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날짜: 
2023/09/30
말씀: 
사38:17
말씀구절: 

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설교: 

여러분, 이제까지 살면서 심하게 아파본 경험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지금도 기억나는 큰 고통의 순간, 아픔의 순간이 있지는 않습니까? 저의 경우 고등학교 때에 이가 썩어서 치통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그 당시 진통제인 ‘사리돈’을 아예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약에 내성이 생겨서 그 고통이 떠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밤이 되니 더욱 아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 빨리 이 고통의 밤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고통의 밤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일단 그 아픔, 그 고통을 치료하기 전에 당신이 지금 당하고 있는 그 아픔을 진찰해봅시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묻습니다. “왜 오셨지요?” “아- 아프니까 왔지요.” “아니, 어디가 아프시냐고요?” 자- 이런 의사의 질문에 각자 자기의 아픈 것을 설명하시고 대답해보십시오. 일단 어디가 아픕니까? 몸이 아픕니까? 정신이 아픕니까? 마음이 아픕니까? 몸도 아프고, 정신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다 아픕니까? 그렇다면 그 고통 지수는 1에서 10중에 어느 정도입니까?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루는 예수님께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아파서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 아들 환자가 예수님을 보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엎드러져 굴며 입에 거품을 물고 헐떡입니다. 아- 이거 증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큰 병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비에게 묻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내 아들을 죽이려고 불속에도 물속에도 자주 던졌나이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이때 예수님이 아주 유명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은 만병의 치료자입니다. 그 분은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오늘 이래저래 몸이 아프고, 정신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서 오셨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교회는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의사되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2)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환자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예배를 드리지만 단지 의식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지만 단지 그것으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치료자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환자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환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경미한 환자도 있고, 중환자도 있습니다만 모두가 그 아픔, 그 고통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빨리 치료되고 회복되어 그 고통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마15:28)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녀가 아파서 고통하며 신음하며 울 때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가 큰 문제가 생겨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고통을 느끼고 죽고 싶다고 할 때 부모는 “아-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어서 내 자녀에게 이런 고통이 다가왔는가?” 하며 심히 자책하게 됩니다.

즉 자녀의 고통은 곧 부모의 고통이고, 자녀의 슬픔도 곧 부모의 슬픔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들은 그 분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아파서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면 아버지 하나님도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의 고통에 심히 예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30년간 지내면서 나중에는 아주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누가 그들을 구출해줄 수 있습니까? 이때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출2: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있노라.”(출3:7)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고통, 나의 힘든 사정을 안보시고 안 들으시는 것 같지만 다 보고 듣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기 위해 구출작전을 펼치셨습니다. 이름하여 ‘출애급 작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출작전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모두 해당됩니다.

우리가 이곳 캐나다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에도 하나님은 나의 사정을, 나의 당하는 그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께 그 사정을 입술로 낱낱이 아뢰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한나’라는 여인이 그랬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찾아와 간절히 기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삼상1:11)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대로 아들을 주사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아들 사무엘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까지도 해결해주셨습니다. 결국 한 여인의 고통이 도리어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합한 사람인 다윗에게도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시31:9)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그가 당하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시118:5)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시107: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다윗의 간증이 바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의 간증입니다. 지금은 별 걱정 없이 지내는 분들도 얼마 전에는 큰 고통을 겪었을 겁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남몰래 울고 통곡도 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그 고통의 긴 터널에 갇혀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고통의 밤이 지나가고 새날이 밝아 왔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도 이런 간증을 하지 않습니까?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

그리고 더 나아가 큰 병에서 고침 받은 히스기야 왕처럼 이런 간증도 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 지셨나이다.”(사38:17)

그렇게 고통의 깊은 밤을 지나고 희망의 새 아침을 맞이한 분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도할 겁니다. “주여, 저는 지금 고통의 밤을 통과했고 좀 여유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고통의 깊은 밤중에 갇혀서 괴로워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하루 속히 고통의 밤을 지나 기쁨의 아침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여러분 주위에 혹시 생각나는 분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 그래, 지금 그 사람이 고통 중에 매우 힘들어 할 거야. 그래서 교회에 나오기도 힘들 거야.”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그런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그 죗값으로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 떨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전도하고 권면해주십시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의 그 고통의 문제가 속히 완벽하게 해결이 되어 이전보다 더욱 큰 기쁨과 행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