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날짜: 
2024/08/10
말씀: 
요7:24
말씀구절: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설교: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정문 앞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Don't judge people by their appearance.”(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그리고 이 글에 대한 사연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오래되고 빛이 바랜 드레스를 입은 한 노부인과 허름한 양복을 입은 그녀의 남편 되는 초라한 노부부가 하버드 대학 총장의 외부 사무실로 어정어정 걸어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총장의 비서는 이들 노부부를 보자마자 별 볼일 없는 시골 촌뜨기 노인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문 앞에서 제지를 했습니다. “아니, 지금 어디를 들어가려고 합니까?” “총장님을 좀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총장님은 오늘 하루 종일 바쁘실 겁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여기 문 앞에서 좀 기다리겠습니다.”

비서는 그 노부부를 문 밖에서 마냥 기다리게 했습니다. 내심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돌아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부부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본 비서는 매우 귀찮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여기 계시네요. 오늘 총장님은 매우 바쁘시다니까요.” “아- 잠깐만 총장님을 뵙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비서는 노인 부부를 경멸하듯이 바라보며 “아- 총장님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만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 분이 비서에게 묻습니다. “이런 대학교 하나를 설립하려고 하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 “아- 댁들 같은 사람들이 그걸 알아서 뭐합니까?” 비서는 퉁명하게 쏘아대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부부는 난처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발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낙심하여 돌아간 노부부에게는 결혼한 지 18년 만에 얻은 소중한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하버드 대학을 일 년간 다니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일 년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 노부부는 자신의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돈을 기부하려고 그날 하버드 대학교 총장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문밖에서 박대를 당하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신들의 전 재산을 스탠퍼드 대학교를 설립하는데 기부를 했습니다.

즉 하버드 대학교에 갈 그 막대한 기부금이 스탠퍼드 대학교에 간 겁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미국의 명문대학교인 스탠퍼드 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미국 동부의 명문대학이 하버드라면, 서부에는 세계적인 첨단산업 기지인 실리콘 벨리의 중심인 스탠퍼드 대학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스탠퍼드 대학을 설립한 분이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리랜드 스탠퍼드’입니다. 그 후에 이 사실을 안 하버드 대학은 이를 매우 아쉬워하며 학교 정문 앞에 이런 글귀를 새겨놓았다고 합니다. “Don't judge people by their appearance.”(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오늘의 본문에도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7:24)

가끔 예수님의 신체적인 겉모습에 대해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상상을 하며 말을 합니다. 오래 전에 한 젊은 여성 선교사님이 젊은이들이 모인 집회에서 예수님의 외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 우리 예수님은 직업이 목수이시니까 힘도 세시고, 키도 크고, 어깨도 딱- 벌어지고, 체격이 아주 건장하셨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몸짱이에요. 그리고 미남이고요. 요즘 아이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 생기셨어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아- 그건 아닌데! 그건 댁을 비롯해 많은 여성분들의 희망사항이고, 실제는 그렇지 않네요.” 여러분, 이사야서 53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즉 예수님의 외모는 보통 이하 수준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아주 촌 동네인 나사렛 출신입니다. 누가 봐도 “아- 저 사람 시골 촌놈이구나!” 할 정도로 대수롭지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학문도 제대로 정식 코스를 밟아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겁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7:24)

한국의 문화 중에 목욕탕 문화가 있습니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모두가 발가벗고 탕에 들어갑니다. 어느 날 남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키도 작고 체격도 작은 한 남자가 비누를 잡으려다가 그만 옆의 사람 비누를 잘못 잡아서 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비누의 주인인 체격이 아주 좋은 남자가 버럭 화를 내며 그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렇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남자는 “죄...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큰 소리로 “뭐- 용서? 너 이리 나와 봐. 내가 누군 줄 알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체격이 좋은 그 남자는 먼저 탕을 나가서 옷을 입고 번쩍이는 계급장을 뽐내며 으스대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육군 중위였습니다.

얼마 후에 키가 작은 남자도 나와서 옷을 입었는데 우연히 그도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계급장을 보니까 세상에- 육군 대령이었습니다. 아- 그 모습을 본 육군 중위는 기겁을 하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굳어지며 차렷 자세를 취하면서 외쳤습니다. “충성!”

예수님이 그 당시 외모로 판단을 당하듯이 오늘날에도 저와 여러분들도 종종 외모로 판단을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특히 눈이 큰 서양 애들이 눈이 작고 옆으로 찢어진 동양인을 보고, 자기의 두 손을 눈 옆으로 늘이며 동양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인종차별을 하는 모습도 종종 있습니다. (이거 사진 좀 몇 개 띄어보실래요.)

특히 한국의 축구 선수로서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경우 이런 눈 찢기 인종 차별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그곳 영국 축구협회에서는 이렇게 외모를 비하하며 인종차별을 한 사람들에게 경기장 출입금지와 함께 제법 큰 액수의 벌금형과 같은 무거운 징계를 내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행동들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심히 좋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여기 캐나다 땅에 와서 외모를 비롯해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인종차별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 캐나다에서 겪은 기분이 나쁜 인종차별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디서든지 쇼핑을 하고 나면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게 됩니다.

