서 16강 예선전 통과하지 말고 그냥 빨리 끝내자.”라고 제가 말한다면 여러분들 중에 저를 “매국노!”라고 하면서 저에게 시험이 들어 다음 주부터 교회에 안나올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 최선을 다하여 경기하고, 기왕이면 이기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당장 주일예배를 드리느냐,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인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월드컵 축구 결승전이 아니라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느라고 주일 예배에 빠집니다. 그리고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컴퓨터 채팅이나 오락을 하느라고 주일예배에 빠집니다. 그것도 아주 자주요. 한번 물어 봅시다. 이것 바른 신앙입니까? 같이 따라합시다. “아닙니다.”
물론 이 점이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생활 하기 힘든 경우입니다. 더구나 세상 쾌락에 아주 깊이 빠져있다면 주일날 교회에 나오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더구나 성경이 예언하기를 말세에는 사람들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딤후3:4)고 기록합니다. 즉 세상의 순간적인 쾌락을 좇느라고 제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 크리스천은 이 점에 있어서 깊이 생각해보고 바른 결정과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순간의 세상 쾌락을 좇아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하늘의 즐거움을 좇아가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믿기 위해서는 조금 힘들지만 먼저 이 물음에 바른 대답이 필요합니다. 저는 캘거리로 이민이나 유학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줍니다. “캘거리는 항구 도시인 밴쿠버나 토론토에 비하여 타락하는 곳이 적습니다. 고로 캘거리는 아이들 교육에 좋은 도시니 이곳으로 이민이나 유학을 오십시오.”
물론 이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곳 캘거리가 타락하기 쉽지 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주 열심히 아주 용감히 타락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 쾌락을 줄기는 데에 열심을 내면 그 사람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 마치 미끼를 물은 물고기나 미끼를 좇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지냈고 도살당할 날을 눈앞에 두고도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공동번역 약5:5)
여러분, 옛날에는 사단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기 위하여 극심한 핍박과 환난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인간이 세상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줄을 사단이 잘 알고 때문에 이제는 세상 쾌락을 누릴 수 있도록 건강도 줍니다. 돈도 줍니다.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타락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죽음의 순간에 다가와 우리의 귀중한 영혼을 도적질해갑니다.
더구나 외국이라는 곳은 부모님이나 친척 이웃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타락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이 외국 땅에서 세상의 순간적인 쾌락을 좇아가면 당신의 미래는 캄캄합니다. 더구나 크리스천으로서 거룩히 지켜야할 주일조차도 세상 쾌락을 좇아가기 바쁘다면 당신의 앞날은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인생은 잠간입니다. 이 잠간의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당신의 영원한 인생이 결정되어 집니다.
오늘의 본문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여러분,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영원한 즐거움을 위하여 순간적인 세상 쾌락을 절제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크리스천이 영원한 즐거움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쾌락에 취하여 살면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꿈과 희망과 비전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타락한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크리스천에게 미래를 보장하지를 않습니다. 고로 우리는 세상의 환경이 아무리 우리를 타락으로 몰아가려고 해도 그에 말려들지 않도록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괜히 술집 앞에서 “주여, 저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않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말고 술집을 단호히 떠나십시오. 죄악의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말고 성결의 시간, 성결의 장소를 선택하십시오. 열심히 예배에 나오고,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고 학생은 공부에,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라고 하신 사명을 감당하기에 열심을 내십시오.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의 사장인 빌게이츠라는 양반이 어느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 놀지 않고 바보처럼 열심히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 학생에게 잘 보이십시오. 얼마 후 그 친구가 당신의 사장이 될지 모릅니다.” 물론 학생 시절에는 세상적으로 노는 데에 용감한 학생이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열심히 놀았다고 하나님이 당신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심었든지 그 대가를 하늘나라에서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마을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세상 쾌락에 취하여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는데, 반면 그 부자 집의 대문 앞에서 거지 행각을 하는 나사로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지이지만 늘 하늘의 즐거움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믿었다. 이 둘이 죽게 되었는데 세상 쾌락에 취하여 하늘의 즐거움을 바라보지 못했던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 중에 몸부림치게 되었고, 거지 나사로는 하늘의 위로를 받고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졌다.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또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 걱정과 재물과 현세의 쾌락에 눌려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공동 눅8:14)
여러분, 이런 이야기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즉 잠간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여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잠간의 쾌락을 절제하며 살다가 영원한 즐거움을 얻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너희들은 과연 어느 편을 택하겠느냐?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도 전에는 미련했고 순종할 줄 몰랐고 자주 잘못된 길로 빠졌고 온갖 욕정과 쾌락의 종이 되었다”(공동 딛3:3) 그러나 이제는 순간의 쾌락을 좇는 일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왔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순간적인 세상의 쾌락을 따라서 살다가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공동 요일2:16)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공동 고후4:18)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아직 나이가 젊은데요.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의 쾌락을 누리지도 못하게 되고... 그러면 저만 억울하고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좀 세상에서 놀다가 나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안되겠습니까? 약속하지요.” 이렇게 위험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여, 실컷 놀다가 나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보장해줍니까? 하나님이 그때 당신을 부르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 스스로 돌아온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미 세상 쾌락을 다 경험한 솔로몬이라고 하는 양반이 말해줍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여러분, 세상 쾌락에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목마를 때에 소금물을 먹으면 더욱 갈증만 납니다. 세상 쾌락을 좇아가면 더욱 갈증만 느끼고 나중에는 목이 타서 죽고 맙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4:13-14)
지혜로운 여러분들이여,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세상의 쾌락보다 더욱 좋은 천국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다윗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요15:11)
당신이 오늘날 이곳에서 어떤 즐거움을 좇아가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미래가 결정이 됩니다. 잠간의 세상 쾌락을 좇아가면 결국 파멸이요, 영원한 주님의 즐거움을 좇아가면 결국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당신은 어떤 것을 좇아가겠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결단하고 결심하십시오. “순간의 쾌락이냐? 영원한 즐거움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