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한국과 여기 캐나다 문화 중에 다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결혼식 문화입니다. 물론 캐나다 결혼식 문화가 한국과 달라도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고 자신이 익숙한 대로 한국식으로 결혼식을 치러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결혼식을 주례할 수 있는 ‘메리지 라이선스(marriage license : 결혼식 주례 자격증)’가 있는 분에게 주례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결혼식 주례를 할 수 있는 ‘메리지 라이선스‘는 어떻게 획득할까요? 일단 앨버타 주정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고, 그에 따라 앨버타 주정부가 서류심사 후에 라이선스를 발급합니다.
그리고 매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주례자에 대한 업데이트를 요구합니다. 여기 한인 교회 목사님들의 경우도 메리지 라이선스를 받으려고 하는데, 이게 개교회 목사님 혼자서 하기에는 좀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목사님들이 캐나다 교단의 멤버에 속해서 그 교단에서 단체로 발급을 받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제가 여기서 라이선스를 받은 교단이 캐나다 ACOP(Apostolic Church of Pentecost) 교단입니다. '번역하면 ‘오순절 사도 교회‘입니다. 이 교단에서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씩 회원들에게 교단의 소식을 알리는 이메일이 옵니다. 두 달 전쯤에는 이런 이메일이 왔습니다.(한번 띠워보실래요.)
“Good Afternoon! ACOP Family, We're so thankful to report that Jylisa Knull-daughter of Pastor Brian & Linda Knull-has been found and is in good health! Thanks for your faithful prayers, care and concern- let's continue to pray for this beautiful family as they reconnect and love each other."
어때요? 캐나다 오래 사신 분들은 이 정도 영어는 다 이해가 되시겠지요? 그러나 아직도 영어가 스트레스가 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번역해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ACOP 가족 여러분, 브라이언 널 목사님과 린다 널 부부의 딸인 질리사 널 양이 드디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건강한 상태입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기도와 보살핌과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가족이 다시 연결이 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주세요.”
여러분, 사람들마다 개인의 사생활(privacy)이 있고, 또 가족들마다 남에게 알려지기 싫어하는 집안의 사생활도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여기 캐나다 문화의 큰 차이점은 한국 사람들은 누구를 처음 만났을 때 이것저것을 알기 위해 꼬치꼬치 질문을 잘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고향은 어디냐? 결혼은 했느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자녀가 몇이냐? 직업은 뭐냐? 직책은 뭐냐?
그런데 여기 캐나다에서는 그런 질문을 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에 상대방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간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사생활을 침해를 할 소지가 있고, 무례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ACOP 교단에서 이런 이메일을 받고 나서 매우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최근에 발견되고 건강한 상태에 있는 Jylisa Knull이란 딸이 몇 살이야? 이 아이가 가출했다가 최근에 발견된 건가? 아니면 실종됐다가 발견된 건가? 그리고 이들 가족이 다시 재회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달라고 하는데... 이건 또 뭐야? 아직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가?”
뭐- 궁금한 것이 많이 있지만 혹시 개인이나 가족의 사생활 침해가 될 소지가 있기에 제가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추측을 하고 기도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 이메일을 삭제하지 않고 계속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이 이메일을 보는 순간 “아- 이거 나중에 설교 예화로 쓰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 이메일과 관련된 설교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된 설교 자료는 틈틈이 조금씩 모아놓았습니다. 설교 한 편을 작성하기에 충분한 양의 자료입니다. 그러나 막상 설교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영감님이 안 오는 겁니다.
