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날짜: 
2023/01/21
말씀: 
신29:5-6
말씀구절: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설교: 

한 5년 전쯤에 제가 월마트에 가서 마음먹고 구두 두 켤레를 새로 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 두 켤레로 죽을 때까지 신어야겠다.” 그런데 웬걸요. 그 구두들이 어느새 밑창이 다 닳고 말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구두 바깥쪽이 더 많이 치우쳐 닳았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구두 밑창만 수리해서 신으면 되겠다는 마음도 먹었지만 뭐 구두가 월마트 구두라 그리 비싼 것이 아닙니다. 수리비나 새로 사는 거나 그게 그거겠다 생각이 들어 좀 아깝지만 새 구두를 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또 몇 켤레의 구두를 더 사야 되겠는가?”

여러분, 사람이 일생동안 몇 켤레의 신발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옷은 몇 벌이 필요할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신발도, 옷도 낡아지고 해어집니다. 더 이상 신을 수도, 입을 수도 없습니다. 이때 돈이 많이 있으면 다시 새것으로 사면됩니다. 그런 것 가지고 일일이 걱정할 필요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노예생활을 하다가 급히 출애급하여 광야로 나왔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여벌의 옷도, 여벌의 신발도 없습니다. 그 광야에서 신발과 옷을 살 가게도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신발과 옷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길이 잘 닦여진 도로가 있고, 자가용이 있어 여분의 신발도 따로 필요 없는 좋은 환경도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광야고, 그 광야를 터벅터벅 계속 걸어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발이 닳아지고 옷도 해어집니다. 아- 참 난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주님이 40년 동안 옷도 낡지 않게 하시고, 신발도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간 만나를 먹이셨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40년간 옷도 낡지 않게 하시고, 신발도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는 것은 잘 모릅니다. 여러분, 옷과 신발이 40년간 낡지 않고 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합니다.

온도도, 습도도 이상적으로 맞아야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여기 캘거리보다 습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다보니 옷도 곰팡이가 잘 끼고, 구두도 썩기 쉽습니다. 반면 여기 캘거리는 날씨가 드라이합니다. 습도도 낮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을 나무로 많이 짓습니다. 그렇게 나무로 집을 지어도 썩지 않습니다. 나무로 지은 집이 100년은 거뜬히 갑니다.

저희 교회 건물도 체육관 쪽이 50년대 6.25 때 지은 건물이고, 대성전 건물이 60년대 지은 건물입니다. 벌써 70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튼튼합니다. 새 건물 같습니다. 환경이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식적으로 환경이 최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낮에는 날씨가 더우니까 구름 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인도하시고, 밤에는 춥고 캄캄하니까 불기둥으로 환하고 따뜻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40년간 만나를 내려 그 많은 백성들이 한 사람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옷과 신발이 낡거나 해어지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디서나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지만 알고 보니 하나님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세밀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내가 잘나서가 이니라, 내가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뒤에서, 앞에서, 옆에서, 안에서 하나님이 세밀하게 역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 있으면서 그곳에서는 농사도, 목축도, 어업도, 사냥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 6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떡도 먹지 못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그곳은 척박하고 황량한 광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먹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40년간 변치 않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이 역사해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서 죽을 지경에도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을 내주셨습니다. 즉 반석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살리는 생수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마시지 못할 쓴물도 한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렇게 쓴물이 단물로 바뀐 장소가 ‘마라’라는 곳입니다. ‘마라’라는 뜻은 ‘쓰다. 괴롭다.’라는 뜻입니다. 즉 쓰디 쓴 우리들의 인생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나무를 던지니 멋있는 인생, 괜찮은 인생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캘거리에서 밴쿠버로 차로 여행을 하다 보면 레벨스톡을 지나서 켈로나로 가는 길에 ‘마라’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옵니다. 도로 옆에 강이 있는 마을입니다. 저는 그 마을을 지나면서 항상 성경에 나오는 ‘마라의 쓴물’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여, 저의 쓰디 쓴 인생이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게 하소서.”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하다 보면 그들이 모두 다 믿으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꺼려할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들은 종종 전도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 믿으면 밥이 나와요? 돈이 나와요? 피곤한 인생 괜히 더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나 좀 내버려둬요.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보니 예수님 안에서 밥이 나옵니다. 돈이 나옵니다. 생수가 나옵니다.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메추라기 떼도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고기도 실컷 먹습니다. 하나님이 옷도, 신발도 낡지 않고 해어지지 않게 역사해줍니다. What else? 그 밖에 또 무엇이 있습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 안에 치료도 있고, 평안도 있고, 기쁨도 있고, 행복도 있고, 영생도 있고, 천국도 있습니다. 그리고 돈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찾고 바라던 좋은 것들이 예수님 안에 다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했지 않습니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여러분, 이 외국 땅 캐나다에서 누가 나에게 돈을 줍니까? 누가 나에게 행복과 보람과 기쁨을 줍니까? 주님은 말씀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겠느냐? 그리고 예수님이 재차 말씀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가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이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아- 피곤하게 왜 그래?”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결국 예수님만 좋고, 교회만 좋고, 목사님만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괜히 바쁜데 시간만 낭비하고, 몸만 더 피곤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직접 체험해보니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 믿으니까 가장 먼저 내가 좋고, 내 가정이 좋고, 내 자녀가 좋고, 내 부모가 좋고, 내 형제 자매가 좋습니다. 그냥 적당히 좋은 것이 아니라 최고로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그냥 도덕과 윤리를 통해 인격 수양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은 그냥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어떤 때는 헌금을 하면서 “교회는 이 돈 가지고 다 뭐하나?” 하는 의구심도 생기고 반감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인들끼리 서로 ‘님‘자 붙이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면 “에이고, 저것들 위선 떨고 있네.” 하고 좀 삐딱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이 교회 가자고 하면 마지못해 따라 가기는 가는데 영- 내 취미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군 제대 후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분명히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해 눈물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저주와 사망이 철폐되고 불행한 내 인생, 저주받은 내 인생이 행복한 인생, 축복된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주님의 종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나 같은 못난 것을 주님의 종으로 만들어주시고 오늘날까지 사용해 주시니 감사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좀 더 충성하고,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잘해야 되는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제가 25살 때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다 주었느니라. 알파와 오메가를 주었느니라. 선물도 주었느니라.” 저는 그때 군 제대 후 제 인생의 앞길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나름대로 이거저것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음성으로 응답하신 겁니다. “다 주었느니라. 알파와 오메가를 주었느니라. 선물도 주었느니라.”

저는 이 응답을 받고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 보니 이 음성을 들으면서 성령도 같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즉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다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신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다는 겁니다. 성령도 선물로 주셨다는 겁니다. What else?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하니?

그것도 다 주신다는 겁니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는,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옛날도, 지금도 아낌없이 주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의 친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나를 이토록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돌봐주시고 있습니다. 그 분은 내가 이 땅에서 살면서 신발이 몇 개 필요한지 알고 계시며,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입어야 할 옷이 몇 벌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며, 내가 장차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미 예비해 놓았고, 예수님 안에서 가져가라고 이미 허락해 놓으셨습니다. 고로 필요한 것을 각자 하나님께 달라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녀들에게 이미 좋은 것을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아니- 지난번에도 달라고 했을 때에도 주셨는데 또 달라고 하면 하나님도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줘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여전히 풍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리 줘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토록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십시오. 가장 행복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그 누구보다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내 행복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행복도 멀어지고 맙니다. 고로 우리가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과 함께 오늘도 내일도 계속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