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여러분, 이 두 말 중에서 어떤 말을 더 좋아합니까? 첫째, “아는 것이 힘이다.” 둘째, “모르는 것이 약이다.” 첫 번째가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 두 번째가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 아마 젊은 분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더 좋아할 것 같고, 연세가 드신 분들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이 두 말은 서로 반대말입니다. 이 두 말을 합하면 이런 말이 만들어집니다.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고, 몰라야 할 것은 몰라야 한다.“ 만약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성경 호세아서에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반대로 몰라도 될 것을 알면 그 사람은 유식한 사람이 아니라 괜히 인생 낭비,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제가 대학교 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재옥 토플’이라는 책을 가지고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너무 심했습니다. 그 책에 강박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이 상당히 두꺼운 책이었는데 그 책의 몇 페이지에 어떤 희한한 단어가 있는지도 거의 아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단어는 영어를 쓰는 나라의 사람들도 거의가 모르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캐나다에 와서 23년간 살면서 그런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후 그런 단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에는 깨닫습니다. “아- 그때 내가 쓸데없는 공부를 많이 했구나!”
이에 대하여 솔로몬은 전도서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전7:7) 즉 많이 공부를 했는데 도리어 바보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솔로몬은 또 본문에 이런 말도 합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12:12)
즉 공부를 하는 것은 좋지만 공부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공부 때문에 귀중한 건강을 해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더욱이 공부한다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고 지옥을 간다면 그것 한참 잘못된 일입니다. 더 나아가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여러분, 솔로몬은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하나님을 떠난 그의 지혜와 지식은 그의 행복에 전혀 쓸모가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서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잠1:7, 잠9:10)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놓고 노년에는 자기가 여호와를 멀리하므로 가장 똑똑하나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요즘 무슨 공부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공부가 과연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는 공부인지 한번 체크해 보십시오. 더 나아가 하나님이 그것에 대하여 내가 어느 정도까지 공부를 하라고 하는지 한번 물어보십시오.
제가 최근 몇 달 동안 아내가 없어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리에 대하여 인터넷을 찾아서 간단한 요령들을 몇 개 터득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요리에 대하여 더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집 책장에 찾아보니까 요리책이 4권이 있습니다. ① 신세대 며느리 필수 요리책 ② 아내에게 주는 요리책 ③ 딸에게 주는 요리책 ④ 한국음식입니다.
이 책들이 제법 두꺼운데 며칠에 걸쳐서 살펴보았습니다. 아- 얼마나 요리의 세계가 무궁무진한지... 나중에는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집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 그 요리책들 봤나?” “저는 그 책 하나도 안 봤어요.” “그래? 근데 당신 요리 제법 잘 하잖아?”
즉 책을 보고 요리를 이론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시간을 두고 실천하면서 터득한 것입니다. 세상 말로 짬밥 수가 무시를 못하는 겁니다. 이런 긴 연수에 걸쳐서 배운 음식 맛을 제가 책을 보고 단기간에 터득을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요리에 대하여 욕심을 접었습니다. “그냥 다이어트를 위해서 내가 쉽게 만드는 야채죽이나 끊일 줄 알고, 또 에어프라이어나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사용법을 알고, 몇 가지 인스턴트식품을 만들어 먹을 줄 알면 되겠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목사가 갑자기 요리사 백종원이 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이 나이에....
그리고 요리의 세계도 너무 방대해서 그런 지식을 습득하려면 제가 성경을 읽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찬송과 기도를 하는 시간도 줄여야 합니다. 목사가 그럴 수는 없잖아요. 사람마다 다 자기 전공이 있고 부전공도 있는데... 목사인 저에게 요리가 전공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요리가 부전공이 될 수도 없잖아요. 목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즉 사람마다 공부에도 자기의 경계가 있습니다. 그 경계를 넘어서 공부하는 것은 자기 욕심입니다. 탐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공부, 즉 지혜와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모르고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똑똑한 것 같은데 바보가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창조론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이 세상은 저절로 진화했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하여 일생동안 연구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괜히 인생 낭비,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하고 있구나! 연구 방향이 잘못됐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성경을 모르면 아무리 박사라도 바보가 되고 맙니다. 물론 과학은 중요하지만 과학이 성경의 진리를 앞서지 못합니다. 동정녀 탄생을 보십시오. 50년 전에만 해도 동정녀 탄생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처녀가 애를 낳느냐?”는 말이 오히려 과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의학과 과학이 발달이 되니까 처녀도 애를 낳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유리’라는 연예인이 결혼도 하지 않고, 신랑도 없는 처녀인데 애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얼마든지 처녀가 애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의학이고 과학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들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다니엘서에 보면 말세에는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이제는 정보가 너무나 많아서 그 정보들을 다 습득을 하려다간 인생의 시간이 한참 모자랍니다. 잘못하다간 정보의 홍수 속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영화 좋아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영화 한 편 보려면 마음먹고 스케줄 잡아서 티켓 끊고 영화관 가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영화가 홍수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너무나도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영화에 잘못 빠지면 역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성도가 성경은 한 번 제대로 못보고 영화만 많이 보면 하나님께 좀 죄송하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보면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제가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아무래도 젊었을 때보다 건강에 대하여 좀더 많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건강을 잃다가는 자칫 가족의 짐이 되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목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챙겨먹는 약은 아침 식전에 비타민 B, 점심 후 비타민 D, 저녁 후 마그네슘, 잠자기 전에 오메가 3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유독 건강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까 이런 저런 정보가 동영상으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지식들이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물론 상식적이고 중요한 정보들은 알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보들에 너무 깊이 빠지면 역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될 수 있습니다.
즉 꼭 알아야 할 것에 대하여만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나에게 보라고 하는 것만 봐야 하고, 알라고 하는 지식만 습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은 성도가 몰라도 된다.”고 하는데 굳이 그런 것까지 알려고 하면, 예를 들면 무슨 드라마 줄거리가 어떻고, 그 결론이 어떻고...
아- 그런 것은 몰라도 됩니다. 그것 모른다고 하나님이 “애야, 너 참 무식하구나!”라고 핀잔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 모른다고 천국에서 성도들이 같이 대화하는데 무식하다고 왕따 당하지 않습니다. 이제 2020년이 가고 2021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고 말씀합니다.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연수가, 시간이 자꾸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은 더욱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알아야 할 것에 대한 자기 절제,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됩니다. 보람 있게 보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 보통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죽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인간의 죄로부터 왔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아파서 병들어서 죽는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 것이기에 그리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한 번만 죽는 사람이 있고, 두 번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해 심판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솔로몬은 최종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4)
학생이 시험을 치고 난 후 채점을 매깁니다. 60점 이하 낙제점을 받는 학생도 있고 80점, 90점, 100점을 받는 학생도 있습니다. 좋은 점수를 받는 학생은 명예가 따르고 장래가 촉망됩니다. 우리들의 인생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선과 악의 채점을 합니다.
그때 우리의 점수가 부끄러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생이 절제를 하듯이 우리들도 절제를 해야 합니다.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될 것에 대하여 절제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안다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아는 것을 바르게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존귀의 날이 되도록, 좋은 점수를 받도록 2021년 새해에 각자 최선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