영감이 안 오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게 참으로 좋은 설교 내용이기는 한데 너무나 뻔한 설교라는 겁니다. 아- 여러분, 그러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좋은 주제를 바탕으로 한 설교는 이미 많은 목사님들이 했습니다. 그것도 수천 년 전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뻔한 설교를 제가 다시 하려고 하니까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요즘 가능한 남이 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와 같은 너무 뻔한 내용의 설교는 영감이 쉽게 안 왔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얼마 전 영감이 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급박하게 영감이 왔습니다. 다름 아닌 저의 사랑하는 자녀가 갑자기 집을 나간 겁니다. 보세요. 오늘도 교회에 못 왔지요? 집 나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목사님인 저에게는 많은 자녀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저에게 돌보라고 맡겨주신 성도님들 한 분 한분이 저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을 나간 이 자녀는 제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뭐- 매주일 교회에 잘 나옵니다. 신앙적으로 매우 성실합니다. 최근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자녀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자녀를 키우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미성년자인 자녀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더구나 아들도 아니고 딸이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여기는 캐나다 외국 땅인데... “아- 뭐야 이거? 너 무슨 일 났니? 도대체 왜 그래? 말 좀 해봐라. 혹시 엄마나 아빠가 너한테 뭐 못해 준 것 있니?”
“아니요.” “그러면 왜 그러는데?” “아- 그냥이요.” “뭐가 그냥이니? 너 뭔 일이 있었구나. 이리 와봐라. 같이 이야기 좀 하자.” 그러나 아이가 한 마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음 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는 너무나 염려가 되서 아이에게 계속 전화 연락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마 전화 차단을 한 것 같습니다. “아- 이 녀석! 도대체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고 있는 거야?” 엄마 아빠는 가출한 자녀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을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애타는 심정으로 “애야, 돌아오라. 빨리 돌아오라.“라고 외치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 자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찬송가 527장)
저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 친구와 함께 가출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도 일주일 정도 무단결석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학교에 가기가 힘든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의 소지품 중에 값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털었습니다. 아주 크게 도둑질을 했습니다. 물론 친구 녀석이 털었고, 저는 밖에서 망을 보았습니다. 그 녀석이 주범이고, 저는 공범입니다.
다행히 그 사실을 안 체육 선생님이 저희들의 죄를 학교 당국에 알리지 않고 모두 숨겨주었습니다. 만약 그 사실을 학교 당국에 알리면 아마 저와 그 친구는 퇴학을 당했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체육 선생님이 저의 집에 연락을 해서 어머니를 학교에 오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에게 최근에 일어났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일단 아들 대신 깊이 사과를 하고, 그 친구와 제가 도둑질한 물건들에 대해 모두 배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비밀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일주일 후에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주일 후에 제가 학교에 나타나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묻습니다. “야- 원효야! 너 왜 일주일간 학교에 못 왔니?”
“응- 그럴 사정이 있었어.” 아이고- 제가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그때 만약 그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더라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가 일주일 만에 돈이 떨어져 터덜터덜 집에 들어오자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배고프지?” 하며 이미 아들이 오면 주려고 했던 좋은 음식을 급히 차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너 들어왔니?” 하면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자 어머님이 저에게 말합니다. “학교 일은 잘 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일을 모르니까 너는 그냥 학교에 가면 된다. 누가 학교에 왜 일주일 동안 못 왔느냐고 물으면 집안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면 된다.” 아- 여러분, 가끔 TV에 보면 옛날 학창 시절의 그 잊지 못할 선생님을 찾는 프로가 나오는데, 저도 옛날의 그 체육 선생님, 저의 죄를 모두 숨겨주시고, 제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그 일을 처리해주신 그 선생님을 찾아서 엎드려 큰 절을 하고, 크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외국 영화가 생각납니다. 이 영화 제목이 뭔지 계속 알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말해볼 테니 여러분들 중에 혹시 이 영화 제목을 아시면 저에게 나중에 좀 알려주십시오.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와 살던 20살 정도 된 딸이 지루한 시골 생활이 싫어졌습니다.
