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자랑하노라

날짜: 
2007/06/03
설교: 

고후12:1-10 약점을 자랑하노라
옛날 우화 중에 다섯 손가락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이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첫째 손가락이 “얘들아, 내가 엄지니까 최고야.”라고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둘째 손가락이 이에 질세라 ”무슨 말이야, 무언가를 가리킬 때는 내가 제일 많이 사용된다고.“하며 자랑을 합니다. 셋째 손가락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손가락들을 쳐다보며 ”너희들 웃기는 구나? 한번 키를 재보자. 누가 제일 크니? 우리 중에 나보다 큰 손가락이 어디 있니? 내가 제일 크다.”라고 하며 으스대며 자랑을 했습니다.
넷째 손가락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너희들 말을 내가 다 인정한다. 그러나 약혼이나 결혼 같은 귀중한 사랑을 서약할 때 내 손가락이 사용되는 거 알지?”라고 하며 잘난 체했습니다. 손가락들은 모두 다 자기 자랑을 한 가지씩 내놓았지만, 마지막 남은 다섯째 손가락은 내놓을 자랑거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손가락이 당당히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나 없으면 병신이다.”
여러분, 현대를 ‘자기 PR(Public Relations)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기를 홍보하고 자기를 선전하고 자기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자랑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자기의 학식을 자랑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힘을 자랑합니다. 물론 복잡한 현대에서 개인이나 기업이나 나라나 한결같이 ‘자기 PR’은 중요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소비자나, 사람들에게 자기를 기억하게 하는 ‘자기 PR’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기 PR’의 특징은 대부분 자기의 특기나 취미, 그리고 자기가 이루어놓은 업적, 등과 같은 장점을 내용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단점을 PR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만약 자기의 단점이나 부족함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자기의 핸디캡이 아닌 특기를 자랑하며 자기 PR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활동하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반상식을 뛰어넘어 장점이 아닌 단점을, 자기의 특기가 아닌 핸디캡을 자랑했습니다. 원래 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출생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만큼 유대전통을 어릴 때부터 지켰던 사람입니다. 혈통으로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을 배출한 베냐민지파 출신입니다. 또 율법을 철저히 배우고 그 율법대로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또 당시에 어디에 가서도 당당할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가문과 학벌과 신분 등의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자랑거리가 바뀌었습니다. 자기의 장점은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히려 일반상식과 반대로 자기의 약점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0절을 보면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또 본문 5절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그리고 9절에서 또 다시 말합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바울은 자신의 약점들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마음속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놓고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약점들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약한 것들’은 본문 7절에 의하면 ‘육체의 가시’를 의미합니다. '가시'라는 헬라어는 장미송이에 붙어있는 가시 정도가 아니라 말뚝이나 혹은, 뾰족한 창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육체에 말뚝이 박혀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손끝에 조그마한 가시 하나가 들어가도 견딜 수가 없는데, 살 속에 말뚝이 박혀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이 육체의 가시가 어떤 것인지를 성경에서 정확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두통이나 간질이나 말라리아 또는 안질 등의 질병 중에 하나라고 추측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통당하던 질병이 무슨 질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탄의 사자"라고 할 만큼 큰 고통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의 입장에서 보면 큰 핸디캡입니다.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그 자신 스스로도 실망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서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장점만을 자랑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놓고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오히려 자랑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에게 자랑할만한 장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상식과 전혀 맞지 않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랑했을까요? 왜 사도 바울은 장점이 아닌 단점을 자랑했을까요?
1. 약점은 기도하게 한다.
