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하여

날짜: 
2005/12/04
설교: 

왕하6:1-7 실수를 통하여
하루는 나무꾼이 호숫가에서 나무를 하다가 그만 실수로 도끼를 호수에다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나무꾼은 호숫가에서 근심하고 울고 있는데 호수에서 한 도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아주 아름답게 은빛이 비추는 은도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도사님은 나무꾼에게 말을 합니다. “이 은도끼가 네 도끼냐?” 그러자 정직한 나무꾼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제 도끼는 볼품없는 쇠도끼입니다.”
그러자 도사님이 다시 호수로 들어가더니 이제는 휘황찬란한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나무꾼에게 묻습니다.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 그러자 정직한 나무꾼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제 도끼는 다 낡고 볼품없는 쇠도끼 입니다.” 그러자 도사님은 다시 호수로 들어가더니 은도끼와 쇠도끼 금도끼를 모두 가지고 나와서 나무꾼에게 말을 합니다. “허허허- 네가 그렇게 정직하니 나는 너에게 이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선물로 주노라.”
여러분, 한국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결국 정직한 사람에게는 실수까지도 전화위복이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엘리사 선지자와 그의 생도들이 거하는 처소가 너무 협소하자 요단으로 가서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한 생도가 물가에서 나무를 찍다가 그만 도끼날이 물에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끼는 이웃집에서 빌려온 아주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도끼를 물에 빠트린 생도는 너무나 당황하고 슬펐습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가 묻습니다. “그 도끼가 어디에 빠졌느냐?” 생도가 도끼가 빠진 곳을 가리키자 엘리사 선지자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도끼날이 물에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그 생도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하나님은 나의 실수, 나의 어려운 일, 나의 남감한 일도 감당해주시는 분이시구나!”
여러분, 혹시 실수로 여러분의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손해가 나거나,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너무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마십시오. 조금 전에 도사님처럼, 엘리사 선지자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그 실수조차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수로 인하여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미국의 수정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설교 하신 것 중에 이런 제목의 설교 말씀이 있었습니다. “얼굴에 난 칼자국(scars)을 별(stars)로 바꾸어라!” 즉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면서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겨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영광의 기쁨으로 바꾸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설교에는 한 화가에 관한 예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화가는 어릴 적에 집에서 놀다가 엄마가 최근에 구입한 깨끗하고 좋은 카펫에다가 그만 잘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를 쏟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의 잘못을 크게 질책하면서 혼을 냅니다. 하지만 이 화가의 엄마는 겁에 질려 있는 아이를 향해서 얼굴에 따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애야, 네가 지금 이 카펫 위에다가 아주 멋지게 페인트를 엎었으니 남은 페인트를 가지고 한번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어 보렴.”
그래서 이 아이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엄마와 함께 멋진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나중에 훌륭한 화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실수를 통하여 더 좋은 일을 만들어내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여러 가지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수는 실수로 끝나지 아니하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실수가 더 좋은 일로 변하는 디딤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종종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네가 오늘 실수를 했구나! 실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지!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내가 그 실수를 통하여 나의 뜻을 이루어가마!“ 할렐루야!
