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날짜: 
2005/06/13
설교: 

고전10:23-24 양보
한 노인이 죽으면서 세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남긴 말 17마리를 가지고 큰아들은 1/2을 갖고, 둘째는 1/3을, 막내는 1/9를 가져라." 3형제는 눈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말 17마리를 놓고 계산을 했습니다. 큰아들이 17의 1/2이면 8.5마리이니 9마리를 가지겠다고 하자 두 동생은 욕심이 지나치다고 반대합니다.
둘째가 17의 1/3이면 5.5마리가 넘으니 6마리를 가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맏형과 막내가 반대합니다. 막내는 17의 1/9이면 1.9마리이니 2마리를 가지겠다고 하니 두 형은 계산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3형제가 유산의 분배 계산방식을 놓고 다투고 있을 때 어떤 전도자가 그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타고 온 말을 그 형제들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3형제는 전도자가 준 말 한 마리를 더하여 18마리를 가지고 쉽게 계산하여 각각 소원대로 9마리, 6마리, 2마리씩 나누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처음 요구대로 나누어 가졌어도 1마리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제야 깨달은 3형제는 부끄러워하며 그 말 한 마리를 다시 전도자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여러분, 물건이라면 정확히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말과 같이 생명이 있는 것은 반씩 나누어가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자녀를 둘로 나누어 반반씩 가지라 할 때 모정이 있는 친엄마는 자신의 친자식을 양보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녀를 차마 잔인한 수학적 분배 법칙으로 죽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양보한 진짜 어머니는 자녀를 다시 찾았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움키려는 욕심만으로 결코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양보하고 손해보고 희생하게 될 때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양보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양보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손해의 지름길이요 어리석은 인생을 사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양보의 미덕과 축복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열 사람이 배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배의 수용 인원은 7명이었습니다. 7명인데 정원을 무시하고 10명이 탄 것입니다. 배가 한참 항해를 계속하다가 물이 스며들어 오고 이 배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세 명을 이 배에서 내려놓지 않으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음의 운명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누가 양보를 해 줄 것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맨 처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대영제국의 국민입니다. 제가 신사도를 발휘해서 여러분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다이빙을 해서 물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 다음에 또 누가 뛰어들 것인가를 눈치를 보는데 두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아메리카에서 왔습니다. 세계 최대 강국의 제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물 속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 나서 갑자기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콱 쥐어박더니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편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 캐나다의 문화가 부럽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한국보다 양보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과 노약자들에게 양보를 합니다. 그리고 운전을 할 때도 양보를 굉장히 잘합니다. 그래서 스톱 사인 밑에 4way니 3way니 하는 교통법규가 지켜지는 나라입니다. 만약 양보 정신이 없다면 이런 교통법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양보를 하지 않아 좋지 않은 결과를 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의원이었을 때 한번은 퇴근시간에 전차를 탔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올라왔으나 아무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자신의 짐을 전차 맨 뒷자리까지 끌고가서 복도에 서있었는데 전차가 흔들려서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나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서있던 자리 앞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할머니를 보고는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나는 대신 읽고 있던 신문을 더 바싹 얼굴에 대고 못 본 척했습니다. 매킨리는 일어나서 그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후에 매킨리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마침 대사 후보 명단이 올라왔는데 검토해보니 옛날 전차 안에서 신문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그 사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양보를 하지 않는 무례한 작은 행동 때문에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조정사와 학생, 전도자, 정치가를 태운 경비행기가 갑자기 기관 고장을 일으켜 추락하는 돌발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조종사는 승객이 있는 곳으로 와서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낙하산이 세 개뿐입니다. 나는 이 사고를 보고해야겠기에 낙하산 배낭 하나를 가져야만 합니다."하고 뛰어내렸습니다.
그러자 정치가가 나서서 "나도 하나 가져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를 위하여 크게 공헌해야 하니까요"하며 배낭을 잡고 뛰어내렸습니다. 전도자는 학생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얘야, 나는 긴 생애를 살아왔다. 너의 생애는 앞날이 창창하게 남았다. 마지막 낙하산을 가져라. 행운을 빈다." 그러자 학생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 낙하산이 두 개 있습니다. 두 번째 뛰어내린 분은 제 짐 보따리를 가져갔습니다."
반면 양보를 하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무더운 벌판에서 적에게 포위된 영국군 1개 소대 30명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적의 포위를 도저히 빠져나갈 길은 없고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무더위와 갈증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덕이는 이들에겐 소대장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통 한 개에 담긴 적은 양의 물이 전부였습니다. 그 수통의 물이래 봤자 다섯 명도 제대로 먹지 못할 양이었습니다.
소대장은 비장한 마음으로 수통을 열어 병사들에게 내주었습니다. 소대원들은 서로 돌려가며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수통의 물은 희한하게도 모든 소대원 30명이 다 마시고도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다음에 마실 전우를 생각해서 물을 조금씩만 마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위해 양보하는 전우애로 뭉쳐진 이들은 결국 끝까지 견디어 지원군이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빙점’이란 책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책을 쓴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일본의 유명한 여류작가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 책을 쓰기 전,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그녀의 가정은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도움을 얻고 손님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분주히 일하는 아내를 안쓰럽게 여겨 “여보,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 하고 염려를 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그녀는 아예 자신의 가게에 어떤 물건들은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혹 손님이 그 물건을 찾으면 다른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녀는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펜을 들어 글을 쓴 것이 ‘빙점’이라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그녀가 이웃을 위하여 양보를 하자 그녀에게 이런 방법으로 보상해주셨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여러분,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의 목자들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초장을 놓고 서로 다투는 현실을 염려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다툼을 해결하는 길은 자기가 양보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조카 롯을 불러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그러니 서로 다투지 말자.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내가 왼쪽을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삼촌이었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어른이면서도 어린 사람에게 양보하며 화해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더 좋은 것을 양보했습니다. 롯이 택한 지경은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했고 기름진 애급 땅 같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좋은 것과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에게 양보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며 보이는 땅을 다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양보의 마음이 아브라함을 복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양보하는 사람을 오늘날도 복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양보하기 보다는 각기 개성과 가치관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대립과 마찰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히기가 싶습니다. 고로 양보가 없는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됩니다. 양보가 없다면 하늘나라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양보가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없게 되고, 교인 간에 화목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양보는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두고두고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양보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이루는 귀한 도구입니다. 양보하는 사람은 희생하는 사람이요, 곧 겸손의 사람입니다. 겸손한 자의 양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화평을 가져다줍니다.
마지막으로 예화 하나를 소개하며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두 마리의 산양이 냇가의 좁고 작은 통나무 다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뒷걸음치지 않는 고집쟁이들이었습니다. 좁은 다리 위라 그들은 서로 스쳐 지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 다리 밑으로 떨어지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한편의 산양이 다른 산양에게 양보를 하며 자신의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쪽의 산양이 그 위를 타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두 산양은 안전하게 자기 목적지에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두 산양이 양보하지 않고 서로 길을 비키라고 고함을 치며 언쟁을 하고 고집을 부렸다면 이 두 산양은 가지도 오지도 못하거나, 아니면 모두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양보는 서로를 유익하게 합니다. 양보는 서로를 복되게 합니다. 양보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아무쪼록 부부가 서로 양보하며, 너와 내가 서로 양보하고, 여선 교회 식구들과 남선교회 식구들이 서로 양보하고, 우리 교회 모든 분들이 서로서로 양보하므로 하늘나라의 축복도 받고, 아름답게 하늘나라를 가꾸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