그녀는 계속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간단한 메모를 어머니에게 써놓고 가출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메모를 보며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놀랬습니다. 자신의 예쁜 딸이 돈도 없이, 머무를 숙소도 없이, 아는 사람도 없는 그곳 대도시에 홀로 가면 어떻게 될 것을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부랴부랴 도시로 딸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넓고 큰 도시의 어디에서 딸을 찾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어머니는 일단 유흥업소 주위에 전단지를 만들어 곳곳마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단지가 아주 특이합니다. 보통의 경우 가출한 자녀를 찾는 전단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단 딸의 사진을 아주 크게 뽑아서 잘 보이게 한 다음 “순자야, 돌아오라. 니가 원하는 최신 스마트 폰 사놓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혹은 딸의 큰 사진 옆에 “이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김순자, 나이 20살(2004년 생), 신체특징 : 쌍까풀 있음, 왼쪽 입 주위에 조그만 점이 있음.”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그 전단지에 딸의 사진이 아닌 자신의 사진을 크게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I miss you!.(보고 싶다)” 여러분, 이 어머니가 왜 딸의 사진이 아닌 자신의 사진을 그 전단지에 붙였을까요? 다름 아닌 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 그러지 않겠어요? 만약 그 딸이 어디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데 만약 그 회사 사람들 중에 누가 그 전단지의 사진을 보면 “어머, 이 사진 최근에 우리 회사에 들어온 김순자 아니야? 아- 애 알고 보니 집에서 가출한 불량소녀구나.” 하며 그 회사에서도 소문이 안 좋게 날까봐 거기까지 어머니가 세밀히 신경을 쓴 겁니다.
결국 그 딸은 어머니의 예상대로 유흥업소에서 밤중 늦게까지 일하다가 자신의 피곤한 몸을 벽에다 기댑니다. 그리고 문득 벽에 붙어 있는 낯익은 사진을 보게 됩니다. 아- 너무나도 보고 싶던 자신의 어머니입니다. 그 밑에 글이 적혀 있습니다. “I miss you.(보고 싶다)”
이 딸은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합니다. 딸도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딸은 그 시로 보따리를 싸서 어머니가 있는 시골 마을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게 됩니다. 이상, 제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입니다.(이 영화 제목 아시는 분? 한번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 이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바로 성경의 이야기이고,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그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종종 집나간 자녀들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나간 자녀를 그리워합니다. 하루 빨리 집나간 자녀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애타게 외치고 있습니다. “애야, 어서 돌아오라.” 여러분, 세상에는 각자 떨어져 살아야 할 사람이 있고, 같이 한 지붕 밑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스스로 독립해서 살 수 없는 미성년자 자녀들은 그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의 마음이 심히 염려스럽고 안 좋습니다. 그리고 부부의 경우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살다 보면 돌아가는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희한하게 일이 꼬일 때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호세아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결혼하라고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붙여준 여자가 하필 바람끼가 아주 많은 여자였습니다. 뭐- 그래도 하나님이 붙여준 여자니까 일단 하나님을 믿고 그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드디어 이 여자의 바람끼가 발동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들 낳고, 딸 낳고, 또 아들 낳고, 2남 1여를 낳은 유부여가 바람끼가 발동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자기가 낳은 아들들과 딸도 버리고, 그 음부를 좇아갔습니다. 마구마구 행음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음부에게조차 버림을 당하고, 급기야 큰 빚을 지고, 마침내 창녀와 같은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남편과 같이 살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큰 빚을 지고 노예로 팔린 상태라 스스로 남편과 애들에게 돌아갈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 모든 사정을 아시고 남편 호세아에게 말합니다. “호세아야,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고, 은 열다섯 개를 가지고 다시 그녀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라.”(호3:1-2)
여러분, 이 이야기는 사실이면서도 비유입니다. 어떤 비유일까요? 남편인 하나님을 버리고 바람난 여인이 된 이스라엘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자격이 안 되는 나를 너를 아내 삼아주시고 많이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인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살다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후회가 많이 됩니다.
다시 남편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괜찮다. 내가 일처리를 미리 다 해놨으니 너는 그냥 나에게 돌아오면 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호14:1)
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신실한 신자처럼 보이지만 마치 속빈 강정처럼 허깨비 신자일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교회의 마당만 밟을 뿐, 하나님과 만남이 전혀 없고, 하나님과 영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에게 너에게 말씀합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아6:13)
기도 : 하나님,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니 감사하고, 너무 황송합니다. 하나님, 이제 돌아왔으니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아직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게 하시옵소서. “애야, 보고 싶다. 어서 돌아오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