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주는 교훈

날짜: 
2003/09/23
설교: 

약1:2-4 시련이 주는 교훈
뉴잉글랜드 동부 연안의 한 작은 항구에 그 동네 남자들이 고기잡이로 모두 떠났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큰 폭풍우가 다가오더니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벼락이 치고 소나기나 쏟아지고 거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 돌아와야 될 어부들이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어촌 아낙네들은 모래사장에 모여서 통곡을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마을 남자들이 돌아오게 해 주시옵소서 !"
그런데 한 밤중이 되어도 아무런 소식도 없고 폭풍우는 점점 더 거세지기만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동네에 불까지 났습니다. 동네에 장정들이 없으니까 불은 삽시간에 이 집에서 저 집으로 화염이 충천하여 온 천지가 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아낙네들은 또 땅을 치고 울며 "하나님, 우리를 이렇게 버리십니까 ? 폭풍우로 인해 남자들이 다 바다에서 죽고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인 집들마저 불에 타버렸으니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 하며 밤새도록 통곡을 했습니다.
아침이 다가올 때쯤 폭풍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기 잡으러 나갔던 남자들이 배를 타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뛰어내려 자신들을 눈물로 기다리던 부인들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었다."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 폭풍우를 만나 천지가 어두워서 갈 길을 잃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할 때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날은 어둡고 방향을 잃었으니 이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
그렇게 부르짖는데 마침 해안에서 불기둥 같은 충천한 광채가 나타난 것입니다. 마침 그 시각, 그 동네에 불이 난 것입니다. 그 불길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고 결사적으로 항해를 계속해서 그들은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동네가 불탄 것이 엄청난 손실인줄 알고 절망과 좌절이 빠졌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동네에서 불이 나게 하셔서 불기둥을 통해서 소망의 등대를 삼아 난파한 어선들이 돌아올 수 있게 비춰준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배가 파손되어 구사일생으로 무인도에 닿아서 그곳에 움막을 짓고 아무 배든지 그 무인도 근처를 지나가다가 자기를 발견하고 구출해 줄 것을 바라면서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 가지고 와서 보니까 움막이 완전히 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날은 추워지는데 거할 처소가 불에 타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배 한 척이 그곳에 상륙을 해서 그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게 무슨 말이냐 ? 어제 당신이 연기로 구출 신호를 보내지 않았느냐 ?"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이 올 때도 있으나 먼 훗날 지나고 보면 하나님이 가장 완전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탈리아에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페거니씨가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했던 연주는 단 한 줄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일입니다. 한번은 매우 수준이 높은 청중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순간 청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연주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남은 세 개의 줄로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한 줄이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페거니씨는 연주를 침착하게 계속하였습니다. 그때 세 번째 줄이 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끊어졌습니다. 잠시동안 연주자는 멈추어 그 유명한 스트라티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한 손에 높이 들고 `줄 하나와 페거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중히 활을 들어 한 줄로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굵고 깊은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폭풍을 뚫고 올라가 창공을 보듯이 그 소리는 아름다웠습니다.
청중은 침묵 속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감돌았습니다. 사람들의 고개가 하나하나 수그러졌습니다. 연주를 마치자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는 이와 같이 줄이 계속 끊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사적인 각오만 되어 있다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고, 오히려 불후의 걸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물학적인 중요한 화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목장에서 양을 많이 길렀는데 늑대와 여우가 내려와서 양을 해친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냥꾼들을 초청해서 그 목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 맹수들을 거의 다 잡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양들의 피해는 줄어들었고 양은 번식이 잘 되었습니다. 만족한 결과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겨울이 되어서 그렇게 춥지도 않았는데 양들이 많이 얼어서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생태학자들이 와서 조사한 후에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늑대나 여우가 없어지자 양들은 긴장이 풀어졌고 저항력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추위를 이겨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맹수가 옆에 있으면 양들이 강인해져서 어지간한 추위도 이길 수 있으나 천적이 사라지자 저항력이 줄어든 것입니다."
여러분, 시련은 나를 연단 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이 고생을 모르고 살거나 긴장할 일거리가 없으면 오히려 다른데서 엉뚱한 사고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또한 고생을 모르게 자녀를 기르면 나중에 큰일을 당할 때 그 자녀는 그것을 이길 힘이 없어 쉽게 절망 속에 빠지고 맙니다. 즉 편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육학에 있어서 대원리는 연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각각 시련과 고난의 학교를 졸업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서부 해안에서 바닷고기들을 동부 해안으로 이송하면서 완전한 서식 환경과 먹이를 넣어 일주일간 수송했는데 바닷고기들이 다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문어 같은 흉어들을 넣어 먹히느냐 먹느냐의 바다 속 같은 생존 투쟁의 환경을 만들어 줬더니 그 고기들이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시험까지도 성도들의 믿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66:10-12)
하나님께 합한 다윗 왕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노라"(시119:7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더욱 믿음에 서시고,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고난을 밥과 양식으로 삼고 더욱 힘을 얻어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환난과 시험이 닥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 하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일을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하시는가 ?" 하고 물어보는 것이 훨씬 좋을 듯 싶습니다.
금세기 초에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 루스 펙트 여사가 핀란드에서 같은 기차를 탔던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인상은 그 여인의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여인의 오른쪽 손 대신에 금속의 의수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대화 도중에 그 여인이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폐병에 걸려 이제 본국으로 소환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인은 고국 핀란드에 돌아와 농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중 어느 날 탈곡기에 손이 걸려 오른손이 절단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른손이 절단되었을 때 주님을 바라보며 "주여, 오른손이 없는 나에게 이제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는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고 주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 이라고 묻는 여인에게 그 농장을 나이든 크리스천을 위한 양로원으로 개조하도록 하셨으며,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놀라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은 오늘의 시련에 좌절하거나 오늘의 시련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의 시련조차도 유익의 도구로 삼아 더욱 전진하고, 그 시련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기회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시련을 통하여 큰 축복을 보다 확실히 안겨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