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말렉과 싸우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중에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누가 만들어서 존재하는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 즉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라는 이름 뒤에 또 다른 이름을 붙여 합성어로 하나님의 이름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여호와 이레'입니다. 이 뜻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 라파'입니다. 이는 여호와가 치료하신다는 뜻입니다. 셋째, '여호와 살롬'입니다. 이는 여호와는 평화라는 뜻입니다. 넷째, '여호와 삼마'입니다. 이는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지금도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여호와 에벤에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 닛시'입니다. 이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깃발은 여러 의미로 쓰입니다. 먼저 깃발은 신호용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특히 백기를 들고 적군에게 가면 항복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국기와 같이 어떤 특별한 나라나 단체를 의미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림픽 경기 때에는 각각 올림픽 깃발이나 자기 나라의 국기를 들고 입장합니다.
그리고 깃발은 점령지를 표시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달에 처음 착륙했을 때 성조기를 달에 꽂았습니다. 자기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깃발은 승리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 하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역사에도 보면 뜻 깊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6.25 전쟁 때에 한국의 해병대 병사가 북한군에게 빼앗긴 서울을 다시 수복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감격적인 사진입니다. 영화 제목 속에도 나오는 '태극기 휘날리며'입니다. 즉 깃발을 휘날린다는 것은 승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이 이렇습니다.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 하나님 앞에 나아오실 때 과연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기쁜 모습으로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백기를 들고, 고개를 푹- 숙이고, 패배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간신히 나오셨습니까? 물론 다들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나오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분도 제법 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교회에 오면서 만날 하나님께 팔자타령이나 하소연을 하러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시고 치료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그런데 이건 한 주, 두 주도 아니고 일 년 52주 계속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낙심과 한숨만 쉬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어찌합니까?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오늘은 또 왜 그래? 또 누가 너 때렸니? 왜 만날 맞고만 오니? 애야, 얼굴 좀 펴라. 너를 보면 나도 인상이 찡그러지고 한숨이 나온다." 여러분, 가정에도 분위기가 있고, 일터에도 분위기가 있고, 학교에도 분위기가 있고, 교회에도 분위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포 영화를 보십시오. 공동묘지가 나오고 분위기가 음산합니다. 그런 곳에 가고 싶어 하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위기가 나쁘면 안 됩니다. 새신자가 교회에 처음 왔는데 교회가 공동묘지처럼 분위기가 음산하면 "어이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거나 화난 기색을 띠고서는 전도도 할 수 없고, 교회의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는 밝기를 조절하는 키가 있습니다. 그 키를 움직여 보십시오. 지금 하라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한 번 해보십시오. 너무 밝아서 촌스럽고 경박해 보이므로 "이건 아니다!" 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너무 어두워서 "이것도 도저히 아니다!"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이 대체로 밝은 상태로 화면을 조절해 놓으셨을 겁니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웃어 보고 울어 보니 웃는 것이 낫다." 물론 우리는 울 때 울어야 하고, 웃을 때 웃어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하거나 전혀 조절하지 못하면 어디 가야 합니까? 정신병원에 가야합니다. 그러나 만날 슬픈 기색을 띠며 사는 사람보다 기쁜 모습, 환한 모습을 띠며 사는 사람을 더욱 선호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기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면 같이 마음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만날 우울하고 화나고 낙심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면 "너 왜 그러니? 내가 그렇게 너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고 좋은 것을 주었는데, 너는 왜 만날 우거지상을 하고 교회에 나오니? 애야, 제발 인상 좀 펴고 즐겁게 살수 없니?"
여러분, 저는 이전에, 그러니까 제가 교회에 다니기 전에나, 혹은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에는 교회에 대하여 잘못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교회는 즐거우면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교회 사람들이 즐거우면 마치 세상 사람들처럼 술 먹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타락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만날 우거지상을 띠고 우는 모습을 해야 그것이 경건하고 거룩하고 신령하게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은혜를 받고 보니 이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가 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형 판결이 났습니다. 오늘 내일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특별 사면이 떨어졌습니다. "너의 죄를 용서해준다. 고로 너는 이제 자유다." 할렐루야! 사형수가 그날 감옥을 나오면서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기쁨입니다. 즉 죽을 내 영혼이 살아났다는 겁니다. 이제는 죄로 인해 지옥가지 않고, 죄 용서함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기쁨을 한번이라도 맛보았거나 믿어지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크게 아멘 해보십시다. 할렐루야!
