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6-18 아- 그 사랑!
한 새신자가 성경 중에 마태복음을 읽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뭐, 성경이 이래! 이 책 이거 산부인과 의사가 쓴 일기책인가? 만날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에이, 지루해서 못 읽겠다." 그리고 또 한 새신자가 성경 중에 레위기를 읽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거 뭐, 성경이 이래! 이 책 이거 푸줏간 주인이 쓴 일기책인가? 왜 이렇게 짐승을 많이 죽이는 거야? 에이, 이 책도 못 읽겠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면 특히 레위기에 보면 웬 짐승이 그렇게 많이 죽습니까? 그래서 새신자가 레위기를 읽으면서 이런 오해의 소리를 합니다. "야- 하나님은 참 잔인하다. 하나님은 동물 학대자구나! 그리고 웬 피가 그렇게 많이 흐르는 거냐? 하나님은 피를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으이그- 징그럽다. 무시무시하다. 나는 이런 잔인하고 무서운 하나님 안 믿겠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를 아시는 분들은 레위기를 읽으면서 도리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식으로 은혜를 받느냐? 이런 식입니다. "아- 오늘도 또 짐승이 죽는구나! 애야- 너는 왜 그렇게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니? 그래, 너가 내 죄를 대신 담당하고, 내 대신 죽는 거구나. 애야- 미안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진리를 아시는 분들은 깨닫는 마음이 있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렇게 짐승이 죽는 것처럼 주님도 저를 대신하여 죽으셨군요. 주님이 죽으심으로 제가 살았군요. 주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수많은 짐승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해 죽는 모습을 봅니다. 이는 결국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짐승들도 그렇게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즉 우리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아 다른 피조물들도 함께 고생을 당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다른 피조물을 바라보면서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희들도 고생하는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짐승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짐승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 죄의 삯은 사망이구나!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음으로 죗값을 치러야 하는구나."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아주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인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 큰 죄인을 그냥 무죄로 풀어주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납니다. 즉 하나님이 죄에 따른 형벌을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또한 그 수많은 짐승들이 내 대신 죽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너를,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잖아요. 요즘도 뉴스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위해 내 하나 밖에 없는 자녀를 남을 대신하여 죽이지는 못합니다. 그게 자기 자녀에 대한 솔직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죄를 짓고 죽을 처지가 되자 하나님은 갈등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는 마땅히 죄인이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을 살려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누군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죄의 자손들이기에 누가 누구를 대신하여 죽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도,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에 누가 누구를 대신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똑같은 죄인이 똑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어봤자 효력이 없습니다.
즉 죄가 없는 사람이 내 대신 죽어야합니다. 짐승은 사람이 아니므로 사람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루고 대신 죽을 수 없습니다. 짐승들의 죽음은 단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짐승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사해진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필요도 없고, 예수님도 우리 대신 죽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또 내 대신 짐승을 죽이면 됩니다.
즉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담의 자손이 아닌 죄가 없는 여자의 후손, 즉 여성의 아기집을 빌어 죄 없는 사람이 와야 합니다. 즉 인간의 육정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어 출생한 죄 없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이 타락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자 하늘나라에서는 비상이 걸렸을 겁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로 말미암아 모두 죽게 되는 겁니다. 이때 하나님이 얼마나 다급하셨을까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십시오. 하루는 경찰에서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이유인 즉 내 자녀가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로 인해 사형을 당하여 내 자녀가 죽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이 되고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겁니다.
부모는 어찌하든지 죽을 처지에 있는 자기 자녀를 살려야 합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 다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몽땅 죽게 되자 하나님 나라에서는 비상회의가 열렸을 겁니다. 하나님이 회의를 주재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살릴 수 있겠는가?"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 죄 없는 사람이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천사는 죄는 없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제가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들을 대신하여 죽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너는 내 분신이요.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가 아니냐?" 하나님은 수없이 갈등했을 겁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성경은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6-18)
고로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으면 이제는 내가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잠시 죽는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납니다. 즉 썩어질 몸은 벗어버리고, 다시는 썩지 않을 몸, 다시는 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납니다. 부활입니다. 휴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날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죄의 결과인 영원한 사망, 즉 심판을 당하고 맙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인 사망을 피하고 심판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가 용서되며,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이 주어지며, 예수님을 통하여 참 평안과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8)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확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원수 같은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 큰 사랑, 이 큰 은혜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고로 이 큰 사랑을 받은 자, 그 사랑을 느끼는 자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이 외국 땅에서도 외롭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기에 나는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아- 나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너에게도, 그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 그들도 사랑해주세요. 나를 축복하신 주님 그들도 축복해주세요."
오늘도 우리는 그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너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날, 우리 모두는 사랑의 하나님 앞에 다 모여 다 같이 힘차게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