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히 여기지 말라

날짜: 
2006/03/26
설교: 

벧전4:12-13 이상히 여기지 말라
어떤 독수리 나라에 독수리 세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독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어느 날 세 독수리는 자살하려고 벼랑에 모였습니다. 막 자살하려는 순간 높은 곳에서 파수를 보던 영웅 독수리가 날아와선 "너희들 왜 죽으려고 하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독수리가 "저희들처럼 못난 독수리는 살아갈 필요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니, 너희들이 왜 못난 독수리니?"라고 영웅 독수리가 묻자 자살하려고 하는 세 독수리들이 각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 매일 날기 시험에서 떨어져요. 저 같이 멍청한 독수리는 없을 거예요." “전 매일 힘이 센 독수리에게 얻어터지면서 살아요. 이렇게 살기에 아예 죽는 것이 나아요." "전 사랑하는 독수리에게 버림을 받았어요. 저 같은 바보는 살 필요가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영웅 독수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무런 상처 없이 태어나자마자 영웅 독수리가 되어 있는 걸로 생각하는구나." 그리곤 영웅 독수리는 자신의 날개를 쭉 펴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날개 여기저기에 많은 상처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영웅 독수리는 자신의 날개에 있는 상처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이건 날기 시험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고, 이건 다른 독수리에게 얻어터진 상처란다. 하지만 이건 눈에 보이는 상처일 뿐, 가슴속에 묻힌 상처는 더 크단다. 세상에 상처 없는 독수리가 어디 있겠니? 그것은 아마 태어나자마자 죽은 독수리일 거야.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 없이, 고통 없이 어떻게 살겠니? 너희들 세상에서 당하는 상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멋있는 영웅 독수리라도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단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 “아니, 왜 하나님을 믿는데 그런 고난을 당하느냐?”고 말하며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주일성수하기 때문에, 십일조 드리기 때문에, 봉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난 어려움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갓 들어가서 시험을 친 일이 있습니다. 시험 문제는 “고난에 대하여 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답안지에 이렇게 섰습니다. “예수님 잘 믿으면 고난은 절대 없다. 고난은 예수님 못 믿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 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다.” 저는 이런 식으로 답안지를 작성하고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 성적표는 거의 F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문제를 낸 교수님에게 물어보니 그 답안이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통해 보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도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론 고난 받는 것이 당장 행복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구별되고, 거룩하게 살려는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은 다가오며 그 다가오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벧전4:12)
성경에 보면 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에게 아주 심한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가끔 해외토픽에서 ‘아주 재수 없는 사람‘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됩니다. 아마 이 욥이라는 사람도 그런 부분에 나가서 경쟁한다면 일등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도 그런 것이 하루아침에 수많은 재산을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빼앗아가고, 하늘에서는 불이 내려와 양들과 종들이 죽고, 다 키워 논 7남3녀가 집이 무너져 모두 압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들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도 찾아와서 욥을 보니 너무나 큰 고난이 그에게 다가온 것을 보고 이상히 생각했습니다. “아니, 욥이 의인인 줄 알았더니 이런 큰 재앙을 당한 것을 보니 그가 틀림없이 큰 죄를 지었을 거야.”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욥을 더욱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욥의 아내도 그의 남편이 아주 의인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큰 축복을 주신 줄 알았는데 이제 그 큰 축복을 하루아침에 잃고, 열 자녀가 모두 죽고 나니 욥의 아내도 남편인 욥에 대하여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의심이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자 욥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여러분, 이 사건을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면 그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신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감사해야 할 때에 혹 감사가 안나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나름대로 잘 믿었는데 계속 고난에 처하게 되면 “아니, 도대체 왜 이런 거야?” 하고 이상히 생각하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되고, 나중에는 전혀 성경적이 아닌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즉 신앙의 혼돈이 올 수가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고난에 대하여 성경적인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 믿어도 죽습니다. 예수님 믿어도 병에 걸립니다. 예수님 믿어도 고난이 옵니다. 고로 “예수님 믿었는데 왜 죽었나요? 예수님 믿었는데 왜 병에 걸려 고생하나요? 예수님 믿었는데 왜 망했나요?”라고 묻지 마시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하고 욥과 같은 고백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고난의 길을 걷지 않고 승리의 언덕에 올라 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정들고 익숙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야곱도 나그네 인생길의 130년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했습니다.(창47:9) 그리고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는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창31:40).
또한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인생 중에 수고와 슬픔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한 숨 쉬어 보지 않고, 눈물 없이 살았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시련과 고통은 가장 훌륭한 크리스천에게도 있습니다. 사려 깊고, 소망이 넘치며, 금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시험은 있습니다.
고로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도 고난을 각오하고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 시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금과 은이 뜨거운 용광로에서 제련되는 것처럼 신앙의 연단이 있을 것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즉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과정을 거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우뚝 서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일부러 고난을 자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닥친 고난이라면, 어차피 겪어야 될 일이라면… 오히려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군에서 배운 말 중에 기억하고 있는 참으로 좋은 말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여러분, 고난이 다가온다고 짜증을 내보았자 그 고난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었는데 고난이 다가오느냐고 우리는 이상히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에도 불신자의 삶과 같이 온갖 종류의 시련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주님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이 말씀은 크리스천에게 환란이 없는 삶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다가오는 환란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이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평안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평생 순조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각자 하지만 혹 내게 시험이 있다고 이상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고난의 파도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올 수도 있다는 성경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고난의 파도가 오지만 그 고난의 파도를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고난의 파도 위에 앉아서 함께 오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즉 시련만 바라보지 말고 그 고난의 홍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편 29편 10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러분, 하나님은 잔잔한 가운데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련의 홍수를 통해서도 성도에게 복을 주십니다. 운동선수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무거운 기구를 들고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합니다. 심한 훈련은 그들에게 있어 큰 고통이지만 이런 고통을 통해 체력이 강해지고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의 손가락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손에 굳은살이 잡혀 있었습니다.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발가락도 마찬가지 입니다.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고통스런
과정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런 날들이 올 때 이상히 생각하지 말고 “아하, 이것을 통하여 내가 더욱 아름다워지는 구나!” 생각하고 그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더욱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지금은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지내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즉 예수님의 찬란한 부활이 있기 전 고난의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찬란한 부활을 맞이하기 위하여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아무쪼록 인생 중에 다가오는 고난을 잘 통과하므로 더욱 찬란한 부활의 순간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