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이 응하였느니라.

날짜: 
2021/02/28
말씀: 
눅4:16-21
말씀구절: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설교: 

여러분에게 물어 볼게요? 예수님이 탄생한 곳은 어디입니까?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은 어디입니까? 예-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입니다. 오늘 COVID-19의 환난 중에도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예수님의 탄생 장소와 자라나신 장소가 다른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나사렛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 그럴 정도로 당시 나사렛은 영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촌동네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통 이름 앞에다가 자기가 사는 지역 명칭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는 가룟 지방에 사는 유다라는 뜻이고,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면 막달라 지방에 사는 마리아라는 뜻이고 ‘베다니 마리아’ 하면 베다니 지방에 사는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나사렛 예수’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별로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촌동네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로 사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장남으로서 6명의 동생들을 챙기며 어머니를 봉양하고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30세에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잠시 나사렛에 들르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시자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구약 성경 중에 때마침 이사야서를 가져다 예수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요즘에는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이 간편하게 한권으로 되어있지만 당시에는 한 권 한 권이 따로 따로 두루마리로 되어 있었고, 그 무게도 상당히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읽었는데 보통 7명에게 성경을 읽을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첫째 제사장, 둘째 레위인, 셋째 그 회당에 속한 유대인 5명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사는 유대인의 자격으로 그 회당에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서 읽은 성경 구절은 이사야 61장 1-2절 말씀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에서 인용한 것과는 좀 차이가 나는데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누가복음에 인용이 안 된 그 뒤에 연결되어 나오는 3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내실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낭독하시고 예수님은 말씀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말씀을 낭독한 사람은 이어서 첨부하여 말씀을 하곤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고 궁금해서 주목한 겁니다. 이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즉 예수님은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분, 즉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아니, 저거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근데 자기가 메시야라고?” 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절벽으로 끌고 가서 거기에 떨어트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니, 믿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까? 참, 촌동네 나사렛 사람들 수준을 알만합니다. 시기질투가 많고 못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안타까워서 옛날 이스라엘 역사를 끄집어내서 말합니다.

“엘리야 시대 때에 3년 반 동안 기근이 일어나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굶어 죽었는데... 특히 힘없는 과부들이 많이 죽게 되었는데 이방의 시돈 땅의 사렙다 지방에 사는 한 과부만 엘리야가 가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양식을 공급해주어서 살았다. 그리고 엘리사 시대 때에는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오직 이방인이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만이 문둥병의 치료를 받았다.“

즉 “너희들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메시아인 나에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구나! 쯧쯧쯧” 하는 뜻이었습니다. 여러분, 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치료와 은혜를 얻지 못했습니까? 히브리서 4:2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

즉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들어도 듣는 사람이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예수님이 안타깝게도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많은 기적을 베풀지 못하고 다만 몇몇의 소수 환자들만 고치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실 때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즉 믿음으로 화합치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하셨지만 그들에게는 이 말씀이 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귀에도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데 어찌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겠습니까? 더구나 그 말씀이 어찌 현실에서 기적으로 나타나겠습니까? 본문에 ‘응한다.’라는 뜻은 ‘성취가 된다.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누구에게는 이 말씀이 성취가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성취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이 과연 성취되고 있습니까? 혹시 귀에는 응해서 그 말씀을 깨닫기는 하지만 마음에는 응하지 않아서 현실에서는 전혀 성취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실 속에서 응하시고 성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본문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나이 30살에 요단강에서 또 다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비로소 메시아로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38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시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즉 성령이 임해야 예수님도 메시아로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그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에서 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즉 성령을 받아야 말씀이 응하고, 치료가 응하고, 축복이 응하고, 형통이 응하고, 약속이 성취가 됩니다. 아무쪼록 한 사람 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삶속에 하나님의 치료와 축복이 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혜의 해’란 영어로 'jubilee'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yobel(요벨)'이라고 합니다. ’yobel'이란 ‘수양의 뿔’이란 뜻입니다. 제사장이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 희년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7년마다 맞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뒤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하는데 이때에는 빚으로 말미암아 종이 된 사람들이 모두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시러 오셨다는 것은 오늘날로 하면 죄로 말미암아 마귀의 종이 된 사람들을 예수님이 해방을 시키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저와 여러분들은 이렇게 희년을 맞아서 해방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게 노래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성령이 오셨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응하고 이루어 졌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 사역, 고난, 죽음, 부활, 승천에 대하여 기록이 되었는데 그 기록대로 예수님의 삶이 모두 이루어지고 성취가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말세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는 이 예언, 이 말씀도 우리 귀에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응하고 성취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입니다. 권세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삶속에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이 약속한 치료와 축복과 형통의 말씀이 응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약속한 은혜의 해가 각자에게 임하여 50년 만에 맞는 큰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축원합니다.