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경제 원리(7/29일)

날짜: 
2001/08/05
설교: 

제목 : 역설적인 경제 원리
본문 말씀 ; 눅 6:38

성경 말씀에는 세상적인 생각과 계산으로는 잘 이해과 되지 않는 정반대의 역설적인 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17:33)라는 말씀처럼 정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듯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요12:24)

그리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7)라는 말씀처럼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남을 먼저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나서는 낭비하는 것이 없도록 긁어 모으라고 하셨지만, 한 여인이 값이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부어 드릴때는 그것을 '낭비나 허비'라고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는 일입니다.
기적을 통해서 힘 안들이고 만들어낸 떡과 생선은 조금도 낭비하지 말라고 하시고, 애써 모아 많은 돈을 주고 산 향유를 주님께 부어 드릴 때에는 낭비나 사치가 아니라 도리어 참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때에는 헛되이 받거나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요, 우리가 하나님께 정성을 부어 바칠 때는 계산이나 타산을 앞세우지 말고 마음껏 부어드려야 된다는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하신 말씀도 역시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즉 우리 크리스챤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성경에 입각한 역설적인 경제원리로 살아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에 대해 살펴봄으로서 모두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의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여 어떻게 하든지 긁어 모아서 저장하려고만 하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은 그와는 반대로 부지런히 주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크리스챤의 축복과 행복은 움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고 베푸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나눠줄줄 모르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만 위해서 긁어 모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재산은 모을 수는 있으나 행복은 모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리어 근심과 걱정을 모으는 것입니다. 신경 쇠약이나 노이로제 때문에 정신병원을 찾아오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많은 돈을 쌓아 둔 사람이 더 많고, 자살하는 사람도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해도 그 다음에 오는 허무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나눠주는 기쁨과 행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저축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 바치고 남에게 나눠주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궁핍함이 없게 해주시고, 필요한 경우에는 넘치도록 부어 주실 뿐만 아니라 나눠주는 행복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신앙은 있지만, 구한 것을 받고 나서는 나누어 주는 신앙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마치 사해가 물을 계속 받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으니까 마침내 동식물이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를 보십시오. 그곳은 늘 푸른 나무와 물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류에서 받은 물을 계속해서 하류로 내보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받은 것을 움키기만 하고 제대로 쓸 줄 모르면 그 성도는 마침내 사해와 같이 죽은 신앙이 되고 맙니다. 기쁨도 행복도 죽고, 나중엔 움켜진 물질도 허무하게 다 없어지고, 불행한 사람, 후회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누어 주는 신앙은 기쁨도 행복도 더욱 많아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도 받고,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도 더욱 많이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한 사람, 복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주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특히 성령이 오면 자꾸 내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의 사람, 행복의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초대 교회에 교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성령을 받자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가진 재산을
팔아 교인들을 도와주고 나누어 주니까 결국 교회에 사랑이 넘치게 되고, 초대교회는 크게 부흥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나누어 주는 은혜를 받으십시오.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난해서 남에게 꾸어 다니고 동냥하러 다니는 것보다 부요해서 남에게 꾸어주고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더 복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복된 신자, 복된 가정, 복된 국가, 복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생의 목적이 움키는데 두지 말고 철저하게 나누어 주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더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즉 우리가 남에게 주는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축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25)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어떻게 하든지 돈이나 옷이나 양식을 나만 위해 쌓아두려고 하지 말고, 부지런히 나눠 주므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10보다 9가 더 큰' 역설적인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즉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자기를 위해 10을 다 쓰는 사람보다 십일조를 드리고 나서 나머지 9를 가지고 쓰는 것이 더욱 행복하고 축복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각하기를 "아니, 10을 다 써도 모자라는데 거기서 하나를 떼어 바치고 9를 가지고 쓰면 더 모자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인간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경제 진리는 10을 다 써도 모자라던 것이 십일조를 바치고 나면 도리어 그전보다 더 풍부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물론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축복 받은 신앙이 되기까지에는 사람에 따라 틀리지만 대체로 상당한 기간과 함께 체험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십일조의 신앙으로 자라기까지 상당한 기간과 체험이 있었습니다.

