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test, trial, temptation)

날짜: 
2020/06/21
말씀: 
약1:2-4, 12-14
말씀구절: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설교: 

COVID-19 전염병이 우리들의 일상을 너무도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이게 웬 말입니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로 인해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오- 할렐루야!”를 외치는 학생들이 많을 겁니다. 더 나아가 진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학생은 “주여, COVID-19이 좀 더 오래가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는 못할지라도 내심 상당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뭐 그렇다고 수업이 아예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학교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합니다. 과제도 제법 많이 있습니다. 좋다 말았습니다. 캐나다 뉴스를 보면 COVID-19이 아직은 불안하지만 요즘은 서서히 오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유치원부터 Grade12(고3)까지 계속 방학을 합니다. 9월 새 학기가 되어서야 개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Grade 12(고3)은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시험을 치러야 그 성적을 가지고 대학을 갈 수 있습니다. 고로 시험을 치루기 위해 며칠간은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예외 조항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COVID-19으로 인해 잠시 학교가 휴교를 했지만 상황이 좋아져 다시 개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 중에 확진자가 나와서 또 다시 휴교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 때가 다가온 겁니다. 특히 고3의 경우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치러야 그 성적이 반영되어 대학을 갈 수 있습니다. 고로 고3의 시험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학교에 나왔는데 일일이 COVID-19 확인차 체온 체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날씨가 굉장히 덥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열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잠시 시원한 곳에서 바람을 쐬고 다시 체온을 체크합니다. 그런데 열이 떨어지지 않는 학생이 있습니다. COVId-19 증상이 있는지 암튼 이런 학생은 같이 시험을 치루기 위해 교실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3의 경우는 시험을 치루지 못하면 대학 성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래서 COVID-19 증상이 있어도 해열제나 기침 억제제를 먹든지 해서 일단 시험을 치르려는 겁니다. 이로 인해 학부모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육부와 학교 당국이 큰 시험에 빠졌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6:13)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학생들 시험 치르게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시험을 치르다가 COVID-19 전염병이 걸리면 이건 진짜 큰 시험에 빠지는 것이겠지요?

자- 여기서 우리는 ‘시험’이란 단어가 문맥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을 읽다보면 ‘시험’이란 단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시험’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역시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에 대하여 같이 알아보기 원합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시험하다’ 또는 ‘유혹하다’라는 뜻의 동사는 ‘나사(nasah)’라고 합니다. 이 단어에서 명사형인 ‘마싸(massah : 시험)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한(bahan) 이란 단어도 ‘시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신약성경에서는 ‘시험하다‘라는 뜻을 ’페이라조메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명사형은 ‘페이라스모이스’입니다. 그리고 ‘도키마조’라는 단어도 ‘시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이의 명사형은 ‘도키마스’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페이라조’ 시험은 사단이 우리들을 나쁜 의도로 시험에 빠트리는 것이고, ‘도키마조’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설명합니다.

간단하고 명료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실지 원어를 보다 꼼꼼히 살펴보면 꼭 그렇게 일률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성경에서조차 문맥에 따라서 그 단어의 의미가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어 번역본이나 한글 번역본을 통해 ‘시험’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성경구절을 읽다 보면 자칫 ‘시험’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King James Version은 1611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영어 번역본이다 보니 같은 단어일지라도 현대 영어 번역본과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시험’이란 단어에 대하여 KJV은 ‘temptation'이란 단어를 종합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New International Version은 ‘시험’이란 단어를 문맥에 따라 보다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에 보면 ‘시험’을 영어로 'test, trial, temptation'로 나누었는데 NIV이 이렇게 나뉘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어를 좀 아시는 분들은 이해하기가 보다 쉽습니다.

‘test'는 학생들의 시험 ’exam'의 뜻이고, ‘trial'은 ’시련(hardship)‘으로 해석되고, ’temptation'은 사단의 ‘유혹’으로 구별됩니다. 본문을 봅시다.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에서 ‘시험’은 test, trial, temptation 셋 중에서 무슨 뜻일까요? ‘trial(시련)’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봅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에서 ‘시험’ 역시 ‘trial(시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에서 ‘시험’은 temptation(유혹)‘입니다.

