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뜻인가?

날짜: 
2022/10/01
말씀: 
창9:12-13
말씀구절: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설교: 

얼마 전 제가 50불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주간 차이로 저희 집 앞마당에서 50불짜리를 두 번이나 연달아 주웠습니다. 참 일어나기 힘든 확률의 사건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50불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어머나- 목사님! 또 앞마당에서 50불 주웠어요? 아- 왜 나한테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나지?”

아니- 이번엔 그게 아니고요.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사실 제가 또 저희 집 앞마당에서 50불짜리를 주우면 이건 다분히 인공미가 들어간 상당히 의심스런 사건일 겁니다. 누군가 사람이 의도적으로 꾸며낸 사건으로 생각될 겁니다.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일으킨 기적하고는 어쩐지 좀 다른 쎄-한 느낌이 들 겁니다.

그러나 이번의 50불 사건은 그게 아닙니다. 제가 며칠 전 교회 가까이 있는 월마트에 갔습니다. 몇 가지 물건을 사고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제 바로 등 뒤에서 줄을 서신 한 남성분의 소리가 들립니다. “Do you like money?" "Yes, why not?" 하고서 제가 뒤돌아보니까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니고, 그 남성분이 안고 있는 자기 어린 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제가 좀 민망해하면서 다시 계산대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계속 말을 합니다. “Do you like money?(×3)” "아- 이 사람 자꾸 왜 이래?” 하면서 제가 또 다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성분이 자기 어린 아들에게 진짜로 돈을 주었습니다. 얼마짜리를 주었을까요? 아- 50불짜리입니다.

그 어린 아이가 50불을 손에 쥐고 저한테 보여줍니다. 50불-. 순간 제가 얼어붙었습니다. “뭐야- 이거! 왜 또 50불이야?” 여러분, 그렇잖아요? 아니 계산대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50불을 주는 확률이 어느 정도일까요?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50불짜리를 연달아 두 번이나 주웠는데 또 50불짜리가 눈앞에 보이니까 진짜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나님! 이거 왜 이래요? 이거 무슨 뜻이에요?”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한번 알아맞혀보십시오. “아- 목사님! 그거 아무 뜻도 아닙니다. 세상 살다보면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납니다.” “목사님, 그거 개꿈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이건 제가 꿈속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혹시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저한테 나중에 좀 알려주십시오. 암튼 이게 지금은 무슨 뜻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률적으로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일을 가리켜 우리는 ‘기적’이란 말을 쓰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기한 ‘신의 역사’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최근에 50불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뭔가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구나. 신기한 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구나. 앞으로도 이런 기적의 사건이 계속 일어나겠구나. 이건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기적을 나타내겠다는 표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내려고 하는 기적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최근 저희 교회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매치시켰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최근 2년간, 근 3년 가까이 COVID-19 사태를 겪으면서 교회의 모임이 제한을 받았고, 그로 인해 교회가 큰 변화와 타격을 강요받았습니다.

마치 전쟁이 일어나 큰 폭격을 받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제 폭격이 끝나고 다시 폐허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한강의 기적’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도 기적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도, 모임도, 활동도 다시 회복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COVID-19으로 인해 떨어진 성도들도 다시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으샤으샤- 전도하자.“고 서로 힘을 북돋아주고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캘거리에서 25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전도에 신경 쓰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마 모든 교회의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목사님들의 최우선 순위는 영혼구원, 전도, 부흥입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이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실천과 행동도 하지만 실제로 전도가 되는 것은 별개입니다. 즉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잘 안 되는 것이 전도고 부흥입니다. 특히 이민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저희 교회의 상황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몇 달 동안 매주 새신자가 옵니다.