특히 군대 시절 때 장교로 있으면서 십일조를 드리면 그 달은 모자람이 없이 물질을 쓰고,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겼지만, 십일조가 아까워서 드리지 않으면 그 돈이 괜히 술값으로 나가고, 나중엔 그로 인해 몸도 망치고, 상관에게 욕도 얻어먹고, 좋지 않은 일이 늘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십일조 띠어 먹으면 성경에 예언한 대로 황충이 끼고, 거의 다 익은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처럼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구나! 앞으로 절대로 십일조 띠어 먹지 말아야 되겠다!'

여러분! 저 뿐만 아니라 여기에 많은 분들이 이러한 체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즉 10을 쓸 때보다 9를 쓸 때가 더 풍성해지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 역설적인 성경의 진리입니다.
이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 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확실한 투자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통하여 복된 성도,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물질을 쓰면 쓸수록 더 많이 거두는 역설적인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6에 '이것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업, 교회 사업을 위해서 많이 쓰면 쓸수록 그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아니라, 낭비가 아니라, 큰 유익이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까워도 하나님을 위해서 기회 있는 대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되돌아 옵니다. 그리고 되돌아 올 때에는 30배, 60배, 100배로 되돌아 옵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청년회 조장을 맡으면서 식구들이 늘어나는데 구역예배를 드릴 마땅한 넓은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성전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성전을 얻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당시 저의 집이 40평짜리 전세였었는데 이를 20평으로 줄여서 이사가고 나머지 물질로 성전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 믿음이 적었던 저의 아버님에겐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되니까 물질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얻고 이사를 마치자 당시 평택에서 사업으로 인해 바빴던 저의 아버님이 이사한 새 집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돈을 더 달라고 해서 주었는데 집은 더 작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당시 저의 아버님은 화가 나서 즉시 시골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가정이 파탄이 되고 물질이 쪼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버님의 사업이 순탄하게 잘되고 가정에 큰 기쁨의 소식이 왔습니다. 다름 아닌 저의 누님이 당시에 34세 노처녀가 되어 늘 부모의 근심이 되었는데 그리고 앞차가 밀리니까 뒤차도 못 나가서 할 수 없이 저와 저의 여동생도 노총각 노처녀로 늙게 되었는데 저의 누님에게 훌륭한 배우자가 나타나 드디어 결혼의 축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차가 빠졌으니 뒷차도 순탄하게 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 교역자로 있었을 때, 교육관 구입을 위한 작정헌금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제 사례비가 월 100만원 가량 되었는데 저는 100만원을 드리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용기 목사님이 예배 중에 자신은 교육관 구입헌금으로 1000만원을 작정하려고 하는데 성령님이 뒤에다 0을 하나 더 붙이라고 하길래
그리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님이 저에게도 역사하셨습니다. '원효야, 너도 뒤에다 0을 하나 더 붙여라!" "아니, 하나님.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요?" 저는 하나님께 반문을 하면서도 워낙 강하게 성령님이 역사를 하니까 뒤에다 0을 하난 더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작정한 헌금을 신속히 내려고 한동안 택시비를 줄여 버스를 타고 다니며 최선을 다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불과 몇 달 만에 기적적으로 물질이 운용이 되어 작정한 헌금을 모두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단독 목회를 하면서 성전 건축을 할 때 지금 드린 이 헌금을 보시고 그 때에 갚아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기도는 응답이 드디어 지금 우리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성전이 세워지면서 하나님은 1000만원의 30배인 3억의 물질을 허락해 주셔서 이와 같은 아름다운 성전이 세워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드린 헌금은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자녀에게라도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셈에는 결코 착오가 없습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로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18:29-30)

여러분! 펌프에 물이 안 나오면 이웃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라도 부어야만 펌프물이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해서 풍성히 뿌리면 풍성히 거두게 됩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왔는데도 제단에 세 통이나 물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물 한 방울이 그렇게 귀중한 때에 세 통이나 붓는 일은 무리한 일 같지만 그 후에 억수 같은 비가 왔습니다.

즉 바칠 수 없는 중에 바치면 더욱 더 풍성해 집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지식과는 다른 성경에 나오는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역설적인 진리에 입각해서 생활하면, 이상하게 점점 더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주는 생활, 바치는 생활, 10보다 9가 더 크게 쓰여지는 생활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