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곧 축복이다.

날짜: 
2008/10/18
설교: 

요4:23-24 예배는 곧 축복이다.
어떤 40대 남자가 자기의 70대 어머니 권사님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오늘 교회 가기가 싫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교회가기 싫은 세 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주일날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고, 둘째는 성가대가 불협화음으로 할 때는 정말 싫고, 셋째는 장로님 기도가 너무 길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래도 교회는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며 3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교회는 사람보고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보고 가는 것이니까 가야 되고, 둘째는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가야 되고, 세 번째는 네가 그 교회 담임 목사니까 가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유머지만 목사의 한 사람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목사도 때로는 교회에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체가 약해서 교회 가기 싫을 때가 있고, 교회 다니다가 시험이 들어서 마음도 육체도 교회를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에 오기 바로 전에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면 교회에 오려다가도 그냥 집에 털썩 주저앉던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빠짐없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예배에 빠지는 분들은 왜 빠지고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은 왜 참석하는 것입니까?
어느 목사님 이야기를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그 목사님은 낚시질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낚시를 취미삼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낚시 광이었습니다. 어느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낚시질 갔다가 빨리 와서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낚시를 좋아 하는 장로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로님! 저 건너 저수지에 고기가
잘 잡힌다는데 같이 낚시하러 갑시다.”
장로님도 같이 낚시가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장로님은 갑자기 할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목사님에게 말씀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같이 못가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수요일이니 목사님 혼자 가셨다가 빨리 수요예배 전에 오십시오.” 그러나 그날따라 고기가 굉장히 잘 잡혔습니다. 목사님은 고기를 잡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한편 교인들이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보니 목사님이 안계셨습니다. 장로님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았습니다. 장로님은 빨리 목사님이 가시자고 한 저수지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목사님은 수요예배에 지각을 했습니다. 수요예배 시간이 거의 다 끝날 즈음에 도착했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과 성도님들 보기가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날부터 그렇게 좋아 하던 낚시를 그만두고, 상당히 비싼 낚싯대를 꺾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는 낚시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예배에 빠지는 이유들 중에 이와 비슷한 경우가 제법 있을 것입니다. 즉 예배에 참석하려고 하는데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도 해야 하고, 다운로드 받은 드라마도 봐야 하고, 스포츠 중계도 보아야 하고, 밀린 가정 일도 해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야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기타 등등 참으로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들을 그 잔치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잔치 시간이 다 되어도 초대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종을 보내서 초대 받은 사람들이 왜 잔치에 오지 않나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종이 주인의 명을 받아 그 사정을 알아보니 이렇습니다.
“아- 그래 오늘이 잔칫날이지! 그런데 어쩌나 내가 얼마 전에 밭을 샀는데 그 밭이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청컨대 나를 용서하라.“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최근에 소 다섯 마리를 샀는데 그 소가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하는데... 그래서 오늘 부득이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는데...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얼마 전에 장가를 들었는데... 고로 잔치에 못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 핑계들을 들어보니 오늘날 성도님들이 천국잔치인 예배에 오지 못하는 이유와 굉장히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인의 초청에 임하지 않으니까 주인은 종에게 말합니다. “애야, 이전에 초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길거리에 나가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리고 오너라 그리고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 전에 청하였던 사람들은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목적은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영광을 돌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표현과 행동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서 무엇을 합니까? 그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을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더구나 예배를 드리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크게 기특하게 보십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가장 고마운 성도님들은 예배에 빠짐없이 나와 주는 분들입니다. 특히 수요예배에 나와 주는 분들을 향하여 저는 속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수요예배에도 나오는 분들을 크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모든 목사님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배입니다.” 또 목사님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목사님! 성도님들이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입니까? ”예배에 잘 나와 줄 때입니다.“ ”목사님! 누구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싶습니까?“ ”예배를 잘 드리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분들이 가장 귀하고 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는 히브리어로 ‘아바드’라고 합니다. ‘아바드’라는 말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배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성도님들 중에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예배를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시간이요,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몽골에 선교사님으로 가신 이용규 목사님이 한 처녀를 전도하였습니다. 목축을 하는 처녀였습니다.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소를 풀밭에 매어놓고 예배드리러 가려고 하였습니다. 소를 끌고 나가는데 소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녀는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어 가다 보니 땀과 먼지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혼자 외쳤습니다. “소보다 먼저 예배를....”