그러다보니 금방 COVID-19 이전의 주일 예배 출석인원인 120-130명 수준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저와 여러분들의 눈빛과 마음의 각오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뭔가가, 누군가가 저희들을 전도하도록 끌어주는 힘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 전부터 느끼는 겁니다. “아- 우리 교회가 앞으로 상당히 부흥이 되겠구나! 뭔가 큰 기적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나님이 막 우리를 밀어주고 당겨주고 있구나!“

즉 앞서 이야기한 50불의 사건은 우리들을 위해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큰 부흥의 기적을 일이키겠다는 하나님의 징조로 해석이 됩니다. 아- 꿈보다 해몽입니다. 암튼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입니다. 기왕 필을 받았으니 한 번 더 해봅시다. 오른 손을 들어보십시오. 제가 ‘으샤 으샤’ 하면 여러분은 ‘전도하자.’ 하고 외치는 겁니다. ‘으샤 으샤’ ‘전도하자.’(×3)

며칠 전 저와 제 집사람이 차타고 다운타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건물 마당에 무지개 깃발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의 집 사람이 묻습니다. “저게 뭐에요?” “응- 저거 동성애 깃발이잖아.” “아니- 근데 왜 무지개 깃발을 쓰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응, 자세히 보면 일곱 색깔 무지개가 아니고, 여섯 색깔 무지개야.” “무슨 색깔이 빠진 건데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중에서 남색이 빠졌어.” “왜요?” “아- 나도 잘 몰라. 아마 파란색과 보라색은 구별이 되는데, 그 중간에 있는 남색은 써봤자 뚜렷이 구별이 안 되니까 빠지지 않았나 싶어.“ 그렇게 말해놓고 제가 나중에 남색이 빠진 이유를 알아보니까 1979년 미국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열렸을 때, 길 양쪽에 색을 세 개씩 나누기 위해서 남색을 하나 뺐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동성애 깃발은 여섯 색깔 무지개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6은 불완전한 인간의 수나 마귀의 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666 하면 마귀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한 계시록에 보면 적그리스도가 666 수를 인간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주입하여 우상을 섬기게 하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를 통제를 한다고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수는 완전수인 7입니다.

암튼 하나님이 만든 일곱 색깔 무지개를 마귀는 하나 빼서 여섯 색깔 무지개를 만들어 동성애 깃발로 사용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히 안 좋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무지개의 기원은 성경 창세기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함이 극도로 달하자 세상을 물로 청소하셨습니다. 그게 노아의 홍수 심판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꾸며낸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한 동안은 노아의 홍수 사건은 그저 하나님이 인간들을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교훈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은혜를 받고 성경을 보는데 너무나 자세히 홍수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특히 배를 만드는 조선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 그 큰 대홍수를 견디기 위해 방주의 치수까지 정확히 하나님이 계시한 것을 보면 오늘날의 과학에서도 놀랄 만큼 안전하고 이상적인 것이 노아의 방주라는 겁니다.

그렇게 대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자 살아남은 노아와 그 후손들은 비가 오기만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마치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두려움과 불안함이 몰려옵니다. 혹시 또 홍수가 나서 모두 죽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애들아, 비가와도 이제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시는 너희 모든 생물들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 그러니 비가 온다고 불안해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리니 이것이 나의 약속의 증거니라.”

그렇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홍수로부터, 각종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의 표시입니다. 고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에스겔(1:28)서나 신약의 요한계시록(4:3)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무지개가 둘렀습니다.

즉 무지개는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영광의 모습입니다. 고로 우리들은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무지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너를 보호하고 계신단다. 고로 너무 염려하지 마라. 불안해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무지개는 더 나아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혹기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까?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그 약속하신 것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최근에 50불 사건을 보면서 37년 전에 하나님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약속하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성취되려면 뭔가 기적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50불 사건으로 인해 이미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50불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적을 일으켜주겠다는 징조로 해석이 됩니다. 암튼 해석이 너무 좋습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그 일들을 보면서 성경적으로 그것을 해석해보십시오. 분명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약속한 것을 지금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고로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도 나를 위해 좋은 일을 베푸실 것입니다. 고로 하늘을 바라보고, 때로는 무지개를 바라보고, 성경이 약속한 그 약속들을 바라보고, 개인적으로 주신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서 계속 기뻐하고 또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