자- 그럼 시험 문제를 내볼게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무슨 뜻입니까? 첫째 test, 둘째 trial, 셋째 temptation. 예- 셋째 temptation(유혹)을 받으셨다 입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무슨 뜻입니까? 첫째 test, 둘째 trial, 셋째 temptation. 예- 첫째 test 뜻입니다.

시험문제는 대개 권위가 있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상대로 내는 것이지 학생이 선생님의 실력을 측정하기 위해서 시험문제를 내면 괘씸죄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실력을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고 괘씸죄에 걸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하나님, 제가 이번에 649 복권을 샀습니다. 하나님이 일등으로 당첨이 되게 하시면 하나님 맞고요. 꽝이면 하나님 실력 못 믿겠습니다.” 아직도 이런 철딱서니 없는 기도를 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이 기도는 자기 욕심과 탐욕에 이끌린 것이요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을 주시면 하나님이시고, 혹을 화를 당하면 하나님이 아니라는 신앙은 하나님을 시험(test)하는 것이요 옳지 못합니다.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를 시험합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드려라.” 여기서의 시험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 test, 둘째 trial, 셋째 temptation. 예- 첫째 test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test에 합격할 믿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그리고 test에 합격하니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test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어려운 시련(trial)을 허락하시고 이를 잘 참고 인내하고, 믿음을 성숙시키며, 인격을 좋게 가다듬으면 그 후에 상을 주시는 겁니다.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 3:10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기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의 시험‘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 test, 둘째 trial, 셋째 temptation. 예- 둘째 trial(시련)입니다.

7년 대환난의 시련은 인간이 감당하기가 어려운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런 시험을 성경은 면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즉 7년 대환난 전에 휴거가 된다는 학설을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에서 ‘시험’은 test입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조금 어렵고 복잡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여기서의 시험은 무슨 뜻입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7살 난 꼬마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슈퍼스토아’에 갔습니다. 아들이 바구니를 들고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든 바구니에다 사과 3개를 넣습니다. 이어서 토마토 3개도 넣습니다. 바나나도 한 묶음을 넣습니다. 포도도 한 다발을 넣습니다. 허니듀도 한 개를 넣습니다.

아들이 좀 무거워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줌마가 안쓰러워서 물었습니다. “애야, 무겁지 않니?” 애가 대답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는 제가 얼마만큼 들지 능력을 잘 알고 있어요.” 즉 하나님이 시련(trial)의 무게를 각자에게 맞게 조절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이를 너무 무겁다고 여기면 그 시련의 무게를 하나님 아빠가 같이 혹은 대신 지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또 'test'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어떤 학생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시험문제로 그를 골탕 먹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temptation(유혹)'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그때마다 역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가 오늘 유난히 술을 마시고 취하고 싶습니다. 이때 그 안에서 성령님이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마지막 시험문제입니다. 말라기 3: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여기서의 시험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 test, 둘째 trial, 셋째 temptation. 예- 첫째 test입니다. 성경은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지만 십일조로는 하나님을 테스트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십일조를 했더니 하나님이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주셨나요? 그래서 여러분의 통장에 백만 불 이상씩 다 들어 있나요? 지금은 백만 불이 없지만 나중에 하나님이 주실 건가요? 확실해요?

만약 십일조로 하나님을 테스트했는데 백만 불을 안주시면 이 구절은 거짓말입니까? 자- 여기서 하나님을 test 해보라는 의미를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즉 여기서 test 뜻은 find out(알아차리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두 달라)을 부자의 천 불 헌금보다 더 많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즉 십일조의 시험은 단지 돈 내고 돈 먹기 식의 테스트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뜻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복은 꼭 물질의 복만 의미하기 보단 그 보다 더 나은 복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도 하나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자체가 큰 복입니다. 이번 COVID-19으로 사람들이 여러 모로 어렵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우선시 한다면 이도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입니다. 아무쪼록 어려운 삶의 현장 속에도 시련과 시험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