여러분, 만약 우리가 실수가 없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요. 그렇게 완전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란 구세주를 보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실수가 많은 연약한 사람인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실수로 인하여 아주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이미 다 아시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이지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무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어린 소녀 앞에서 그랬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실수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와 같은 실수를 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저지른 베드로를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실수를 저지른 베드로를 이해하고 그 실수를 통하여서 새롭게 일어서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물론 실수를 저지를 때에는 무척 당황이 됩니다. “아, 내가 왜 바보같이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가?” 하고 나를 한탄하게도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아주 완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를 때 그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스스로 더욱 우울해지고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실수가 다 나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인생의 실수를 이용하실 때에는 그 실수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한 과정이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부모는 완전한 자녀보다 실수가 많은 자녀를 더 가까이서 돌보기 원하고 애처롭게 여겨 그를 돌보아주기를 원합니다. 며칠 전 이웃분이 저희 집에다 한 살 정도 되는 아기를 봐달라고 맡기셨습니다. 그 어린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넘어져 테이블에다 머리를 찧어서 울기도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혹시 아기가 뾰족한 모서리에 크게 상처를 입거나 층계에서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칠까봐 눈을 떼지 않고 돌보아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실수가 많으면 하나님은 더욱 세밀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더구나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 실수로 자존심이 상하고 무척 당황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실수하여 마음이 상할 때 하나님의 위로는 더 크게 다가오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실수가 없는 완전한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실수투성이의 인생을 산 사람들, 예를 들면 몸을 파는 창녀, 다른 사람을 칼로 푹 찔러 죽인 강도,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들을 가까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와 죄악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예수님은 그들의 실수를 용서해주고 그들의 실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로 인하여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 실수가 절대로 파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를 가지고도 걸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며칠 전 저와 저희 집 사람이 교회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다름 아닌 주일 예배 때에 아기들과 함께 TV스크린으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을 위하여 계속 말썽을 부리는 유선을 무선으로 교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기계를 RCA Transmitter이라고 하는데 150불짜리를 사서 테스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를 하는 중 화면과 소리가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 사람이 안테나를 조정하다가 그만 연약한 송신 안테나가 똑 부러지고 말았습니다.(이 기계의 안테나를 만지시는 분들은 조심하십시오. 안테나가 두 개가 있는데 철사처럼 뾰족하게 나온 안테나는 송신 안테나로서 똑 바로 세워지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하게30도 각도로만 세워집니다. 조금만 무리하게 힘을 가하여 90도 각도로 똑바로 세우려고 하면 금방 부러집니다. 그리고 동그랗고 넙적한 안테나는 수신 안테나인데 이 안테나도 360도 회전이 안됩니다. 무리하게 힘을 가하여 돌리면 부러집니다. 이 수신 안테나는 부러지면 기계가 아주 못쓰게 됩니다.)
자 이렇게 안테나가 실수로 부러지자 저희 집 사람이 무척 당황해합니다. “아이, 어쩌나! 금방 산 것인데!” 결국 그 기계를 갖고 다시 그 가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기계를 테스트 하다가 안테나가 너무 약하여 부러졌다고 말하니 점원이 “No problem!" 하더니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고 합니다. 아- 참으로 안심이 되어서 ”혹시 이것 말고 다른 제품이 없느냐?”고 물으니 다른 제품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니까 조금 전의 것과 똑같이 파워가 2.4GHz 인데 세일 기간이라 그것은 50불이 더 싸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산 것은 반환하고 나중에 50불 싸게 산 것을 가지고 와서 다시 테스트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먼저 산 것으로 테스트하다가 화면과 소리가 좋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송신기와 수신기를 제가 모르고 바꾸어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의 실수와 저희 집 사람의 실수가 연합하여 더욱 싼 제품을 사게 되고 기술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수도 없이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그 실수가 우리에게는 파멸이 아니라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실수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실수를 해서 마음이 상했을 때에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도다.”(시34:18)
여러분,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성공을 목표로 하고 일을 진행시킵니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실수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육신의 일이나 영적인 일이 다 그렇습니다. 나의 연약함으로 실수할 때도 있고, 타의에 의하여 부득이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수하였을 때 낙심하거나 원망불평하거나 자포자기 하면 이중적인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이때에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하나님은 나의 실수조차 책임져 주신다."라는 희망을 갖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심 많아 실패한 도마에게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실수할 때, 그리고 그 실수로 말미암아 낙심하고 좌절감을 느낄 때 나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더욱 가까이서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실수로 인하여 낙심이 되고 마음이 상할 때 가까이 계신 주님을 만나는 유익하고 축복된 계기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실패 중의 실패입니다. 아니 구세주라는 사람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려서 “아 목마르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으니 그는 인간적으로 아주 큰 실패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지 않고 믿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너무도 큰 실패를 했기에 구세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 같으나 엄청난 성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부활을 이루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대속하시므로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병이 나음을 받았고, 그가 가난에 처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성공은 오히려 가장 큰 실패라고 하는 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고로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큰 성공으로 이끄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은 나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특히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실수의 소지가 많은 외국 땅에서 주님은 나와 아주 가깝게 있습니다. 더구나 내가 외국 땅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당황할 때에 주님은 이미 그 실수를 만회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두려워 마십시오. 쓸데없이 번민하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당신을 실수가운데에서도 지켜주시고 더욱 나은 행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고, 불행이 행복으로 변화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