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이민 생활

날짜: 
2016/07/10
말씀: 
창12:1-9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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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곳에 이민이나 유학, 방문, 기타 어떤 목적으로 오셨든지 간에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습니까? 아니면 남이 가라고 해서, 혹은 내가 오고 싶어서 왔습니까? 도대체 여러분들이 이곳 외국 땅에 올 때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다 살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이민 생활은 그 출발이 하나님께로부터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에,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65세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오늘날 이민이나 유학을 가는 분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는 곳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래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성공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하나님이 이곳 캐나다에 가라고 할 때 이곳 캐나다에 대해 그리고 캘거리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 대한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민이나 유학을 오시는 분들이 여러 가지 질문들을 많이 하고, 먼저 이민이나 유학 온 분들의 경험담을 듣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귀중한 조언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자기가 이민 가야할 곳의 방향도 정확히 몰랐고, 이민 가는 곳의 정보를 세밀히 파악하지도 못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고, 머무르라 하면 머무르겠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민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이민 생활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출발이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나이 75세에, 그리고 아내의 나이 65세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문화와 언어와 음식이 다르고, 치안이 불안전한 외국 땅으로 이민 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곳 외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는 가끔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자장면을 비롯해 여러 가지 맛있는 한국 음식도 생각이 나고, 한국에 두고 온 부모님이나 형제 친구들도 생각이 납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다보면 “내가 이곳에 무엇 하려고 왔는가? 아-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도 한번쯤은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곳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가 외국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녀들의 교육 때문입니까? 아니면 한국에 가서 다시 직장을 잡고 사업하기가 힘이 들어서입니까? 혹은 한국의 타이트한 사회 구조로 말미암아 돌아가기 싫어서입니까?
혹은 돌아갈 수 없는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목적을 아직 이루지 못해서입니까? 만약 이곳 캐나다에 이민이나 유학 온 출발이 자신에게로부터 말미암았다면 이곳 외국에서 각종 어려움을 겪을 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도 자기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을 이곳에 보내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이국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주셨기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고 안 돌아가는 것도 고민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결정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이민을 가라고 해서 갔습니다. 그리고 이민 가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약속을 하셨는데 처음부터 복을 받기는커녕 기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 당신이 이민 가라고 해서 갔는데 웬 기근입니까? 앞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곳을 떠나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하고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브라함은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애급 땅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애급 땅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도 잘 드렸는데 애급에 내려가서는 그만 예배드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내 사라도 애급의 바로 왕에게 빼앗기는 큰 재앙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부부간에 큰 갈등도 생겼겠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은 이 큰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깨달았습니다. “아하, 환경이 어렵다고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면 나중에 더 고생하는구나!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되겠구나!”
아브라함은 구사일생으로 애급에서 나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벧엘에 이르러 또다시 하나님께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더욱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민 갈 때 분명히 친척을 떠나라고 지시하셨지만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당시 자식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일찍 아버지를 잃은 조카 롯은 불쌍하기도 하고 또 자식처럼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데리고 갔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은 아브라함의 장래를 더욱 꼬이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조카 롯과 아브라함의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한 땅에 동거할 수 없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우게 되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브라함은 또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하, 이래서 하나님이 이민 갈 때 친척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구나!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다 보니 이렇게 집안싸움이 나고 말았구나!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겠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민을 가라고 하실 때 친척인 조카 롯까지 떼어놓고 가라는 명령은 어쩌면 인간적으로 너무 냉정하고 비현실적인 것 같았고, 아브라함이 실천하기가 좀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생각했을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낮선 이국땅으로 이주할 때 한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가야 도움이 되지 떼어놓고 가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결국 이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카 롯이 아브라함에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짐이 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애초부터 하나님의 계획에는 아브라함의 이민은 허락하셨지만 조카 롯의 이민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민 계획에도 없는 조카 롯까지 이민을 데리고 갔으니 결국 일이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내가 세운 이민 계획보다, 내가 세운 유학 계획보다, 하나님이 세운 이민 계획, 하나님이 세운 유학 계획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똑똑하더라도 스스로 이민이나 유학 계획을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이 어떠한지 먼저 물어보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인간의 눈에 비추어 볼 때 비현실적인 것 같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깨닫게 됩니다. “아하, 하나님의 계획이 내 계획보다 훨씬 좋구나! 하나님이 나보다 한참 위에 있구나!”
저와 여러분들이 이렇게 깨닫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나아가면 우리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늘 마음속에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좋사오니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결정에 따르게 하옵소서.”
그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신의 나이 100세에, 그리고 아내의 나이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자그마치 25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긴 세월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자식을 주시려면 좀 일찍 주시지 100세가 되어서 주시는 것은 뭡니까?”라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이국땅에서 복을 주시려면 좀 빨리 주시지 왜 이렇게 더디게 주십니까? 이러다가 머리 다 희어지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에게 “주께서 나에게 씨를 주시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15:3)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하고, 믿음이 떨어져 여종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이란 아들도 낳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외국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때로는 하나님을 의심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지거나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결국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민 생활도 결국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 성공으로 종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 이국땅에서 믿음의 생활을 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이민간지 62년이 되던 해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국땅에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묻고 나서 38년을 더 산 후 175세의 나이에 아브라함도 이국땅에서 죽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이민 생활은 100년 만에 마치게 되었고, 그 아들 이삭이 이민 2세의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민 생활도, 타국생활도 언젠가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이 이국땅에 장사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이민 2세로서 믿음의 삶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기억들도 점차 잊히고 말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민 생활을 시작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이민 생활을 마치는 그 날까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이민 2세로서의 믿음의 삶을 이어가기까지,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땅에서 죽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날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했다. 이리 와서 좀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