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생명을 걸어라.

날짜: 
2023/12/10
말씀: 
요4:20-24
말씀구절: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설교: 

소매치기 생활을 함께 하던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한 청년이 문득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같이 들어가 보자.” 그러나 친구는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고, 다른 청년은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두 청년 중에 교회에 들어가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길로 갔던 사람은 중범죄를 짓고 오랫동안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 안으로 바깥세상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 취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서 대통령 취임 소식을 듣던 중에 그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국의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그 사람이 바로 과거에 자기와 함께 소매치기 동지였던 바로 그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교회로 들어가 예배드리기 원했던 그가 바로 미국의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아브람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 1831~1881)였습니다.

한 사람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변화를 받음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날의 예배를 거절하고 자신의 길, 죄인의 길을 고집하고 감으로써 평생 감옥에서 무기수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의 그 예배가 두 청년의 인생을 가르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는 예배를 참 많이 드립니다. 여기 캐나다 땅에서도 한국 교회는 매주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수요 예배, 금요 예배, 그리고 새벽 예배까지 드립니다. 또한 연합 성회를 비롯해 각종 특별 예배도 드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민족은 한국 교회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예배를 드리니까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습니다. 그에 따라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있어 가장 빨리 민족 복음화를 이루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모여 예배를 드리던 한국 교회가 약 30년 전에 서서히 예배를 드리는 성도의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여성분들의 직장과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부터입니다. 즉 신앙의 중심인 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인 여성들의 삶이 바빠지고 피곤해지다 보니까 예배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결국 그들의 남편과 자녀들도 같이 예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몇 년 전부터는 COVID-19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합법적으로 예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결국에는 아예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일이 제법 많이 생겨났습니다. 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요즘도 아직까지 COVID-19 영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툭하면 예배에 빠지고, 그것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중요성이 자꾸 퇴색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매주일 예배 때에 봅니다. 분명히 우리 교회의 주일예배 시간이 오전 11시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5-10분 전에는 미리 와서 예배당에 앉아 기도하면서 예배를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왜 매번 5-10분 어떤 때는 15분 늦게 와서 허둥지둥되며 그렇게 성의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겁니까?

여러분, 제가 오늘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휴- 그래도 바쁜 이민 생활, 외국 생활에 늦게라도 예배에 오는 것도 참 기특하다. 감사하다. 더구나 초신자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 매번 예배시간에 늦게 오고, 아예 이제는 너무도 떳떳하게 지각생으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제가 여러분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목사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걱정이 됩니다. “아휴- 저렇게 평생 지각생 신자로 살다가 천국 갈 건가? 아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지각하다가 천국 문이 닫혀서 못 들어가면 안 되는데... 주여, 스스로 깨닫고 예배에 지각하지 않는 바른 신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같이 따라서 해봅시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결단하자. 주여- 평생토록 예배에 지각하지 않겠습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가장 기본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른 신앙생활도 도미노 현상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믿는 우리는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공산권 나라인 북한이나 중국 그리고 이슬람권 나라에서는 예배를 드리다가 적발되면 각종 불이익과 핍박은 물론 죽음의 위험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고로 거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생명을 걸면서까지 예배를 드리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기본 행위요, 예배가 우리들의 신앙고백의 확실한 표현이요,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완벽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땅의 모든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혹 어떤 분은 “아- 바쁜 세상에 각자 혼자서 따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각자 혼자 있을 때도 예배를 드려야지요. 기도해야지요. 찬송해야지요. 성경도 읽어야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제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신앙 고백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이 끝나는 날은 이 땅에서의 예배가 마치는 날입니다. 어느 날 제 심장의 고동소리가 끊어지고, 코와 입의 숨소리가 그치고, 몸이 굳어지고 체온이 식으면 이 땅에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때에는 저를 천국으로 옮겨서 거기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제가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배’라는 단어가 성경에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개역 성경 신약에만 총 10번이 나옵니다. 너무나도 적은 숫자입니다. 그나마 오늘 본문에만 5번이 나옵니다. 그래서 잘못 생각하면 “아니- 예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예배’라는 단어가 적게 나오지?” 하고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예배’라는 단어가 이전에는 ‘제사’ 혹은 ‘희생‘ 혹은 ’절기‘라는 말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사‘라는 단어는 성경에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성경에 ’제사‘ 혹은 ’제사장‘이란 단어가 개역성경에 총 983번(구약 801번, 신약 182번)이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희생’이란 단어는 105번, ‘절기’라는 단어는 63번이 나옵니다. 그만큼 예배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즉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급 시킨 이유는 바로 광야에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 즉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18에 모세가 애급 왕 바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는 애급 왕 바로가 신입니다. 거기서는 예배를 드리면 모두 죽고 맙니다.

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출애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크게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또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곳 캐나다 땅에 왔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갑시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나라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들은 각각의 수도인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나중에는 그들 두 나라가 모두 망했습니다. 고로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도 사마리아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나라가 없어졌으니 이제는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이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이 산(사마리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1, 23-24)

즉 어느 나라, 어느 장소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명 바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시고 만나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표어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입니다.

즉 예수님의 몸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자는 겁니다. 어떻게요? 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배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 숨 쉬고 살아 있는 동안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린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예배를 안 드리면 나 죽는다.“라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우선순위 중 가장 첫 번째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렇게 생명 걸고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시고 만나주시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기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아무쪼록 짧은 이 땅의 인생 중에 예배가 여러분의 인생의 중심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는 날 천국에서 먼저 간 성도님들과 또 다시 거기서 감격의 예배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