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날짜: 
2008/02/02
설교: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성경에는 복이 사람에 따라서 좌우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은 환경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다고 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먼저 복되면 그에 속한 환경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비롯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복되던 땅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땅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즉 사람이 복되면 땅도 복을 받지만, 사람이 복되지 못하면 땅도 사람에게 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는 땅이 되고 맙니다.
만약 이 땅을 다시 복되게 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아닌 사람이 먼저 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시편 1편 1절에는 “복 있는 환경은” 이라고 시작하지 않고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하여, 그 사람에게는 이런 저런 축복이 따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전반절에 보면 예수님이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저런 환경이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이런 저런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원하는 축복이 오지 않으면 자칫 환경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환경도 우리 인간이 잘못해서 저주를 받게 한 피해자입니다. 올해 우리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마음의 여유를 비롯해, 물질의 여유, 시간의 여유, 환경의 여유를 얻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복을 받기 위하여 해나 달이나 나무 같은 환경에 절을 하고 그들에게 복을 달라고 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말할 것입니다. “이보시오. 나의 운명은 오히려 당신에게 달려있고, 당신이 나의 복을 주관하고 있는 주인인데 왜 나보고 복을 달라고 하십니까? 참으로 답답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의 근원인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 먼저 내 자신이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일까요? 성경 전체에는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복되지 않은 사람인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살면 에덴동산 속에서 복된 생활을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이런 저런 모습으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여 복을 주시시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살면 복이 달아나고 맙니다.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5장에도 예수님은 8명의 복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가 알아볼 복된 사람은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구절 말고 성경에는 온유한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축복의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올해는 우리 모두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 넉넉하고 풍성하고 여유로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온유’란 단어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움” 그리고 영어사전에서는 온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gentleness, mildness, tenderness”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의 의미를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에서 충분하고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원문인 헬라어에서 말하는 ‘온유(프라우테스)’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곪은 상처의 고통이 진정되었을 때에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심한 피부병이 들어본 경험이 있습니까? 저의 경우 나이 30이 넘어서 장가를 가려고 한참 선을 보려고 했던 시절에 피부병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한 피부병입니다. 남성들이 흔히 생기는 습진성 피부병이 잘 낫지 않아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갔습니다. 전문의가 지어주는 약을 바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주사도 맞았습니다. 그러자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습진성 피부병이 일주일 만에 모두 없어졌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좋았습니다. 이제는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습진성 피부병은 고쳤는데 그 대신 온 몸이 근질거리고 가려웠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있자 온 몸에 붉은색 점들이 여기저기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붉은 점들은 더욱 커지더니 손목과 얼굴만 빼고 온몸을 덮었습니다. 옷을 벗겨놓으면 마치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제 여동생이 옆에서 말합니다. “어휴, 징그러워! 오빠는 이제 장가 다 갔다!”
상처가 너무나 가려워서 이리저리 긁어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상처가 더욱 커지고 아주 참기 힘든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너무 괴로워 소금물을 온 몸에 발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도리어 화만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전문의도 저의 그런 끔직한 모습을 보더니 굉장히 당황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의술을 가르쳐준 스승 전문의에게 제 피부 조직의 샘플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자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김원효 씨의 피부병은 여드름입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우 한참 여드름이 돋아나는 청소년 시기에도 한 점의 여드름 없이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30이 넘은 나이에 여드름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전문의는 제가 습진성 피부병에 대한 약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이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드름에 대한 약이 특별나게 없으니 그냥 목욕을 잘하고 지내보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 여드름 피부병으로 인하여 한 달 동안 무척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그렇게 심하던 피부병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제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이제는 장가를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토록 오랫동안 쑤시는 고통, 그토록 잠 못 자게 만드는 고통, 신경을 건드리어 미칠 것 같은 고통, 그런 고통의 상처가 모두 다 진정이 되고 가라앉아 마음이 평안하게 되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성경은 ‘온유하다’라고 합니다. 즉 ‘온유’란 세상의 이런 저런 고통과 번민을 잘 다스리어 스스로 평안을 누리면서 타인에게 조차 포근하고 평안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나는 뒤끝이 없어요.” “나는 화를 잘 내는 것이 큰 흠이지만, 오래가지는 않아요.” 물론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그 화도 잘 풀어주지 않고 오래가면 더욱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쉽게 남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주는 모습은 온유와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온유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쉽게 열 받고, 쉽게 싸우고, 쉽게 토라지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온유하기 위해 더욱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따라옵니다. 그래야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애인의 상냥스런 목소리를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애인을 구하는 취향이 다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분들은 자신의 애인이 자기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해주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가수 중에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상당히 유명한 분이 있었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그 가수가 노래하면 열광을 합니다. 그의 노래는 대단히 부드럽습니다. 특히 그의 노래 중에 이런 부드러운 노래가 있습니다. 저도 상당히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Love me tender. Love me sweet. Never let me go."
