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냐 중심이냐 ?

날짜: 
2002/08/06
설교: 

제 목 : 외모냐 중심이냐 ?
본 문 : 삼상 16:6-13

처음에 이곳 캐나다에 와서 깜짝 놀란 것이 있음.
한국에서조차 보기 힘든 엑셀 자동차나 심지어 포니 자동차까지 버젓이 운행되고 있기 때문임. 그리고 겉이 심히 녹이 슬어 너덜너덜 거리는 고물 자동차를 버젓이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야, 대단하다 !" 하고 느꼈음.
만약 한국에서 그런 차를 몰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쯧쯧, 안됐다 !" 하고 혀를 찰 것임. 그리고 호텔 주차장 같은 데는 아마 주차시키지도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외모와 겉멋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임.

아마 한국 사람들처럼 옷 잘입고 차 손질 잘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드물 것임. 웬만한 중산층의 한국 사람들은 마치 패션 모델처럼 옷을 잘 차려 입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회이다보니 신앙 생활도 겉모습, 즉 외모에 너무 치장을 하고 신경을 쓰기 쉽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신앙 생활을 겉모습에 치우쳐 하다가는 자칫 신앙이 삐뚤어지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지 못하는 신앙,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신앙인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이스라엘의 왕을 뽑으려고 이새의 집에 방문했음.
그 집에는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들이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음. 먼저 장남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서자 사무엘이 "오, 과연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앞에 있도다 !" 하고 감탄하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으려고 했음. 그러자 하나님이 "사무엘아, 너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고 말씀하셨음. 즉 아무리 외모가 훌륭해도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았다는 것임.
그래서 둘째, 셋째, 넷째 계속 차례대로 사무엘 앞에 서자 하나님이 계속 "아니다 ! 내가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 하셨음.
그러자 그 집의 말째 아들 다윗이 양떼를 치다가 짐승들의 냄새나는 그 모습으로, 그리고 바람과 햇볕에 피부가 벌겋게 그슬린 모습으로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바로 이 사람이다.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음.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택한 이유는 다윗의 외모가 형들보다 잘났기 때문이 아니요. 형들보다 많이 배웠기 때문도 아니요. 형들보다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다윗의 중심을 보셨기 때문임.
다윗의 마음 중심은 자신의 실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음. 그래서 양떼를 노략질하는 사자와 곰이 나타나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들을 물리치는 사람이었음.
그리고 거인 골리앗 앞에서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를 이루어내는 사람이었음.
또한 어떠한 극한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들어 위대한 인물로 사용하신 것임. 즉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편안할 때나 어려울 때에도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멀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었음.

여러분들은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
어떤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관상쟁이를 통하여 그 사람의 생김새를 보고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함. 물론 얼굴을 보면서 마음의 중심을 보려고 하는 의도일 것임.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과 대화를 통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 사람의 중심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얼굴이나 말이나 혹은 외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사기꾼 같은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은 보통사람들 보다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외적으로 풍기는 모습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중심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 사람은 오래 사귀어 보아야만 알 수 있다."
특히 좋을 때에는 그 사람의 중심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과 명예, 기타 이해 관계가 얽혀서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면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파악할 수가 있음.
만약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과 진리를 좇아 바르게 행동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이 다가오면 그렇게 좋았던 신앙의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려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소유자가 아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고 자신의 신앙의 겉모습이 매우 훌륭했다고 고백하고 있음.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것들을 내가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빌3:7-8)고 고백하고 있음. 왜냐하면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좋게 여겼던 신앙의 겉모습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겉옷을 걸치고 기독교인으로서 그럴듯한 겉모습을 뽐내며 행세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목적이 있음.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겉모습만 가지고는 부족함. 마음의 중심이 성령으로 말씀으로 새로워져서 변화가 되어야함. 마음 속에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와야지만 어려운 상황이 다가올 때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갈 수가 있음.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중심있는 신앙을 갖춘 사람을 사용하시고 결국 축복하시는 것임.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신앙의 중심은 어떻습니까 ?
과연 극한 상황,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갈 수 있는 모습입니까 ? 아니면 이해관계가 힘들어지면 금방 세상 사람처럼 믿음을 배반하며 세상 사람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입니까 ?
아시다시피 이민사회는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민 교회도 힘이 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 오히려 한국보다 여기 이민 사회가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더 많은데 왜 이민 사회, 이민 교회가 더 힘들다고 할까요 ?
그것은 바로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신앙의 중심이 쉽게 흔들리기 때문임. 그리고 신앙의 중심을 바로 잡아줄 중심있는 지도자가 부족하기 때문임.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다 겉옷을 깔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하고 기뻐하며 환영했음.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이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않자 그렇게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변하고 말았음.
왜 그랬을까요 ?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충동에 그 신앙의 중심이 흔들려 버렸기 때문임. 물론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예수님께 배웠던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그 신앙의 중심이 모두 흔들려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치고 말았음. 그리고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음.

이렇게 제자들조차 신앙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 물론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상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제자들의 흔들린 신앙의 중심을 바로 잡아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셨을 것임.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시면서 베드로의 흔들렸던 신앙의 중심을 바로잡아 주었고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오순절날 성령을 그의 마음 속에 부어주셨음.
그러자 베드로는 죽음의 순간에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자의 길을 갈 수가 있었음. 그리고 베드로는 한때 자신처럼 신앙의 중심이 흔들렸던 다른 제자들의 신앙의 중심도 바로 잡아 줄 수 있었음.

여러분, 오늘날의 상황은 초대 교회처럼 극한 어려운 상황은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쉽게 신앙의 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외국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아주 조그만 일로 인해 신앙의 중심이 쉽게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너무 오랫동안 신앙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삐뚤어지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맙니다. 제자들이 한때 신앙의 중심이 흔들렸지만 신속히 그 중심을 바로 잡았듯이 우리들도 신속히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능으로 신앙의 중심을 바로 잡지 못할 때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의 신앙의 중심이 잠시 흔들렸습니다. 저의 신앙의 중심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여러분의 신앙의 중심이 굳건히 서있다면 오늘날 다가온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앙의 중심이 있는 자를 결국 도와주시며 그들을 결국 축복하시며 그들을 결국 높여주시기 때문임.
비록 다윗이 형제들 중에 막내요, 별로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어도 하나님이 다윗의 그 중심을 보고 그에게 많은 축복을 주시고 그를 끝까지 사용하시지 않았습니까 ?
여러분의 중심도 다윗처럼 바르다면 여러분은 다시 일어설 수가 있음. 하나님은 중심이 굳건한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함. "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여러분, 우리의 이민 생활, 유학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중심이 흔들리면 결코 안됩니다. 설사 세상이 나를 속이고 힘들게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직한 마음을 포기하면 결코 안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로 인해, 이런 저런 일로 인해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며 방황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아무쪼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불고 폭풍이 몰아쳐도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중심이 바른 신앙인이 되어 이 이국 땅에서도 하늘 나라를 잘 가꾸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