육체에 가시가 있었던 바울은 그 약점 앞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8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약점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만듭니다. 만약 기도할 수 있는 약점이라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반대로 풍요와 번영이 나에게서 기도를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저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이 주는 유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당한 고난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한다면 그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유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약점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한다면, 그 약점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렇게 싫어하는 약점과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기도합니까? 잘 나갈 때 입니까? 고난당할 때 입니까? 고난당할 때입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 비벼댈 언덕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살 소망이 끊어지고 그 어디에서도 문제의 해답을 찾지 못할 때는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과 9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이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가시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어떠한 약점이 지금 여러분들 가정에 있습니까?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연약함을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싸인 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곤고한 때에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형통한 때에도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형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약점은 겸손하게 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바울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만큼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 이후로 가장 큰 은혜를 체험했고 또 큰일도 했던 사람입니다. 2절부터 4절까지 다같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여러분, 그는 14년 전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주님 안에서 천사의 인도로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체험이었는지,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낙원에 이끌려 가서 하나님 나라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에 따라, 성경을 쓴 것이 바로 바울 서신들입니다. 또한 그에게 있는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 보면 바울이 직접 안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지고 가서 병자 위에 얹기만 해도 병자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 정도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의 능력으로 이러한 일을 일으킨다고 하며 자기 자랑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에 까지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교만에 이르면 어떻게 됩니까?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그로 인하여 사람이 교만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끝이 안좋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교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에게 가시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가시 때문에 바울은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 가시로 인하여 겸손한 종이 되어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겸손하게 살아가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 은혜를 주시고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물리치십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이솝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뿔이 잘 생긴 숫사슴 한 마리가 연못으로 내려와 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슴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뿔을 보고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피골이 상접한 가냘픈 네 다리를 보고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늦은 오후, 들에서 풀을 뜯어먹던 사슴은 무성한 숲에서 자신을 향해 사자 한 마리가 살금살금 접근해 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슴은 날렵하고 빠른 다리를 이용하여 사자를 여유 있게 피해서 안전한 곳까지 도망을 쳤습니다.
하지만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뿔이 그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뒤쫓아 오던 사자는 무시무시한 발톱과 이빨로 나뭇가지에 뿔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사슴을 덮쳤습니다. 결국 사자의 밥이 된 사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럴 수가? 내가 부끄러워한 이 다리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오히려 내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내 뿔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구나!”
이처럼 사람은 고통 때문에 넘어지기보다, 너무 교만해서 넘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에게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그것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은 항상 교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에 여러분들에게 약점이 있습니까? 겸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장점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면, 우리의 약점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설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연약함이 있습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인간관계의 문제입니까? 물질의 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괜히 우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약점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약함은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가 됩니다. 경마장의 주로를 힘차게 달리는 말의 입에는 자갈이 물려져 있고, 그 자갈은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은 아무리 힘 있게 달리다가도 기수가 줄을 힘껏 잡아당기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자갈이 말의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약점을 주셨습니다. 그 약점을 통해서 우리를 제어하십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그 약점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하십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약점이 있다면, 교만하여 제멋대로 날 뛰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제어장치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으십니까?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약점과 가시들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드는 은혜의 장치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에, 겸손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결국에는 복되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3. 약점은 능력을 경험하게 한다.
오늘 본문 9-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여러분,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수많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약할 때에 강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약점을 기뻐하고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 속에 하나님이 은혜가 있습니다. 골이 깊으면 길을수록 산이 큰 것처럼,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속에 담긴 축복도 큽니다.
여러분들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육체적인 장애와 질병이 여러분들의 약점입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의 가시입니까? 제대로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경제력 없는 남편이 여러분들의 가시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썽을 일으켜서 부모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 자녀가 여러분들의 가시라고 생각하십니까? 입만 열었다 하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가슴에 못질하는 이웃이 여러분들의 가시입니까?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육체적인 질병이 여러분들의 가시입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의 약점이며 가시입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가시보다도, 가시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약점이 문제가 아니라, 약점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고난가운데서도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고난 속에서, 어떤 사람은 좌절하여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그 고난을 디딤돌로 삼아서 더 성장하고 더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들 가정에서 사용하는 숯과, 귀금속중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가 똑같이 탄소 ‘C'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탄소 원소에서 하나는 아름다움의 최고의 상징인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보잘 것 없는 검은 숯 덩어리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똑같은 것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다이아몬드로 만드느냐, 숯으로 만드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벽난로에 던져지는 시꺼먼 숯덩이 같은 인생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같이 번쩍번쩍 빛나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여러분에게 있는 고통과 고난과 약점을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가시는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저주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약점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부끄러운 것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고난과 가시와 약점 앞에서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는 약함 때문에 고민하기보다, 바울처럼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약함 중에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고난과 약점을 장애물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그 고난과 약점을, 빛나는 인생을 살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약점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강점으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