남성의 경우 애인의 상냥스런 소리도 좋습니다만,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더 애인인 남성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할 것입니다. 물론 부드럽다고 해서 느끼하고 간드러지고 아첨하는 듯한 음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된 고백을 ‘온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도 않은데 괜히 부드럽게 말한다고 음성을 변조하듯이 내는 소리는 도리어 듣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합니다. 더구나 상대방을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상대방을 철저하게 속이거나 파괴하기 위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부드러운 척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고차원적인 깡패 두목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먼저 마음이 부드럽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도 소리도 부드럽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나운 마음, 사나운 말과 행동은 오히려 상대방을 격동시키며 인간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게 만듭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부드러운 행동과 부드러운 말을 하면 상대방의 마음은 감동을 하게 됩니다. 이런 온유한 사람이 나중에 보면 일의 효과를 더욱 높이는 사람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중심인물인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그리고 영국의 처칠을 풍자한 얘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 세 인물이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오찬을 나누고 정원 연못 속에 있는 물고기 잡기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먼저 히틀러는 권총을 뽑아 물고기를 겨누어 쏘았습니다. 그러나 명중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무솔리니는 직접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작고 빠른 물고기를 잡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 처칠의 차례였습니다. 그는 묵묵히 바가지로 연못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가장 부드러운 방법을 쓴 처칠이 이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인생을 복되게 하기 위해서는 온유해져야 하고 온유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상냥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쓰는 사람이 사납고 거칠고 불친절한 사람보다 결국에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원수에게도 상냥하게 대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 결국 땅을 차지합니다. 이전에 한국 텔레비전에서 어떤 회사가 커피 선전을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커피와 여자는 부드러운 게 좋잖아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커피와 여자뿐이 아닙니다. 사람도 부드러운 사람이 좋습니다. 저도 나이가 먹으면서 부드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복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대개 어린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는 아빠보다 더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드럽고 온유하신 분입니다. 상냥하게 우리를 위로하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하셨습니다. 올해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를 배워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길들여진 동물을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말과 소가 인간에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길이 들여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쓰임 받기 위해서는 길이 들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리 가라 그러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 그러면 저리 가고, 앉으라 하면 앉고, 서라 그러면 서도록 훈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여러분, 원래 모세는 혈기가 많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급인 감독을 주먹으로 쳐서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간 광야에 묻혀 처갓집 양들을 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훈련을 받은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좇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80의 나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 그를 원망하고 시기했습니다. 그리고 누나 미리암이나 형 아론까지 “왜 하나님은 별것도 아닌 모세만 쓰시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는 온유함이 이 세상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그를 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쓴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온유(프라우테스)’라는 단어 속에는 <힘>과 <양순함>이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즉 '온유‘라는 단어에는 '통제된 힘'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몽골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의 경우, 관광지에 있는 비루먹고 늙은 말이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아니라, 유목민에 의하여 잘 길들여진 강인한 말입니다. 그 말은 힘이 넘쳐나지만 그 힘이 말에 올라탄 기수의 조정에 따라 잘 통제되어 집니다. 그런 말을 가리킬 때 ‘온유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한국의 공군 조종사 한명 나오는데 87억이 든다고 신문에 나왔습니다. 금방 조종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돈과 정성을 많이 들여서 사람을 훈련시킵니다. 이렇게 훈련된 조종사에게 F-16전투기를 맡긴다는 겁니다. 즉 훈련을 거쳐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훈련된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에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기업을, 교회를, 가정을 맡깁니다. 그리고 온유한 사람이 가정을 맡을 때, 그 가정이 복을 받아 큰 축복의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하지 않은 사람은 가정을 맡겨도 다 깨트립니다. 유리가 유리를 만나면 깨어지듯이 온유하지 않는 사람은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인간관계를 깨트립니다.
결론입니다. 올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잘 훈련받는 온유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분노와 고통을 잘 다스리고, 상냥하고 친절한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온유한 자가 받을 복을 넉넉하고 풍성하고 여유롭게 얻어 올해를 행복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