그리고 그녀는 소를 따라가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달렸습니다. 교회로 왔을 때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선교사는 기특하여 교회 문에서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예배의 축복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음메.....”소가 교회로 와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예배는 회복입니다. 예배는 축복입니다. 예배는 기적입니다.
저희 가정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간증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경기도 시골에서 공장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저희 어머님이 현장을 방문하여 아버님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님이 밤중에 돼지고기가 무척 드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골 현장에서 슈퍼마켓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그래도 돼지고기를 사려고 일어나자 저희 어머님이 말했습니다. “여보, 나가기 전에 먼저 같이 예배 좀 드립시다.” 그래서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마치자마자 문 밖에서 누가 말합니다. “사장님! 계세요.” 문을 열어보니 현장 인부가 손에 무엇을 들고 왔습니다. 무엇입니까? 돼지고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기를 드시고 난 후에 저희 아버님이 또 다시 사이다가 드시고 싶었습니다. 사이다를 사려고 일어나려고 하자 저희 어머님이 또 다시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배가 부르니까 찬송 좀 부릅시다.” 그래서 또 다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고 나자 또 다시 누가 밖에서 말합니다. “사장님! 계세요.” 문을 열어보니 또 다른 현장 인부가 손에 무엇을 들고 왔습니다. 무엇입니까? 사이다입니다. 할렐루야!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필요한 것을 허락해주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치료와 축복과 회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를 잃어버리고 예배를 무시하면 그와 반대가 됩니다. 신앙이 식어집니다. 축복을 놓치고 맙니다. 망할 징조가 들고 맙니다. 한국 교회가 신속이 성장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예배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새벽예배도 드립니다. 수요예배도 드립니다. 철야예배도 드립니다. 공부 많이 하면 공부 잘 하는 것처럼 예배 잘 드리면 좋은 신자가 됩니다.
마귀가 성도들을 파괴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배를 무시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불참하는 습관을 붙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어느 미션 스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도무지 예배에 참석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목이 그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예배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가?" 그러자 학생은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가지고 항변을 했습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으니까 저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 학생의 말을 듣고서 그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 방금 자네가 말한 것을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거꾸로 한번 말해 보게나." 그 학생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믿지를 못하는 것이고, 제가 성경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이해 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목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바로 그걸세. 자네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니까 자네에게 믿음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믿음이 없으니깐 말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걸세. 이제부터는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게. 그러면 자네에게도 믿음의 싹이 틀 걸세. 그리고 믿음이 생기면 절로 성경말씀이 이해가 되고 알아지는 걸세."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2001년 7월 10일자 로이터통신(리스본발)에 따르면 3년째 매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주일성수를 하고 있는 개가 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 북부의 소르바도 라는 곳에 살고 있는 이 개는 매주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서 사람들도 하기 힘든 주일성수를 3년째 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로이터통신은 "코레요 다 만하"라는 현지 신문 보도를 인용해서, ‘검둥이‘ 라는 뜻을 가진 ’프레타‘라는 이름의 이 개가 매주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기 위해 혼자서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레타가 소브라도 인근의 에르메신데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매주일 마다 걸어야 하는 거리는 무려 16마일(26km) 이라고 합니다. 프레타는 교회에 도착하면 평소에 늘 하던 대로 7시 30분에 시작하는 예배에 맞춰 강단 바로 옆에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 순서에 맞춰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앉을 때마다 프레타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프레타는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 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개를 보기 위해 교회를 찾아오고 있어서 교인 수가 늘어나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신기한 개를 구경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개 구경하러 왔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될 수도 있을 것을 생각하면 이 개는 전도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곳 캐나다 땅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자고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그 피와 생명을 통해서 얻은 이런 귀중한 특권과 축복을 포기하고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원통한 일입니다. 아무쪼록 이곳 외국 땅에서도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귀중한 축복과 은혜를 풍성히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