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좌절 속에서

날짜: 
2015/09/20
말씀: 
마16:13-24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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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은 골리앗을 무찌른 용사,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노래 잘하고 악기 잘 다루는 시인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점, 잘난 점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게도 못난 점이 있었고, 또한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고난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애썼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자 다윗은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여인들이 나아와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삼상18:7)
그러자 사울왕이 질투를 느껴 그를 천부장으로 강등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의 수십만 군사를 지휘하는 명실 공히 이스라엘의 제 이 인자인 국방부 장관을 하루아침에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외지로 쫓겨나 1000명의 군사만 거느리는 사람으로 강등시켰으니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실패와 좌절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거 어디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에이, 나 천부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 버리겠다. 아니 내가 골리앗을 무찌르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해줬는데 크게 칭찬은 못해줄망정 그럴 수 있느냐? 김 빠져서 일 못하겠다. 잘 먹고 잘살아라.” 이렇게 말하고 사울왕을 떠나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낮아지고 수치와 모멸을 당해도 왕에게 따지거나, 뒤에서 불만을 터트리거나, 세력 규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지혜롭고 충성되게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사울은 다윗을 더욱 미워하고 급기야는 창을 들어 죽이려 덤비자 결국 그는 혈혈단신으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앞길을 알 수 없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블레셋 땅으로 도망하다가 그들이 자기를 알아보니 살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며, 고양이처럼 대문짝을 그적거리며 미친 체하는 신세가 됩니다. 세상에 다윗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비참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너무나 처량하고 불쌍하고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던 다윗, 그러나 그는 이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시편 56편에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같이 모여 나를 죽이려고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시고 내가 아뢰는 날에 나를 도우소서.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과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치 않게 하셨나이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다윗은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법궤를 운반하는 웃사가 죽게 되고 이 일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왕으로서 체면이 손상되어 백성들과 신하들 앞에 낮이 뜨거워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실패가 다가왔는가?” 그는 곰곰이 생각하고 깨달았습니다. “아하, 언약궤를 운반하는 방법이 틀렸구나! 하나님의 법궤는 레위 사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되는데 내가 레위 사람이 아닌 사람을 썼고, 또 소를 이용해 수레에다 운반을 했구나!”(대상15:13)
그는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찾게 되고 석 달 후에 기쁨가운데 이 일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실패합니다. 이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실패할 때 낙심, 좌절, 원망, 원한, 책임전가, 부정적이 되지 않고 다윗처럼 실패를 거울삼아 돌이키면 내일의 더 큰 발전과 소망이 다가오게 됩니다.
또한 본문에 베드로를 보세요.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큰 기적을 체험하고 심지어 바다 위를 걸은 믿음의 사람이요, 수제자요,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므로 예수님께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네게 천국열쇠를 주노라.”(마16:16-19) 그리고 예수님은 장차 자신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다고 예언하시자 베드로가 또 튀어나와 말합니다.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 일이 주께 일어나지 아니 하리이다.”
베드로는 이 말을 하므로 예수님이 또 자기를 칭찬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예수님이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심하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쇼크 받았습니다. 조금 전에는 예수님이 그렇게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더니 이제는 ‘사단아-’ 하시니 ”아니, 예수님이 스승이고 하나님 아들이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섭섭하게! 그래도 나는 예수님 위해서 한 말인데, 세상에 나를 사단이라니요? 주님 해도 너무합니다. 나는 잘해보려고 그랬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불평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졸지에 수제자가 사단이 되고, 천국이 지옥이 되고, 성공이 실패가 되고, 칭찬이 욕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목사가 열심히 일하는 여러분 보고 ‘사단아-’ 그러면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자기가 목사면 목사지 그럴 수 있어? 내가 누구를 위해 일을 했는데 수고하는 나에게 햄버거 하나는 못 사줄망정 사단이라고 매도해? 아무리 내가 말 한마디 잘못했기로 그럴 수가 있어? 이거 억울해 못살겠네! 내 인생 돌려줘!”
생각해 보세요? 열심히 일하는 성도님에게 목사를 비롯해 다른 분들이 사단이라고 하면 일할 맛나겠습니까? 나래도 시험이 들지 않겠어요? 참 예수님 이상하지 않아요? 베드로를 칭찬하면 끝까지 칭찬하지 왜 잘 나가다가 그러는 거예요? 그것도 중요한 시기에! 훌륭하고 지혜로운 예수님인 줄 알았더니 미련하고 이상한 예수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본문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왜 나를 매도하십니까?” 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과 같이 지내는 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심과 편견이 없으신 분이요, 하나님 뜻을 좇기 위해 인간을 사랑하시되 자기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나를 사단이라고 할 정도면 아마 내가 크게 잘못한 모양이다. 내가 돌이켜야지!” 이렇게 예수님과 베드로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자기보고 사단이라고 해도 나쁜 뜻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으나 베드로의 마음을 이해하셨기에 “베드로야, 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느냐? 수제자라는 네가 그럴 수 있느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으면 죽으리라고 해놓고 네가 무슨 수제자냐? 임명장 준 것 도로 내가 내놔!”라고 안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3번 부인해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능력과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함을 아시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갈대와 같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애야,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너의 마음을 안다. 낙심하지 말아라. 사람에겐 다 실패가 있단다. 낙심하지 말고 너와 같이 약한 사람들을 돌아보아라. 내가 너를 수제자로 세운 이유는 네가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란다. 비록 네가 못나고 부족해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나는 너를 이해한단다. 그러니 너는 내 양을 치고 내 양을 먹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베드로처럼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수많은 실패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탄식하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패를 극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성공 자는 실패를 거울삼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일어나느니라.”(잠24:16)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4:8-10)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로 믿음으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느니라.”(히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