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파악, 위치보고

날짜: 
2017/12/30
말씀: 
창3:8-1
말씀구절: 

...

설교: 

옛날에는 어느 낮선 지역을 여행하려면 반드시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20년 전 여기 북미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는 항상 차에 많은 지도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굳이 지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셀 폰으로 인터넷에 연결하여 내비게이션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셀 폰에는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행방불명이 되면 셀 폰의 위치추적으로 행방불명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내비게이션은 가까운 곳의 주유소나 음식점, 병원, 숙박시설 등 우리가 필요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자주하는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것을 들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내비게이션이 나와 함께하심이라.”
오늘은 2017년 12월 31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뜻 깊은 날입니다. 이 날에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으면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나서 갑자기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렇게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였던 에덴동산도 더 이상 평안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나니 불안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놈!” 하고 벼락을 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담을 불렀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 옛날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날도 우리 각자를 부르십니다. “원효야, 네가 어디 있느냐?” “예, 저는 지금 북미 캐나다 앨버타 캘거리 순복음 중앙교회에 있습니다.” 그 옛날 아담은 “아- 하나님, 죄송해요. 제가 선악과를 따먹고 두려워해서 숨었나이다.” 하고 떳떳하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얼마나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옛날 저도 청년시절에 아담처럼 그런 적이 있습니다. 12월 성탄절 이브 때서부터 친구들과 연속하여 술을 마시고 12월 31일에도 망년회를 한다고 1차, 2차, 3차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명동, 무교동, 종로 거리를 싸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술 파티가 끝나자 친구들이 하나 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택시가 잘 오지 않습니다. “따블 따따블!” 해도 택시가 없습니다. 이미 12월 31일 자정도 지나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술에 지치고 피곤하여 거리를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롯데호텔에 크게 전등을 설치한 것이 보였습니다. 새해를 알리는 전등이었습니다. ‘축 1980년’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새해 첫날이구나!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야- 김원효, 너 지금 뭐하고 있냐? 네가 새해 첫 날에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냐?”
아마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연말연시를 옛날 저처럼 술과 파티에 절어서 지내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오늘은 교회에 간신히 왔는데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이런 분들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아직도 술이 떨 깼는데도 교회에 왔다는 것은 참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대개 주일 전에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그 다음 주일날에는 교회에 오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지친 몸을 끌고 교회에 와서 비록 졸지만 앉아 있다는 것은 와- 대단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같이 박수 한 번 치십시다.(짝짝짝) 술 드신 것을 잘 했다고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앉아 있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2017년 12월 31일 여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큰 박수 한 번 보내드립시다.(짝짝짝) “하나님, 고맙습니다. 한 해 동안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믿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군인이 자기의 위치를 상관의 허가 없이 떠나면 탈영했다고 합니다. 열차가 자기의 트랙을 떠나면 탈선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를 드려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타락했다고 합니다. 혹시 육신은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있다면 바른 예배자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할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시한 가나안 땅에 가서 살다 보니 기근이 다가왔습니다. 궁핍이 다가왔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한 죄악의 도시 애급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죽으나 사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자리를 깔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한 곳에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그곳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니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자.” 우리들도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야곱이란 사람이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는 동안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세겜이란 곳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다 큰 딸 디나가 그곳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여동생의 원수를 갚는다고 그 곳 세겜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이제 야곱의 가족들이 그곳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멸망을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야곱이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창35:3)
오늘 우리도 각자 자기의 위치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자리에 있다면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자리에 있으라고 하는데 미움의 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면 즉시 미움의 자리를 떠나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감사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불평의 자리에 있다면 다시 감사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만의 자리에는 절대 앉으면 안되는데 교만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면 다시 겸손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창기와 함께 소비한 둘째 아들이 거지가 되어 외국 땅에서 죽게 되자 고백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눅15:17-20)
각자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비록 그곳이 고생이 되더라도 나는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원치 않는 곳이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그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이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으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가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지정하신 이스라엘 감람산에 오실 것입니다.
내 육체가, 내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고 싶은 곳에 가고, 자기가 원하고 싶은 곳에 있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마귀가 원하는 죄악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학교에 가면 이런 고백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머니입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사명을 맡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우리에게도 오늘 적용해봅니다. “하나님, 제가 거룩한 성도입니다.” “하나님, 제가 남편입니다. 아내입니다. 딸입니다. 아들입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각자의 사명의 자리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봅시다. 나는 사명의 자리에 있었는가? 충성의 자리에 있었는가? 겸손의 자리에 있었는가? 감사의 자리에 있었는가? 믿음의 자리에 있었는가?
제가 청년 때에 주일 날 교회에 가자고 한 청년을 전도했습니다. 이전부터 교회에 간다고 약속했던 청년입니다. 그런데 그 날 주일도 핑계를 대고 교회에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바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그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혼자 교회에 차타고 온 것입니다. 너무 반가워서 어쩐 일인가 물어 봤더니 사연이 이렇습니다.
자기가 저의 전도를 받았지만 그 날 목욕탕에 가서 사우나탕에 앉았는데 갑자기 사우나 수증기에 숨이 막히고 두려움이 엄습하더니 “여기가 지옥이다. 이놈, 지옥에 가자.” 하는 마귀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아, 나는 지옥 가기 싫어!” 하고 사우나탕을 박차고 교회로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멋쩍어서 저를 향해 웃습니다. “아- 참 잘했어요.”
이 청년은 그래도 지옥 길을 탈출했지만 혼자의 힘으로 죄악의 자리를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처녀가 인신매매를 당하여 창녀촌에 넘어갔습니다. 그곳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포주에게 걸려 병신이 될 정도로 얻어터집니다. 마귀의 노예로 잡혀 꼼짝을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습니다. 그들은 혼자 탈출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도 하나님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나의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행방불명자를 찾을 때 보면 안타깝게도 셀 폰의 위치 추적 장치를 꺼버리고 잠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일부러 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이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 나에게 위치를 알려줘라. 내가 너를 돕겠다고 하는데 숨어 있기만 하고 하나님께 자기의 위치를 일부러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하나님에게 만큼은 자기의 위치를 항상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 저 오늘은 어디 어디를 가요.” 하고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의 위치를 항상 하나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여기 캘거리인데요. 여기서 힘들어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하나님께 SOS를 쳐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습니다. “사랑하는 원효야, 너 어디에 있느냐?” 같이 따라합시다. “예, 제가 여기 캘거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