그날도 제가 쇼핑을 마치고 긴 줄 속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그날따라 길이 아주 길어서 사람들이 모두 한숨을 짓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직원이 내 얼굴을 한번 흘금 쳐다보더니 “This lane is closed." 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겁니다.

“아- 뭐야 이거?” 기분이 상당히 나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저처럼 이런 경험이 있으신 분이 있을 겁니다. 어때요? 그때 기분이 아주 나빴지요? 그런데 이런 외모 비하적인 태도가 동물들에게도 있을까요? 한번 알아봅시다. 동물들에게도 서로 간에 외모를 비하하는 태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반면 “에이, 동물들에는 그렇게 서로의 외모를 비하하는 행동이 없겠지요. 동물들이 인간들보다 얼마나 착한데요.” 하시는 분은 손들어보세요. 이에 대해 이 영상을 보시고 난 후 판단해 보십시오. (자- 준비한 영상 한번 틀어보십시오.) 어때요? 이 영상을 보니까 “어라, 이 녀석들도 서로 외모를 보고, 그 외모를 비하하기까지 하는구나.” 하고 상당히 의외로 느끼셨지요.

그런데 그렇게 외모지상주의가 가장 심한 나라가 어디일까요? 2015년도에 ‘비정상 회담’이라고 하는 TV 프로에서 이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프랑스 대표 ‘로빈‘이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프랑스도 외모지상주의가 심하다. 여론 조사에서 구직할 때 가장 많이 겪는 차별이 1위 성차별, 2위 인종차별, 3위가 외모 차별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게 비만이다. 외모보다 몸매를 더 많이 본다.”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도 말합니다. “이태리도 한국과 비슷하다. 외모에 신경도 많이 쓰고, 성형 수술도 많이 한다. 나도 나쁜 편은 아닌데 힘들다. 잘 생겨야하며, 옷도 잘 입어야 한다. 그래서 클럽에 가면 불편하다. 춤추러 가는 게 아니라 패션쇼를 하러 가는 셈이다. 예쁜 여자한테 가면 ‘네가 감히?’ 이런 눈으로 쳐다본다.”

독일 대표 ‘다니엘’도 말합니다. “독일도 요즘 성형 빈도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자기 약혼녀를 자기의 이상형으로 변신시키겠다고 8번 성형 수술을 시켰다.” 그러나 여러분, 그 모든 나라들 중에서 대한민국이 인구대비 성형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순위를 한번 들여다보았습니다.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성형수술 건수가 한국이 8.9 건으로 세계 1위입니다. 2위는 아르헨티나로 8.8 건이고, 3위는 브라질로 7.6건, 4위는 콜롬비아로 7.3 건, 5위는 그리스, 6위는 미국, 7위는 독일 순입니다.

하여간 한국 사람들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세계 1등입니다. 아- 한국은 별걸 다 일등을 합니다. 제가 요즘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 표현을 보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외모가 잘생긴 남자나 여자를 가리켜 ‘착하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아니 도대체 이게 웬 일입니까? 외모가 잘 생기면 착한 겁니까? No. 아니에요. 이건 완전히 잘못된 비사실적이고, 비성경적입니다.

이 사진을 한번 보십시오. (얼짱 여자 강도 사진) 어때요? 이 여자 착한 여자인가요? 아- 예쁘게 생겼으니 착하다고요? 노우(No), 아니라니까요. 이 여자 칼로 사람을 위협하고 금품과 카드를 빼앗은 특수강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여자의 사진을 보고 팬 카페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뉴스가 일본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로 나왔습니다. (이게 그 일본 신문기사입니다. 한번 띄어 보실래요.)

여러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2:9)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도 절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 말씀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골3:25)

여러분,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고,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다가는 큰 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고로 사람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사람의 중심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중심을 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각자가 자기의 중심을 숨기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그럴듯하게 보이고, 그럴듯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평상시 남이 보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말과 행동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행동들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그게 그 사람의 본질입니다. 특히 저의 경우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자기보다 힘이 약하고, 자기의 출세와 이익에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막 대하고, 자기의 유익이나 출세를 위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공손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똑같이 대해야지, 왜 낮은 사람에게는 벌레 대하듯이 무시하고, 높은 사람에게는 아부나 아양을 떨고 잘 보이려고 합니까? 그거요. 이중인격자입니다. 소시오패스적인 마인드입니다. 예수님은 잔치에 손님을 청할 때에 괜히 부자나 높은 사람 청하지 말고, 도리어 가난하고 천하고 장애인들을 청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선한 행동을 나중에 갚아주신다는 겁니다.(눅14:12-14)

결론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로, 학벌로, 돈으로, 말투로, 지위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처럼 중심을 보시고, 행위와 열매를 보시고 공의롭게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내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중심이 좋은 사람, 행위와 열매가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하고 바른 사람이 되어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계속 행복을 추구해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보시되 외모를 보시거나,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부끄러운 것이 있습니다. 행위의 열매도 그리 신통치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좋지 못한 것들을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생활에서 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