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에 대한 우리의 자세

날짜: 
2020/07/05
말씀: 
마22:44
말씀구절: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설교: 

사람이 살다 보면 친구도 생기고 원수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배신하면 더 큰 원수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면 더 큰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오늘의 원수가 내일의 친구도 될 수 있습니다.

원수가 많은 것보다 친구가 많은 것이 당연히 더 좋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친구만 있고 원수는 하나도 없는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일생을 살면서 때로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 즉 원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경우 인생을 살면서 그 원수가 있지 않습니까? 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까? 그 원수 생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납니까? 원수에 관한 오늘의 설교가 벌써부터 좋지 못한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매우 듣기 싫은 소리로 들리지는 않습니까?

혹은 오늘 또 다시 ‘원수를 사랑하라’는 진부한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 같아서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대충 15분이면 끝나는 설교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저는 하나님께 이런 내용으로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원수를 갚아주세요. 저 원수들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요. 이제는 원한이 맺힐 지경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하니 좀 이상하지요? “아니, 목사님이 원수를 사랑해야지, 뭔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냐? 혹시 목사 사이비 아니야?” 여러분, 교회에 어느 정도 다닌 분들은 서당개 3년이면 풍월도 읊는다고 하듯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몇 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겁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그 노력을 아시고 있고, 그런 여러분을 기특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노력을 하는 여러분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웬만한 성인군자도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입니다.

차라리 원수를 멀리하고 싶고, 원수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수와 가까이 지내다간 괜히 성질만 나빠질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저 원수가 사라지면 또 다시 이 원수가 생깁니다. 그리고 원수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고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TV에 나와서 낱말 맞추기 게임을 했습니다. 맞춰야 할 낱말은 ‘천생연분’ 네 글자입니다. 할아버지가 먼저 낱말을 보고 그 낱말을 할머니에게 설명합니다. “당신하고 나와의 사이를 무엇이라고 하노? 우리 둘 사이 말이야?”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웬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좀 당황하면서 다시 설명을 합니다. “아니, 그것 말고 네 글자” 그러자 할머니가 다시 대답을 합니다. “평생 웬수” “아- 통과 통과” 여러분, 할머니 말씀대로 할아버지가 평생 원수였다면, 그 원수하고 평생을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리고 할머니와 천생연분이라고 믿고 살았던 할아버지가 ‘평생 웬수’라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혹시 여러분 중에도 남편이나 아내가 ‘평생 원수’가 되어서 마지못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경우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왜 이리 복이 없노?” 하고 자신만 굉장히 재수가 없고 불행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35년 간 목회를 하고 인생을 살다 보니 도리어 이런 경우를 참 많이 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인생을 산다면 현재의 남편이나 아내와 다시 결혼하여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2016년에 남녀 1600 명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하여 조사를 했습니다.

이때 남편의 52%가 “다시 현 아내와 같이 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는 37%만이 다시 현 남편과 살고 싶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2010년에 조사한 것이 있어서 봤는데 일본과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즉 남성보다 여성이 남편을 더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남편을 원수처럼 여기는 아내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얼마 전 고유정의 “여보, 오늘 카레 먹고 싶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유행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면 참 좋은데 이상하게도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때로는 인간이 인간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인권 유린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따져 보면 모두가 아담의 자손이요, 다 같이 노아의 후손들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들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제가 성경을 모르고 영적 세계를 몰랐다면 이런 경우 “이런 못된 새끼들!” 하고 그러한 인간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향한 복수심에 불탔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저 원수를 갚아주옵소서. 저 원수가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원수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입니다.

즉 인간이 마귀의 노예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각종 악을 저지르는 겁니다. 고로 원수를 갚아달라는 뜻은 마귀를 물리쳐 달라는 뜻이요, 저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뜻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죄를 저지르는 인간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 달라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주위에 악을 심하게 저지르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계속된 거짓과 사기로 진실을 조롱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악으로 선을 유린하고, 더 나아가 위선을 떨며 거만히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들을 보면서 “어이구, 저런 얄미운 녀석! 저런 죽일 녀석!” 하고 종종 분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여러분의 원수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그들의 그런 거짓되고 악한 행동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세계가 힘들어지고, 너와 내가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심히 피곤해집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그들을 전도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구나! 주여, 죄송합니다. 저들도 빨리 하나님을 믿고 올바르게 살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가라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분명히 농부가 하인들과 함께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때에 보니까 가라지가 보입니다. 그러자 하인들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말합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마13:28) 즉 원수 마귀가 우리가 영적으로 잠을 자는 동안 가라지 씨를 덧뿌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고로 못되고 보기 싫은 가라지 같은 사람만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간 원수 마귀를 막지 못한 나의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원수는 가라지보다 저 마귀입니다. 저 마귀로 인해 오늘날 세계가 이렇게 힘들어지고 너와 내가 고통스럽고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수를 볼 때에 겉에 나타나는 것만 보지 마시고 그 뒤에 숨어서 역사하는 원수 마귀를 보아야 합니다. 즉 진짜 원수는 사람(남편)이 아니라 그 뒤에서 조종하는 마귀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이 하와를 유혹한 뱀 즉 마귀를 저주하고, 뱀은 여자의 후손 즉 동정녀 탄생으로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과 원수가 되게 하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창3:15) 즉 예수님과 마귀는 원수지간입니다. 고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원수 마귀를 물리치시고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10:19)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라.”(막16:17)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엡2:16, 롬5:10)

고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더 이상 “이 웬수야! 평생원수야!” 하지 않고 “나의 사랑하는 자여!”라고 다정스럽게 불러줍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대답합니다. “예,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여기 있나이다.” 즉 예수님의 공로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사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다시 하나님과 원수를 맺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4: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우리가 예수님의 원수인 마귀를 따라가고 육신대로, 정욕대로, 세상 방식대로 불의하게, 권모술수로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를 맺고서야 그 사람의 미래가 어찌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의 원수인 마귀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다릴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마22:44) 잠시 후면, 즉 예수님의 지상 재림 시에 원수 마귀가 잡힙니다. 그리고 천 년간 무저갱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자 세상은 진짜 평화가 옵니다. 사람들도 착해집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착해지니 동물들도 착해집니다. 더 이상 서로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천년 왕국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결국 “주여, 원수를 갚아주소서.”라는 우리들의 오랜 기간의 기도가 온전히 응답되고 성취된 겁니다.

원수로 인하여 그 동안 맺힌 우리들의 원한이 드디어 풀어졌습니다. 이제는 너와 내가 더 이상 원수가 아니고 다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원수라는 단어조차 사라지고 맙니다. 그 동안 불의로 인하여 서로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불의의 마귀가 없어지니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마음, 선한 마음을 주니까 이제는 서로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서로를 향하여 선을 베풀고 사랑의 미소를 띠웁니다. 드디어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성경이 그렇게 수없이 우리들에게 희망의 약속을 주었던 이 땅의 천국, 곧 천년왕국이 이루어진 겁니다. 에덴동산이 다시 회복된 겁니다. 언제요? 예수님의 지상 재림 시입니다. 고로 우리가 “주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그토록 고대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결론입니다. 오늘의 원수 때문에 너무 괴로워 마십시오. 피곤해 하지도 마십시오.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서 원수가 발 아래 둘 때까지 기다리듯이 우리도 조금만 더 기다리고 인내해 보십시오. 결국 좋은 시절이 다가옵니다. 그때 서로 기뻐하며 서로 행복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