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마치고 지켰으니

날짜: 
2010/11/09
설교: 

딤후4:6-8 싸우고 마치고 지켰으니
사도바울이 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형당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향하여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유언과 같은 글입니다.
본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관제란 제사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붓는 제사를 말합니다. 전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사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도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운 줄을 알았습니다. 그는 본문에 고백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자신이 떠날 기약이 가까움을 보면서 자기의 일생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씀 속에서 의미 있는 3가지 단어가 보이고 있습니다. 1. 싸우고 2. 마치고 3. 지켰으니 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 세 가지 단어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1. 싸우고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고나'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격투기 선수들이 혼신을 다하여 싸우는 모습을 그리는 말입니다. 로마 원형 경기장은 2000년 전에 세워진 운동장입니다. 그런데 5만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운동장 가운데서 사자와 사형수를 싸움을 시킵니다. 사형수는 사자밥이 되느냐 살아남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맹수와 싸워서 이기면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형수는 생명을 건 결사적인 싸움을 합니다. 5만 명의 군중들은 그런 잔인한 싸움을 보면서 웃고 떠들며 즐겼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지냈으니까 이런 경기를 보았거나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생각하며 그는 자기의 일생도 이렇게 싸워 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생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역경에 부딪혔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많이 했습니다. 보통 사형수들이 죽을 때에 맞는 39대의 매를 바울은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예수님보다 네 번이나 더 많이 맞았습니다. 한 번은 돌에 맞아 거의 죽어서 짐승들의 시체로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겠다고 하나님께 맹세를 하면서까지 바울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역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했습니다. 특히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큰 싸움입니다.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인생의 최종적인 성공과 실패는 결국 자기와의 싸움에 달려있습니다. 다른 싸움에서 아무리 큰 승리를 거두었어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면 결국 모든 것에서 지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큰 성공을 거둔 분들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므로 일순간에 그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므로 일순간 무너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칭기즈 칸이 제일 좋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몽골족의 조상이자 장군인 동유쿠트가 한 말입니다. 이 말에 감명을 받아 온 세계를 지배한 칭기즈 칸은 후손들에게 성을 쌓지 말라고 계속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후손들은 궁궐을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그곳에 금은보화를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미녀들을 부르고 술 파티를 벌이며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몽골족은 칭기즈 칸이 이루어놓은 대제국을 100년도 유지시키지 못하고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적과의 전쟁에서 아무리 큰 승리를 거두었어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는 자는 결국 패망하고 만나는 것은 엄연한 역사의 현실이요 성경이 가르쳐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와의 싸움도 결국 하나님이 힘을 주고 은혜를 줘야 이길 수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극한의 상황을 이겨나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고 지혜를 주고 은혜를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동물 중에 낙타가 있습니다. 낙타는 사막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낙타의 머리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눈썹과 눈두덩이 길고 두껍게 되어 있습니다. 허파를 보호하기 위하여 코에 예민한 근육이 있어 모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두꺼운 가죽과 털이 있어 낮의 태양과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합니다.
넓은 발굽은 뜨거운 모래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합니다. 낙타 등의 육봉은 지방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낙타 한 마리가 평균 45킬로그램의 지방을 육봉에 가지고 있어서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육봉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낙타의 소변은 농도를 높여 수분의 배출을 최대한 줄입니다.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을 되새김질합니다. 낙타 곁에 가보면 끄르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물을 되새김질하는 소리입니다.
사막의 밤낮의 일교차를 쉽게 견디게 하기 위하여 체온이 가변적입니다. 낮에는 41도로 올라가고 밤에는 34도로 내려옵니다. 물이 부족하면 주위의 조직으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아 체중의 25퍼센트까지 수분을 혈액에 빼앗기고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물도 음식도 항상 되새김질하기에 두 번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항상 내장 운동을 시켜서 건강하게 합니다.
낙타는 사막에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철저히 승리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환경을 이기고 자기를 이기는 동물이 낙타입니다. 누구나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하지만 내 힘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이겨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로 자기와의 싸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마치고
'마치고'라는 말은 목표가 분명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산 정상에 오르려는 이는 정상에 도착하면 "다 왔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온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목표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로서 최종 목표가 있었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심는 것입니다. 당시 온 세계를 지배한 나라가 로마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온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온 세계를 향하여 길을 닦았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복음이 그 길을 타고 온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의 생각은 그대로 맞았습니다. 로마 복음화는 온 세계 복음화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복음을 심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우리들에게는 마쳐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일을 시작만하고 마치지 못하면 보기가 참 안 좋습니다. 청소를 하다가, 혹은 화장실에서도 용무를 보다가 제대로 일을 마치지 못하면 기분이 꿀꿀합니다. 달리기 선수가 처음에 열심히 달리다가 그 경주를 다 마치지 못하면 등수에도 들지 못하고 맙니다. 그리고 탈락자라는 불명예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비록 꼴찌를 했어도 경주를 완주하는 자에게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주어집니다.
묻고 싶습니다.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다 마치고 주님으로부터 "수고했다."라는 칭찬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중도 탈락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때로는 힘들어서 앞으로 달려갈 길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기권하고 싶은 생각이 날 수 있습니다. 인생 그만 살고 싶어질 생각도 날 수 있습니다. 어디론지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마쳐야 합니다.
이제 2010년도가 두 달이 채 안 남았습니다. 달리기로 비교하면 결승선이 가까워 왔습니다. 최후의 젖 먹던 힘을 내야할 시기입니다. 후회 없이 2010년을 보내야 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욱 좋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남은 기간, 남은 사명, 남은 일들을 잘 마치시고 또 다시 주님과 함께 2011년 을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지켰으니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즉 오직 한 길을 걸어 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 하나 지키려고 지금까지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고생을 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요즈음에 나온 새로운 법칙 하나가 있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입니다. 무엇에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에 1만 시간 투자 원칙을 지키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3시간씩 투자 하면 10년 정도 그 일에 전념해야 비로소 일만 시간(정확히 10950시간)이 됩니다. 하루 10시간씩 투자하면 3년이면 일만 시간(역시 10950시간)이 됩니다.
일만 시간 원칙을 지킨 이들이 큰일을 해냈다는 것입니다. 2009년 1월 16일 허드슨강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승객 155명을 태운 US Air 비행기가 이륙 후 4분 만에 허드슨 강으로추락하였습니다. 추락하는 그 당황한 순간에도 침착하게 지상으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강으로 추락하는 것을 알렸습니다. 조종사는 비행기를 물위로 미끄러지듯이 마치 활주로처럼 달리게 하였습니다.
온 세계가 집중하였습니다. 한 명도 죽지 않고 구출되었습니다. 그 일을 해 낸 조종사는 1만 9천 시간을 비행한 '슬렌버거'였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어 해석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1만 시간 이하로 비행한 조종사였다면 155명을 다 죽였을 것이라는 것이 해설이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일만 시간을 지키고 앉아있으면 전문가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창립 13주년이 되었습니다. 고맙게도 10년 이상 교회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분들이 있습니다. 실력은 별로 없어도 어려울 때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켰다는 것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그런 분들에게 하나씩은 좋은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자리에서 1만 시간, 10년을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충성하면 좋은 것을 반드시 줍니다. 하물며 평생에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면 그에 따른 보답이 하늘에서 반드시 주어집니다.
결론입니다. 바울 사도는 일생을 돌아보며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게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면류관을 예비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면류관은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들의 인생도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