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과 허상

날짜: 
2003/08/04
설교: 

제 목 ; 실상과 허상
본 문 ; 계 2:8-11

어떤 불신자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한 천사가 나타나 말을 합니다. "당신 천국으로 가고 싶소 ? 아니면 지옥으로 가고 싶소 ? "
그러자 이 사람 대답하기를 "이왕에 내게 그런 선택의 특권을 주시려거든 한번 천국과 지옥을 구경한 후에 결정하도록 기회까지 주십시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서 구경을 해보니 모두들 앉아서 성경 읽고 찬송하고 묵상 기도들을 하는데 웬일인지 자기가 보기에 좀 따분해 보이고 재미가 없어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서 보니까 어찌나 사람들이 괴성을 질려대면서 몸을 흔들고 머리를 풀러 제치고 희희하하거리며 울고불고 하는데 정말 소란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하며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그곳이라야 자기의 체질에 맞을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와서 "나는 아무래도 지옥 체질인가 봅니다. 지옥으로 보내 주십시오." 하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 지옥에 가서 지옥을 지키는 바알세불을 만나니 "야- 너 잘 왔다." 하면서 배치를 하는데 뜨거운 용광로 아궁이 앞에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을 때라고 하더랍니다.
그 앞에 있을러니 얼마나 뜨거운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바알세불을 찾아가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내가 먼저 번에 지옥을 구경할 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지옥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습니까 ?"
그러자 지옥 왕 바알세불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네가 지난번에는 관광비자를 가지고 왔었으니 그렇게 좋은 곳만 봤던 것이고 지금은 영주권을 가지고 왔으니 당연히 지옥의 고통스러운 곳에서 고통을 당해야 하느니라."

여러분, 이 예화는 이민이나 유학 생활의 허상과 실상에 관한 예화입니다. 즉 단순히 관광을 와서 이리저리 경치 좋은 곳을 관광하면서 바라보는 실상과, 영주권을 갖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하고 바라보는 실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의 실상과, 직접 여기 살면서 겪는 생활의 실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곳에 유학이나 이민을 오기 전 제대로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왔다면, 이곳의 삶에 당황함과 답답함이 생길 수가 있고 쉽게 낙심과 절망에 빠지기가 쉬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상과 허상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합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어보려는 사람들이 나중에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실상과 허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한 어부가 바다에다 그물을 던져 물고기들을 잡았는데 그 그물 안에는 좋은 물고기도 있고 나쁜 물고기도 있다는 말씀인데, 이는 교회에는 다 천사만 혹은 다 마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는 악인이 있을 수도 있고 선인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라지와 쭉정이도 있을 수 있고 알곡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모습이 좋은 모습보다도 나쁜 모습들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실상입니다. 이러한 실상을 모르고 괜히 겉모습만 좋게 바라보았다가 나중에 실지의 좋지 못한 모습을 겪은 후 시험이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실상을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특히 청춘 남녀의 경우, 배우자를 고를 때에는 눈으로 보는 외모보다는 마음의 중심 즉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실상을 파악하기란 몇 년이 걸릴 수 있고, 어떤 때에는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청춘 남녀가 로맨틱한 뜨거운 사랑을 하거나 혹은 결혼해서 가족이라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 실상을 보는 눈이 가려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혼율이 생기는 것도 배우자의 실상을 몰랐기 때문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의 실상이라는 것은 그렇게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됩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실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
즉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인격의 사람이 있어도 그 인격을 자랑스럽게 하나님께 내세울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실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를 보십시오. 그들은 말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너도나도 다 친구요 동무다. 공산주의에는 조금 잘 산다고 허세를 부리며 인민을 착취하는 부자도 없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없이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욕심 없이 나누어 갖는 지상낙원이다."
그러나 실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 말은 다 동무라고 하지만 분명히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있는 절대 권력의 독재자 김정일 수령이 있고, 당 간부나 보위부 간부와 같은 지배 계급이 있고, 감시와 학대의 대상인 절대다수의 가난하고 굶주리고 불쌍한 인민들이 있습니다.

지난 주 캘거리 교회 연합 탈북 동포 간증 집회에서 한 탈북 동포가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북한의 실상을 바로 보세요. 북한에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선전용 교회가 있지만 실상 북한에는 교회다운 교회가 없어요. 북한 정권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절대로 원하고 있지 않답니다. 남한 사람 중에는 '에이, 북한이 설마 그렇게 까지 하겠느냐 ?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렇게까지 굶주려 죽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것은 실상을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의 실상은 너무나 비참해요. 지난 반세기 동안 하나님을 믿지 않고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으로 섬기고 살았으니 이렇게 나라가 비참해 진 것 같아요. 하루빨리 북한의 나쁜 정권이 물러가고 북한 사람들도 예수님 믿고 남한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요한 계시록 3장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합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즉 자신은 부자라고 하고 하지만 실상은 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중 서머나교회의 실상과 허상에 대해 나옵니다. '서머나'라는 뜻은 '으깨진 몰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2:9)
서머나 교회는 모진 핍박으로 인해 쓰디쓴 고통을 많이 겪었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믿음이 더욱 돈독해지고,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고, 겉으로 보기에는 미련한 것 같았지만 서머나 교회를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도 그것을 움키기만 하고, 선한 일 좋은 일에 쓰지 못하는 사람은 부자라고 하지만 실상은 가난한 사람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도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기보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며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은 실상 부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 지식을 많이 배웠어도 하나님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아는 척을 할지라도 실상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을 아무리 배우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유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결국 헛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요, 허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 자신의 인생이 마치는 그 날에는 많은 돈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또한 아무리 큰 세상 권세가 있어도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 권세도 결국 허상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온갖 세상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 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즉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는 것은 헛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우리보고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삽니까 ?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고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 괜히 허상을 바라보고 살지 말고 실상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를 향해 오히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보시오. 당신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상인 줄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허상인 줄 압니까 "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니라.'(고후4:18) 불신자의 눈에는 우리가 허상을 좇아가는 것 같고, 미련해 보이는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누가 허상을 좇아가고, 누가 똑똑하고, 누가 미련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실상인 줄 알고 돈을 좇아가고, 세상 명예나 권세가 자기를 영원히 기쁘게 만드는 실상인 줄 알고 좇아가 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것들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끄는 실상이 아님을 깨닫고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아-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허상을 바라보고 허상을 좇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짧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한 실상인 하나님과 진리를 좇아가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삶이 진실된 삶이요, 하늘에서 면류관을 받는 삶입니다.
비록 이러한 삶이 세상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미련하고 허상을 좇아가는 것 같지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