아직까지 이 기쁨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예를 한 번 더 들어 봅시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기뻤던 날이 언제입니까? 사랑스런 자녀가 세상에 태어난 날입니까? 물론 기뻤을 겁니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이는 이상하게 모두 울고 태어납니다. 태어나면서 아기가 씩- 웃으면서 "아빠 엄마 수고하셨어요."라고 웃으면서 태어났다는 뉴스를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즉 아기는 인생사는 것이 본능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가 기뻤어요? 사랑스런 아내, 혹은 남편과 결혼식을 올릴 때였습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해서 오랫동안 살아보니 어때요? (왜 웃으세요? 예전만큼 기쁘지 않나 보지요?) 우스갯소리 좀 합시다. 어느 TV 프로에서 낱말 맞추기 게임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같이 산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나오셨습니다.
맞추어야할 낱말은 '천생연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낱말을 할머니에게 설명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해?"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원수' "아니, 그것 말고 네 글자로 하면 뭐라고 해?" 할머니가 핏대를 세우며 또 다시 대답합니다. '평생원수' 할아버지가 너무 당황하여 말합니다. '통과통과'
좀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하여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 중 가장 기뻤었던 때는 언제에요? 제가 단언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생 중 가장 기뻐했던 그 순간보다 수 백 배, 수 천 배의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11)
여러분, 예수님 믿으면 심히 기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기도하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고 진리를 깨달으면 기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기쁩니다. 승리의 소식을 전달 받으면 기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그들을 둘씩 짝지어 각 동네로 전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이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귀신을 물리치고 쫓아내는 기쁨도 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하나님께 좋은 선물을 받는 기쁨도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희한한 기쁨도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어 내가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확신 속에서 오는 기쁨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으니 우리들도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보다 행복하고, 보다 기쁨 속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여러분, 예수님 믿고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기쁨이 찾아와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행복해져야 합니다. 즉 주일 날 올 때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오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 또 이겼어요!" 예수님 이름으로 또 승리했어요!" 하고 승리를 보고하기 위해 오십시오. 만날 "나 시험 들었어요. 나 화났어요. 나 마음이 꿀꿀해요." 하고 교회에 오면 초신자 때에는 이해가 되지만 어느덧 중신자가 되었는데도 계속 그러면 안됩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자가 되어서 주일 날 초신자들을 비롯해 믿음이 약한 분들을 돌아봐야 하는 분들이 만날 우거지상을 하고, 찌푸리고 흐린 날씨처럼 해서 오면 안됩니다. 그런 교회에는 새신자가 붙어나지 못합니다. 승리의 얼굴을 하며 와야 합니다. 특히 토요일 날은 새신자 손님을 맞이하는 날이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와서 하늘나라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 시대에 신하가 왕들 앞에 나올 때에 슬픔과 우울한 표정을 짓고 나오면 절대로 안됩니다. 만약 어떤 신하가 왕 앞에 나올 때 슬픈 기색을 하고 나오다가 그만 왕이 "너 왜 인상 짓고 그래? 너 내가 왕이 되는 게 싫으냐? 아니면 너 나한테 뭐 못마땅한 것이 있냐? 에이, 이 놈 죽여라." 하면 신하는 그날로 끝이 나고 맙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연인들끼리 서로 데이트를 할 때도 만날 인상 짓고 나오면 상대방이 뭐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올 때 될 수 있으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나오십시오. 그러기 위해 토요일 날은 기도를 더욱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전도할 사람에게 전화하고 연락해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오늘 제가 한 사람 전도해서 왔어요. 하나님도 기쁘시지요. 저도 굉장히 기뻐요." 하고 하나님과 기쁨을 나누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너 참 잘했다. 너 굉장히 수고 했다. 내가 너에게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칭찬을 듣는 날이 되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니 출애급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아말렉 족속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모세는 이제 나이가 많아 직접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대신 전쟁에 나가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를 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피곤하여 기도의 손을 내리면 적군이 이겼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쪽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계속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 장군이 아말렉을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즉 싸움은 여호수아가 했지만 승리는 기도하는 모세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모세가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했습니다. 즉 여호와가 나의 깃발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승리의 깃발을 휘날린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는 인생을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인생을 승리하고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 믿고 승리해야 합니다. 이 외국 땅에서도 승리의 깃발을 휘날려야 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이루기 위해선 모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를 뒷받침 해주는 아론과 훌처럼 기도하는 지도자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모세를 힘 빠지게 하면 안됩니다. 늙은 모세보고 전쟁터에 나가라고 하고 젊은 여호수아가 기도한다고 해도 안됩니다.
각자가 맡은 사역이 있고, 각자가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개 전투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힘을 합쳐서 승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같이 힘을 합쳐 승리의 깃발을 날려야 합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이제는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오십시오.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오십시오. 혹시 오늘 근심하며 왔더라도 빨리 하나님을 만나고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