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날짜: 
2015/06/06
말씀: 
히11:1-2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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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 같으면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아- 나는 돈이 천 불 밖에 없어. 고로 나는 참으로 불행해!” 하는 사람과 “아- 나는 아직도 돈이 천 불이나 있어. 고로 나는 여전히 행복해!”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 같으면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아- 가지고 있던 천 불도 드디어 없어지고 말았네. 나는 이제 희망이 없어!” 하는 사람과 “아- 가지고 있던 돈이 없어졌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건강이 있어. 그리고 믿음도 있어. 그리고 나는 기도하면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잖아. 할렐루야!”
여러분,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은 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그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을 말하는 것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사실을 말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너무도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낙심이 쉽게 오고,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으며, 불행의 무덤 속으로 들어갑니다. 반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끝까지 희망에 거할 수 있고, 감사가 끊어지지 않으며, 늘 행복에 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당신 같으면 이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습니까? 늘 없다고 짜증내는 사람입니까? 그래도 있다고 행복해하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당신 같으면 이 두 사람 중 어느 쪽에 거하기를 원합니까?
가끔 부모님에게 이렇게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자녀들을 봅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 준 것이 뭐가 있어.” 그런데 혹시 이런 기특한 자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엄마, 아빠, 저한테 해 준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는 저를 낳아주셨고, 저를 이렇게 키워주셨잖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살아계신 것만으로 저는 행복해요.”
혹시 부모님들 중에 자기 자녀가 이런 자녀가 있으면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그런 기특한 자녀에게 용돈으로 100불을 주고 특별히 축복 기도를 해주고 싶습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들에게 거울(sample)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닮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은 고기도 없고, 마늘도 없고, 파도 없고, 부추도 없고, 물도 없고.... 없고... 없고...”
그들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양식도 없습니다.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데 뭐가 크게 죄를 지은 겁니까? 제 생각에는 그리 큰 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파장과 결과는 어떻습니까?
즉 물도 없고, 양식도 없고, 이것저것도 없으니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쯤 정도 되면 그 없다는 것에 대한 말의 파장과 결과가 너무도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로 믿음의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습관에 빠지지 말고, 있다고 말하는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출애급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아- 이곳은 바로 왕의 핍박도 없고 자유를 얻으니 살 것 같네. 이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찬송을 불러도 되네. 할렐루야!”
성경에서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히11:1)고 말씀합니다. 즉 지금 당장은 없습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 같이 말하고, 당장 없으나 있는 것 같이 말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의 나이 75세, 아내의 나이 65세입니다. 아직 자녀가 없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합니다. “네게 자손을 주리라.” 그런데 그 약속이 있은 후 자그마치 2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요, 아내의 나이가 90세입니다. 여전히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이렇게 부릅니다. “아브라함(열국의 아비)!” 사라(열국의 어미)!“ 즉 그들의 현실에는, 당장 눈에는 자녀가 없지만 장차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가 되는 꿈을 꾸고, 그렇게 서로 용기를 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름을 바꾸어서 부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전에 이름인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이름인 ‘사래’는 ‘왕비’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이름들도 좋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자손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없는 자손을 있는 것 같이 말하라고 아예 그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즉 당장 눈에는 자녀가 없지만 장차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가 되는 꿈을 꾸고, 그렇게 서로 용기를 주는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입술의 고백대로 드디어 아브라함 100세에, 그리고 아내 90세에 자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아직 배우자감이 없습니까? 신세 한탄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히스테리 부리지 말고, 나도 곧 결혼하게 된다고 말하십시오. “에이, 결혼하면 뭘 해.”라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은 그냥 쳐다만 보고 지내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짝을 이루어 결혼하여 낳고 낳고 번성하라고 만든 것입니다. 고로 남녀가 짝을 이루어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긍정적으로 말하십시오. “에이, 나는 가능성이 없어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창세기 1장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창조하다’라는 뜻은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말씀하시니 땅도 생기고, 하늘도 생기고, 해와 달과 별들도 생기고, 수목도 생기고, 물고기들과 새들도 생겼습니다.
즉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과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는데도 없다고 말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하나 밖에 없다고 말합니까? 두 개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두 개 밖에 없다고 말합니까? 이런 사람은 만 개가 있어도 만 개 밖에 없다고 말을 하며 계속 불평과 불행 속에 인생을 살게 됩니다.
저는 개척 목사입니다. 17년 9개월 전에 이곳 캘거리에 와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때에는 이 앞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도 없었습니다. 드럼도 없었습니다. 물론 성전도 없어서 영어 학원 사무실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고, 식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습니다.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여기 캘거리 한인 교회가 26개가 있습니다. 그 중 자기 성전이 있는 교회 6개 중에 우리가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친구가 없을는지 모릅니다. 특히 노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어린이들에게 또래의 친구가 없으면 제가 참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때 없다고만 말하지 말고, 무에서 유를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래의 친구가 와도 좋은 방향으로 나가야지, 믿음이 없어서 더 나쁜 방향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즉 내 자신부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나와 같은 믿음의 대화를 할 친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전도해서 좋은 믿음의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럴 능력을 우리에게,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없다고 하지 말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주시니, 나도 만들어 내야 되겠다.” 하는 창조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직장을 잃었습니까? 또 만들어 내십시오. 애인이 나를 버리고 도망갔습니까? 더 좋은 사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같이 따라해 봅시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만들어 보자.”
하루는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엉엉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너희들 왜 그렇게 우냐?” “고기가 먹고 싶단 말이야. 이제 만나는 지긋지긋해.” “아- 고기가 먹고 싶다면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기도를 해야지. 왜 울고불고 원망불평을 하냐? 니들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에 와라. 불고기 실컷 먹여준다. 그리고 오늘은 바비큐 파티가 있으니 삼겹살 실컷 먹어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기가 없다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하나님은 고기를 실컷 먹게 하셨습니다. 이 당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민11:18-20)
그렇게 고기를 먹고 싶다고 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바람으로 메추라기 떼를 몰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진영에 90cm 되는 높이로 쌓이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어린이들도 그냥 손으로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민11:33) 즉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고 우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고기를 주었지만 하나님이 화가 나서 고기가 입에서 씹히기 전에 죽였다는 것입니다.(하나님도 참!)
이를 통해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 없다고 불평을 말하기 전에 있는 것을 먼저 감사하고, 자초지종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여전히 있는 것이 많습니다. 고로 불평보다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해야 됩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도 이것도 저것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