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날짜: 
2015/02/14
말씀: 
겔48:35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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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하자 하나님이 마침내 유다 왕국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파괴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에스겔서 4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와 땅을 새롭게 분배받고, 특히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땅인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이제는 ‘여호와 삼마’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이에 대한 아주 명확하고 재치 있는 대답이 바로 오늘 본문의 ‘여호와 삼마’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는 것입니다.

소련 최초의 우주 비행사였던 가가린이란 사람이 지구를 떠나서 우주를 비행한 후에 이런 어리석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지구를 떠나 아무리 눈을 씻고 우주를 살펴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더라.”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즉 우주를 비롯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면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7-10)

그러나 사람들은 다윗의 고백과는 달리 분명히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미련해져서 그만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다 확실히 깨닫고 느껴야만 됩니다. 즉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 먼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삶의 현장 속에 ‘거기에 계신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믿음도 생기고 소망도 생기고 사랑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신앙생활 해오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야 하나님이 여기도 계시는구나!” 하고 깨달아 본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삶의 현장에서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함과 담대함을 소유할 수 있고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란 사람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미지근한 신앙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죽이려는 형의 낮을 피해 괴나리봇짐 하나 들고 외삼촌댁인 하란으로 피신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날이 저물자 피곤하고 지쳐서 돌베개를 하고 광야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을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2-16)

 

야곱은 부모님 밑에서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편히 지낼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 줄 몰랐으나,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여행을 하면서 꿈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 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죽음의 고비를 비롯해 각종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불안을 제하시며 평안을 주셨습니다. 즉 야곱이 믿음의 사람이 되는 데에는 바로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 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과거도 계시고, 현재에도 계시며, 미래에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시고, 땅에도 계시며, 만물 가운데도 있으시며, 우리 가운데에도 함께 계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만물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네가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내가 함께 하며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사43:2)

그리고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여러분,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그래서 어떠한 문제가 다가와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거하므로 걱정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러한 질문에 ‘아멘’ 하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해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과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맛보고 느꼈던 사람들입니다. 고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나는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시23:5)

여러분 혹시 내가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거기에 나와 함께 하십니다. 어떤 성도가 병이 들자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은 없다’(God is nowhere!)고 병실에 써서 붙여 놓고 늘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의 종이 심방 와서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켜주리라."(사41:10)는 말씀을 듣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수술실에 예수님이 내내 떠나시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지키시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그는 벽에 붙였던 ‘하나님은 없다.’(God is nowhere.)라는 종이를 띠어내고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God is now here!)라는 종이를 붙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외롭고 쓸쓸함을 느낄 때에도 주님은 거기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시27:10)

여러분, 주님은 사자굴 속에서도 다니엘과 함께 계셨고, 풀무불 속에서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계셨고, 감옥에서도 베드로와 바울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곳 북미 땅 캐나다 앨버타 캘거리에서 말세라는 고통의 시기를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과도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늘 체험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캘거리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이곳에서도 나와 함께 계시지요?” 그럴 때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여러분, 한국에서 역사 하는 하나님이 여기 캘거리에도 역사하십니다. 한국에서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여기 캘거리에서도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여기에도 나와 같이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를 갈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고로 이렇게 외치십시오. “여호와 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